내 속의 진짜 감정을 알게 되면, 우리는 곧 스스로를 알게 된다
우리는 눈에 안 보이는 것에 더 야박하다
우리는 종종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어떤 것이 더욱 가치있는 것이라며, 고전서적에나 나올법한 그럴싸한 명언을 차용해서 이야기하곤 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보다 확실히 눈에 보이는 것에 약하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감정에 강한 모습을 보인다. 감정은 눈에 보이지 않는 녀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행동, 신체반응에 꽤나 협조적인 반면,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에는 상당히 야박하게 구는 면이 있다. 한 남자가 밤에 한쪽 골목구석에서 혼자 담배를 뻑뻑 치는 고등학생을 목격하고서는 괜시리 돈이라도 뺏길까봐 슬쩍 다른 길로 돌아서 걸어갔다고 하자. 이미 그 길을 피해서 간 '행동'은 눈에 보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에 대해서는 인정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고딩에게 돈이라도 뺏길까봐 두려웠음을 그 남자는 쉽게 인정한다. 하지만 너무나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다른 돌아가는 길이 없어서 그 길을 애써 두려움을 참고 지나쳤다면, 그 남자는 집에 도착한 후 기억을 돌이켜보며 자신이 한낱 고등학생 한 명을 두려워했다는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길 거부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감정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실은 별로 신경 쓰이지도 않았다'며 자신이 느꼈던 상당한 두려움이나 공포를 축소하거나 왜곡해버릴 소지가 크다는 이야기다. 분명히 큰 두려움이 존재했더라도, 마치 나는 모르겠다는마냥 외면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부끄러웠지만 '실은 별로 부끄럽지도 않았어.'라고 외면하고, 울고 싶었음에도 '울고 싶었나? 난 전혀 아니었던 거 같은데.'라고 부인한다.
어려운 일
당신과 내가 우리의 감정을 왜곡하는 방법은 그야말로 각양각색이다. 대표적인 왜곡 중 하나가 바로 '부인'이다. 눈에 보이는 것, 가령 행동은 부인하기 어렵다. 내가 한 행동이고 누구나 다 목격하니까. 위의 사례를 상기해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물론 행동 또한 부인되기도 한다. "그 때 그 일을 한 건 내가 아니었어." 라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확실히 감정이 훨씬 더 쉽고 빈번하게 부인된다. 그래서 당신과 내가 느끼는 진짜 우리의 감정을 잘 지각하는 일은 우리가 신체반응이나 행동을 자각할 때보다 훨씬 더 높은 난이도의 능력과 수고를 필요로 한다. 감정은 눈에 딱 보이는 것이 아닐 뿐더러, 이로 인해 왜곡되기도 쉽다. 하루에도 우리는 수백번, 수천번 변화하는 감정을 느끼지만 이 중 과연 얼마나 많은 감정이 있는 그대로 우리에게 지각될까. 우리가 스스로 왜곡한 우리의 감정을 다른 사람의 도움없이 스스로 다시 제대로 지각하는 일은, 우리가 상담을 통해 타인의 도움을 받으며 우리 스스로를 이해해나가는 일보다 분명히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당신과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바로 이 '훨씬 더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굉장히 힘들고 더딘 과정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할 필요가 있다. 분명 힘들고 더딘 일이 될 것이다. 물론 그만큼 분명히 가치있고 우리 삶에 중요한 일이라는 확신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모방을 통해 외면하는 법을 배운다
약하고 쉽게 부서지기도 하는 우리의 '여린 마음'을 돌보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이런 감정을 어떻게 처리할지 알지 못한다. 배우지 못했다 함은, 대개 부모나 소중한 사람으로부터 이러한 것에 대한 돌봄을 받아보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떻게 처리할지 모를 때 우리는 주위를 둘러본다. 모방을 통해서라도 배워야 이 감정을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힘들고 연약한, 다친 감정을 처리하는 방법으로 '툭툭 털고 일어서는 것'을 택한다. 물론 좋은 방법이기도 하지만, 부정적인 감정을 제대로 소화하기보다는 고개를 돌리고 외면하는 일에 가까운 방법이기도 하다. 이 '툭툭 털고 일어서기'는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 주위의 모든 사람들 대다수가 가장 손쉽게 택하는 유용한 방법으로, 우리는 종종 우리의 가족이나 친구, 연인에게도 이 방법을 권유하곤 한다. 이렇게 퍼져나간 '툭툭 털어버리기'는 실제로는 전혀 툭툭 털리지 못한 감정들이 켜켜이 창자 속 저 밑바닥에 쌓여서 용암처럼 끓다가 결국에는 점점 우리 삶에 그 연기와 열기를 뿜어내기 시작하게 만든다. 외면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감정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감정들을 처리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그 감정을 제대로 지각하는 것이다. 온전히 지각되고 이해된 감정은, 더이상 우리를 미친듯이 휘두르지 못한다.
술의 마법
우리는 술기운을 빌어 없던 용기를 내서 고백을 하기도 하고, 도저히 표현할 수 없어서 묵혀두던 서운함을 토로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술집에서는 싸움도 많이 나고 정분도 많이 난다. 옳고 그른 것은 각자가 판단할 문제겠지만, 확실한 것은 술이 당신과 내게 좀 더 감정적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곤 한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사실 술은 기본적으로 이완/억제작용을 하지, 각성작용을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말수가 없고 조용하던 사람도 술이 들어가면 목소리도 커지고 말도 많아지는 걸 경험하면서 술이 사람을 각성시키고 더 흥분시키는 작용을 한다고 믿는다. 이는 오해다. 술은 중추신경 억제작용을 하는 대표적인 음식(?!)이다. 얼핏 보기에 술을 마신 사람이 더 쉽게 슬퍼하고 기뻐하는 등 감성적인 모습을 보이고 말수도 많아지고 목소리도 커지는 일종의 '각성'된 사람처럼 보이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 이유는 바로 술이 우리의 '감정을 통제하고 억제하던' 이성을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술은 우리가 참아야 했던 감정의 표출, 아니 애써 억눌러야 했던 감정이 존재한다는 자각을 자유롭게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성적으로 통제하던 컨트롤러를 마비시킴으로써 말이다. 그래서 우리가 통제하고 제어하던 감정은 술의 힘을 빌어 터져나온다.
술이 우리에게 하듯이 그렇게
우리도 술이 하듯이 그렇게 이성적 통제와 판단을 내려놓아야 한다.(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나는 술을 권하는 것이 아니다. 술에 의존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 될 수 있다.) 그럴 수 있어야, 비로소 우리의 진짜 감정을 자각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우리가 어떤 이유로든 우리의 특정 감정이나 정서를 부인하거나 억압하는 등 왜곡하고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고, 그렇게 감정을 외면하는 것이 분명 우리에게 어떤 도움을 주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하며 살아온 것이다. 그래서 상담을 할 때에는 상담자가 내담자의 어떤 감정에 대한 방어를 꽤나 확신하더라도, 절대 그것에 대해 무작정 직면시키고 다루기 시작해서는 안 된다. 전적으로 그것을 조금씩 감당해나갈 수 있는 내담자의 힘과 마음의 준비 정도가 그 감정에 대한 방어를 다루는 시기를 정하는 기준이 된다. 하지만 당신과 내가 해나가는 '자기상담'은 그런 것이 아니다. 모든 과정을 내가 나 스스로와 해나가는 즉, 혼자 하는 일이기 때문에 조금 더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 스스로에게 술이 하듯이 그렇게 하라. '이런 감정은 못난 것이 아닐까', '이런 감정은 날 너무 모욕감이 들게 하는데' 따위의 생각은 접어둬라. 당신이 느끼는 감정에 자꾸 '감놔라 배놔라' 하는 이성적 사고의 검열 스위치는 꺼두고 당신의 진짜 감정을 하나씩 더듬어가며 살피기 시작해야 한다. 마치 잔뜩 술에 취해서, '에라 모르겠다'는 식으로 내 뱃 속 깊이 눌려있던 감정을 뱉어버리는 술주정뱅이의 마음가짐으로 말이다.
자유연상
정신분석의 대가 프로이트는 중년의 나이에 약 3년 간 자기분석을 진행했다. 자기분석을 진행하는 내내 그는 꿈과 자유연상을 많이 활용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내 생각에, 꿈이나 자유연상의 공통점 중 하나는 굉장히 이완되어 내 이성적 사고가 나를 검열하고 통제하지 않는 상태에 가깝다는 것이다. 마치 술에 잔뜩 취해있을 때처럼 말이다. 실제로 자유연상이란, 굉장히 이완된 상태에서 머릿 속에 떠오르는 생각이나 감정을 바로 바로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과 나 또한 프로이트처럼 우리 스스로를 이해해나가는 자기상담 과정에서 이러한 자유연상 기법을 사용해볼 필요가 있다. 아니, 그러길 강력하게 권한다. 다만, 내가 앞서 신체반응이나 행동을 통해 우리 스스로를 이해해나가는 자기상담과정에서도 '기록하는 것'을 강조했듯이, 이번에도 나는 기록하길 권한다. 자유연상처럼, 술을 마신 사람처럼 가급적 이성적인 검열이나 필터링 없이 써내려가되, 감정을 떠오르는대로 써내려가는 것이다.
펜과 종이를 준비하고 시간을 정하라
펜과 종이를 하나씩 준비하고, 초시계를 하나 책상에 올려두어라. 처음에는 10분 정도가 좋을 것 같다. 10분을 타이머로 설정하고, 시작버튼을 누른 후 펜으로 종이에 지금 떠오르는 감정과 관련된 모든 것을 써내려가라. 어떤 것이라도 좋다. 꼭 감정이 아니어도 된다. 그 어떤 감정이어도 좋다. 만약 무언가를 쓰려고 펜을 붙잡고 앉아있는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아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써라. 아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그 상황에서의 당신의 마음을 써라. 초시계는 흘러가는데 아무 것도 써지지 않아 초조하다면, 그 초조함을 쓰고 왜 초조하게 느끼는 것 같은지 그래서 지금 내가 어떤 상태로 전전긍긍해하는지를 써라.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인지 한심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면, 그 생각이 들었던 사실과 그에 수반되는 감정을 써라. 무엇이든 좋다. 다만 여기서 꼭 지켜야 하는 한가지 원칙이 있다. 일단 펜을 종이에 대고 무언가를 쓰기 시작하면 절대 멈춰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무슨 이야기라도 좋으나, 절대 써내려가는 행위를 멈춰서는 안 된다. 펜을 멈추면 우리는 이성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사실 글을 써내려가는 속도가 늦더라도 우리는 그 몇 초 사이에 생각이라는 걸 한다. 계속 이야기했듯이, 우리는 이성적인 사고가 하는 감정에 대한 검열과 통제를 가급적 내려놓음으로써 진짜 감정을 살펴나가는 일을 하려고 한다. 따라서 글을 써내려가는 일을 멈춰서도 안 되고, 사실 글쓰는 속도도 최대한 빨라야 한다. 글자가 미친듯이 휘날리더라도 상관없다. 내 손이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글도 빠르게 써내려가야 한다. 휘갈겨라. 중간에 생각할 틈 따위는 없게끔. 정신없이 휘갈겨라. 초시계가 10분이 다 되었다고 알릴 때까지는 그 어느 것도 생각하지 말고 고민도 하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