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일이 떨어지면 기분이 안 좋은 이유_두번째 이야기

거부당하고 낙인찍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by 대장장이 휴

나는 저번 글(https://brunch.co.kr/@realrestkjh/30)에서 당신과 내가 일이 떨어지면 마음이 평안하지 못하고 불안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번 글은 그 글에 이은 두번째 이야기다.


일을 '잘 하는' 기준이 도대체 뭔가


일을 '잘 하고 있는지' 여부는 철저히 그 조직에서 정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그 조직의 '상사'들이 정한다. 어떤 조직은 일을 밤새 '열심히' 하는 것을 일을 잘 하는 것이라 이야기하고, 어떤 조직에서는 하루에 2시간만 일하더라도 가장 조직에 많은 이윤을 가져다주는 프로젝트를 만드는 것을 일을 잘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일을 잘한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이든, 당신이 일을 '잘 하는지' 여부는 철저하게 당신의 조직에 있는 '상사'들의 생각에 달려있다.


그러니 우리가 불안할 수밖에.


그래서 우리는 일이 떨어지면 불안한 것이다. 이 일을 '잘 해야'하는데, 일을 잘한다는 것이 우리의 윗사람의 마음에 달려있기 때문에. 그 윗사람의 판단이라는 것은 태생적으로 고정적이지도 일관적이지도 않다. 끊임없이 변하고 일관성도 없다. 이 말이 수많은 조직들의 상사를 '까는' 말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대목에서 심기가 불편해지는 '상사'들이 많을 수 있겠지만 나는 내 생각이 사실에 가깝다고 믿는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이자면, 마음이 변덕스럽고 끊임없이 변하는 건 비단 '상사'들의 문제만이 아니다. 원래 인간의 마음과 생각은 애당초에 변하지 않을 수가 없고 내 기대와 의도대로 흘러가지도 않는다. 불교에서 괜히 '제행무상'을 이야기했을까. 항상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너무 불편해하지 말길 바란다. 게다가 인간은 자신이 어떤 가치관을 가졌는지 자각조차 못하는 경우가 많을 뿐더러, 자각하더라도 왜 그러한 가치관을 가졌는지는 더욱이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니 그 가치관이 왜 변화하는지는 더더더더욱 알 수가 없다. 다시 가던 길로 돌아오면, 당신이나 내가 일을 잘 하지 못하면 우리는 채용계약서에 적힌 의무를 이행하지 못한 것이 된다. 그러면 우리는 의무불이행에 따른 책임으로 직장에서 해고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일을 '잘 한다는 것'의 기준과 잣대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시시각각 변하며 자기자신도 온전히 이해하기 힘든 상사들의 '마음'에 달려있다. 그러니 당연히 불안할 수밖에 없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것을 잣대로 내가 약속을 잘 이행한 것인지(일을 '잘 하는지')가 결정되는 것이다.


'철밥통'들도 불안해한다


자, 이제 그럼 우리의 1차적인 의문은 다 해결된 것인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 아주 오랜 시간 가장 인기있는 직업인 '철밥통'은 어떠한가. 소위 말하는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종사자들의 경우, 위의 논리에 따르면 자신에게 업무가 떨어졌을 때 불안해할 이유가 별로 없다. 엄청나게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이상, 고용이 보장되고 이를 기반으로 금전이 지급되기 때문이다. 즉, 어지간한 짓(?!)을 저지르지 않고서는 철밥통들은 이름 그대로 철밥통이다. 즉, 의무불이행으로 간주되어 길바닥에 나앉을 일이 없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공무원도 불안해한다. 혹자는 공무원이 일이라곤 하나도 안 한다고 주장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들은 의외로 야근을 자처할뿐더러, 업무량을 떠나서 자신에게 일이 주어지면 매우 불안해한다. 생각해보라. 불안하면 사람은 움츠러들게 되어있다. 일을 할 때 가장 움츠러들어 있는 자들은, 재밌게도 '철밥통'들이다. 즉, 그들은 자신에게 업무가 떨어지면 약속을 지키지 못해 짤릴 위기가 항상 도사리는 민간기업 직장인들보다 더 불안해한다. 도대체 왜?


'철밥통'들은 짤리지도 않을텐데 왜 불안해하는걸까


위에서 전개한 논리와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대목이다. 내가 일을 '잘 하지' 않아도 계약에 따른 의무불이행으로 해고될 위험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데(이게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현실은 다분히 그렇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왜 '철밥통'들은 자신에게 일이 떨어지면 해고당할 위험이 있는 사람처럼 똑같이 불안해하는가. 그들이 불안해하는 걸 보고있자면, 우리에게 일이 떨어지면 우리가 불안해하는 이유가 채용계약서에 따른 의무(일을 '잘하는 것'. 물론 '잘' 하라고 명시된 건 아니지만.)를 이행하지 못해서 해고당할까봐서인 것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고개를 치켜들 수밖에 없다.


타인의 거부와 낙인에 대한 공포


정답은 역시나 간단하다. 당신과 내가 업무가 떨어지면 불안해하는 이유는, 일을 '잘 하지' 못하면 해고되는 것 외에도 다른 위협, 다르게 말하면 일종의 '처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을 '잘 하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일을 해내야 하는 마감기한을 어기거나, 상사와 팀원이 우리에게 기대한만큼의 정확성과 정교함을 갖추지 못한 일처리를 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길래 우리는 일이 떨어지면 그것만으로도 슬슬 불안해하기 시작하는걸까.


우리가 일을 '잘 하지' 못하게 되면, 우리는 낙인찍히게 된다. '저 사람은 일을 잘 못하는 사람이야.', '저 사람은 무능력해.', '저 사람은 쓸모없는 사람이야.' 라는 식으로. 당연히 승진과 같은 인사 상의 불이익과 차등적 급여제도 등을 통해 경제적 불이익도 같이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사실 이러한 '현실적인(것이라 여겨지는)' 불이익 또한 사실 낙인에 가깝다. 사실 우리가 승진이 늦거나 급여가 상대적으로 덜 들어온다고 해서 삶이 크리티컬하게 변하는 건 아니다. 적어도 '철밥통'들에겐 분명히 그렇다. 허나, 이는 단순한 내 직급이나 급여의 문제가 아니라, 낙인의 문제다. 나는 무능력하고 상대적으로 더 무가치하다는 사람이라고 낙인찍히는 일이다. 낙인의 문제는 내가 어떤 사람으로 여겨지고 타인에게 어떤 존재로 받아들여지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에 당신과 내게 매우 중요하게 다가온다. 그런 사람으로 모두에게 손가락질 받는다는 건, 분명히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재밌는 이야길 하나 해주자면, 그래서 사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 의해 매우 쉽고 간단하게 통제당할 수 있다. 아주 간단하다. 누군가가 당신을 비웃고 손가락질하게 상황을 만든다면, 당신은 실험실의 생쥐처럼 그러지 않는 방향으로 행동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고 당신의 삶도 바꿔버릴 것이다. 너무나 공포스럽고 두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많은 인간들은 언제나 사람들의 이러한 속성을 이용해서 자신이 원하는대로 타인을 움직이고 조종할 수 있었다.


이젠,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이..


방금이야기한 문제는 아주 오랜시간에 걸쳐 인지되어왔던 문제다.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지배수단, 타인에 대한 통제수단으로서 활용되는 어떤 것이다. 결국 고용계약서대로 이행하지 못해서 짤릴까봐 불안할 필요가 없는 '철밥통'들조차 자신에게 업무가 주어지면 불안해지기 시작하는 이유는 바로 그들이 무가치하고 쓸모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힐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두려움 때문이었다.


타인에게 존중받지 못하고 거부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우리는 일이 떨어지면 불안해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공포와 불안을 피하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주 간단명료하다. "일을 잘해야 한다!" 그 누구도 그 일을 해낸 당신과 나를 보며 일을 못한다고, 형편없다고 손가락질하거나 낙인찍지 못하도록 말이다. 우리는 마음을 다잡으며 스스로에게 수십번 다짐했다.


난 일을 정말 잘 해낼 것이다... 난 할 수 있다... 난 반드시 일을 완벽하게 해내고 말 것이다... 난 반드시 완벽하게 일을 해내야만 한다... 난 반드시 완벽하게 일을 해내야만 한다..


흥미롭고 안타까운 사실은, 처음에는 이러한 것이 타인의 시선과 기대의 문제였지만, 이제 와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우리는 이제 일을 제 때 하지 못하고 아주 수려한 문장과 멋진 통계자료, 논거들로 가득 찬 보고서를 완성해내지 못하면 남이 우리를 비난하기도 전에 우리 스스로가 누구보다도 먼저 우리자신을 손가락질하고 비난한다. 시험성적을 잘 받지 못하고, 상사에게 칭찬받고 인정받지 못하면 우리는 그런 못난 스스로를 가장 먼저 매질하고 질타하고 침을 뱉기 시작한 것이다.


완벽주의. 강박주의.가 왜 생겨난 것일까


여기까지 어느 정도 공감하면서 따라올 수 있었다면, 저 질문에 대해 어떤 답이 나올지 조금은 짐작이 가리라 생각한다. 이게 다, 업무가 떨어지면 불안해하는 나와 당신과 우리 모두의 단편적인 모습에서 추론한 위의 논리와 똑같은 이유로 벌어지는 일이다. 자신의 일과 성공에 언제나 완벽함을 기하고 한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멋있는 당신, 왜 당신이 그렇게 완벽하려 하는지 한 번쯤 고민해볼 때다. 어쩌면 완벽하지 못하는 자기자신을 참지 못해서일지도 모른다. 왜 완벽하지 못한, 탁월하지 못한 자기자신을 참지 못하는지는, 여지껏 여러 가지 실마리들을 풀어놓았으니 여유있을 때 한 번 생각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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