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 아니 모든 삶에 적용되는 근본, '이야기'

심리상담이든, 삶이든, '이야기'가 모든 것의 근간이 되는 이유

by 대장장이 휴


언제 어디서나 적용되는 보편적인 법칙


일론 머스크는 '물리학'을 기초로 사고하는 것을 굉장히 즐긴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물리법칙을 어기는 사람은 없다는거다. 법을 어기는 사람은 있어도.


즉, 다르게 말하면 세상 모든 것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원리이자 법칙이므로 이를 바탕으로 사고하는 걸 좋아한다는 뜻이 된다.


분명 그건 맞는 이야기다. 법은 국가마다 다르고, 인간이 약속과 합의에 의거해 만든 모든 것들, 가령 화폐, 관습, 문화, 윤리와 도덕까지. 모든 것들은 늘 다르게 적용되고, 지역마다 시대마다 바뀐다.


이건, 그저 인간들이 서로 어떤 목적을 위해 합의한 것에 불과하다.


물론 인류 역사 상 최고의 천재 중 한 명으로 불리는 리처드 파인만은 모든 이론의 반증가능성을 이야기하며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내 이론이 100년전이나 지금이나 건재하다면, 그건 내 이론이 맞다는 게 아니라. 아직까지는 어찌어찌 잘 버티고 있다는 뜻일 뿐이다."


즉, 언젠가 반박되고 폐기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충분히 가능한 전제로 두고 언제까지 버티고 있는지를 보는 시각으로 오랜 시간 동안 건재하게 서있는 이론을 바라본다는거다.


참고로 그는 일론머스크가 어디서든 적용된다고 말하는 '물리학'계의 거장이다.



인간의 마음, 정신에 존재하는 가장 보편적인 법칙


무엇이 있을까.


뇌가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


어쩌면 뇌 자체가 우리의 영혼이고 의식일지도 모른다는 것?


세로토닌 재흡수를 억제하는 작용을 하는 약을 먹으면 우울이 개선된다는 것?


눈에 보이지도 않고 가장 어려운 인류의 난제인 인간의 '마음', 이와 관련해서 물리학 법칙만큼이나 언제, 어디서든 늘 믿을 수 있고 의심하지 않을 수 있는 그런 법칙이 없을까.


파인만 말처럼 물리학 이론 또한 결국 수백년을 버티고 있는 것일뿐일지 모른다. 그런 걸 생각하면, 인간의 마음에 관한 이론이나 관점 또한 그보다 더욱 위태롭게 버티고 서있는 것이 될 뿐이겠지만.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것에 관한 것이고, 어찌보면 가장 모호하고 어려운 것에 대한 것이니.)


그럼에도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다. 한 개인으로서도, 심리상담가로서도.


무엇이 있을까.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나마 동의할법한 것이 있다면, 인간에는 '의식'뿐만 아니라 '무의식'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것 아닐까.


이제는 누구나 손쉽게 말하는 '무의식'이라는 개념은 역시 희대의 천재로 손꼽히는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고안해낸 개념이다. 물론 그의 이론과 개념들을 의학적으로 딱딱 정립해서 쓰는 것에 대해 프로이트는 생전에 상당히 반대를 했다고 하나(자세한 건 그의 이론이 영어권으로 넘어가며 왜곡된 것에 대해 많은 토로를 하고 있는 책 '프로이트의 영혼'(브루노 베텔하임 저)을 읽어보기 바란다. 대학원 시절 대상관계이론 수업의 부교재로 나와서 우연히 읽었던 책이었는데 상당히 재밌었다.), 그럼에도 '무의식'이라는 이론은 한단어로 가장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마음에 관한 개념, 정립된 이론이라 말할 수 있는 것 중 하나인 거 같다.



내가 생각하는 '마음에 관한 가장 보편적인 법칙'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보편적인 법칙은, 그것 외에도 있다.

그건 바로


'모든 인간은 살아가면서 오직 자신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를 쓴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내가 두번째 책 <HINT : 통합이야기치료>를 집필하면서 심리치료이론을 만든 토대이자 이유다.


'이야기'에 대해 나는 아주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물론 요즘같은 OTT 시대, 대 영상의 시대에서 누가 드라마, 영화, 소설, 이야기를 싫어하겠냐만은.


그럼에도 내게는 좀, 묘한 감정이 들게 하는 게 바로 이야기다.



소설책을 읽지 않고 자라온 사람


누군가를 지칭할 때 수많은 표현을 들 수 있겠지만, 이야기와 관련해서 내게 당신은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저런 말을 할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소설책을 읽지 않은 채 자라온 사람.


나는 지금도, 아니 아주 어릴 때부터 다른 어떤 형태의 이야기보다 '글' 형태의 이야기가 얼마나 강력한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그렇게 생각한다. 이젠 긴 영화도 인기가 시들해져 1시간 미만의 짧은 영화를 영화관에 내걸기도 하는 세상이 되었다지만, 내가 보기엔 결코 '이야기'를 전달하는 형태로 글을 이길 수 있는 건 없다.


그건 나의 어떤 철학이나 고민, 사색, 여러 전문가들의 연구나 의견을 종합하고 결론내린 게 아니라 그저 내 피부로 몸소 체험하고 내린 결론이다.


뭔 소린가.


나는 어릴 때 사실 되게 책을 좋아했다. 집에 있는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친구들한테 책도 종종 빌려읽기도 하고, 사실 기억은 거의 없지만 아주 어릴 때도 동생 손잡고 동네 도서관에 드나들었다고 하니 아마 맞을꺼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던 게.


문제는, 14살이었나, 15살이었나 아무튼 그 때 즈음 일어난다.


별 생각없이 당시 유행하던 소설 '해리포터'를 정말 뒤늦게 접한 나는, 매우 큰 충격에 빠졌다.


너무 재밌어서. 그 나이 또래의 흔한 반응이었다.


문제는, 너무 재밌어서 책읽는 속도가 느린 나는 점점 밥을 거르고 잠을 안 자고, 학교수업을 안 듣고, 친구들과 오락실도 안 가고, 주말에 농구하러도 안 가고, 급기야 나중에는 학교에서 쉬는 시간만 되면 졸려서 엎드려 잠을 잤는데(밤새 읽고 학교갔으니까) 잘 때마다 계속 해리포터 꿈만 꿨다... ㅋㅋ


뭐 그 때는 그냥 재밌으니 내가 정말 푹 빠져있구나 했다. 사실 그런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모든 에너지와 주의력은 전부 그 책을 읽는 데 써야했으니까.


문제는 그 상태가 일주일, 이주일, 나중에 한달이 넘어가고도 계속 되는 데서 시작되었다. 컨디션이 나빠지는 건 뭐 그렇다치는데, 점점 해리포터 세계관 말고는 그 어떤 것도 생각할수가 없었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면서도 이야기가 안 들리고, 밤에 자든 쉬는 시간에 낮잠을 자든 단 한번을 빠뜨리지 않고 계속 그 세계관에서 그 꿈만 꿨다. 티비를 보고 등하교를 하고 체육시간에 운동을 하면서도 계속 그 책 세계관과 캐릭터들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가 않는거다.


점점 몸이 아파왔다. 정신도 이게 한달이 넘어가고 보름을 더 가고 한달을 더 가고 하니 점점 피로감에 지쳐가는 게 느껴졌다. 이젠 다른 꿈을 꾸고 싶어도 안 꿔지고, 이게 책을 다 읽고 나서도 거의 한달, 아니 근 두달을 그상태로 지냈다.


그래서 깨달았다. 와... 이건 진짜 위험하다. 소설책이란 위험한거구나.


사실 그 전에는 아주 짧은 단편소설이나 에세이, 비문학, 역사서 같은 걸 읽을 일은 있었지만 그렇게 긴 시리즈 소설을 읽은 적이 없었다. 거의 머리가 크고 처음 접한 장편소설물인 셈인데 그걸 읽고 그렇게 홍역을 앓아버린 것이다.


정신차려보니 시간이 정말 한참 지나있었다. 나는 나의 엄청난 신체적, 정신적 피로감과 탈력감에 무서운 느낌까지 들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나없이 친구들이(한창 친구가 중요할 시기였다 ㅋㅋ) 주말마다 농구도 하고 축구도 하고 게임도 하고 노래방도 가고 맛집도 가고 이랬다는 걸 뒤늦게 듣고는 엄청난 두려움에 몸서리쳤다.


'이거, 이런 거 몇번만 읽으면 난 아예 어디 세상과 격리된 세계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할수도 있겠구나.'


사실 가장 큰 건 신체적, 정신적 피로감의 엄청난 무게였지만, 그 외에도 그런 것들이 날 당황케 했다.


그 뒤로 나는 ㅋㅋ 소설을 일부러 안 읽었다. 내게 소설은 너무 위험한, 다시는 손대서는 안 될 거 같은 마약? 악마의 속삭임? 같은 느낌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건 사실 잘 조절하고 다듬었다면 좋은 기질이나 재능으로 꽃피울수도 있는거였는데 ㅋㅋ 그냥 그 때는 혼자 너무 놀랜 나머지 절대 두번 다신 소설의 악마같은 속삭임에 속아서 나의 다른 모든 즐거움들을 놓쳐버리진 않겠노라 다짐했다.


문제는 이미 내가 그 전에도, 그리고 그 후에도 이야기를 완전히 끊지는 못했다는 것인데. 원래 만화책이며 비디오(당시의 '애니메이션'을 지칭하는 용어), 영화, 드라마 가리지 않고 너무 좋아했던 나는 다른 형태의 이야기들은 결국 끊지 못했다.


하지만 부작용은 없었다. 그 엄청나게 위험했던(?!) 부작용은 오직 텍스트로 된 '소설'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래서 알고 있다. 영상이 모든 글을 다 압도하는 세상이 이미 되어버린 걸 알지만, 결코 궁극적으로 시각매체가 글로만 된 소설을 이겨낼 수 없다는 걸. 그 가공할만한 위력에 대해 나는 너무 어릴 때 제대로 된 가이드나 조력자 없이 몸소 체험했기 때문에.


확신하는 게 있다. 소설은 결코 완전히 대체되지 못한다.




'이야기'를 쓰는 존재, 인간


나중에 머리가 많이 크고 나서, 이젠 그런 공포스러운 경험도 희미해져갈 나이가 되었을 때쯤에. 나는 심리상담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고, 인간의 마음에 가장 보편적으로 적용될만한 것들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 어떤 인내나 확고한 신념, 충분한 지식이나 세계관도 없었던 그 어린 시절에. 내 멱살을 꽉 붙잡고 결코 놓아주지 않았던 '이야기'라는 존재에 대해.


그리고 여러 가지 학문적 관점과 연구들을 쭉 훑어본 나는, 인간의 뇌와 우리 신체가 너무 많은 비용과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시행착오'를 효과적으로 사용해 생존확률을 높이기 위해 '대리 시행착오'를 위한 능력을 진화적으로 발전시켜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야기'는 사실상 인간이 언어로 구체적이고 상세한 서사를 구전으로 남기고 글로 남기기도 전부터 인간에게 너무나 중요했던 것이었다고 나는 믿는다.


'이야기'는 우리가 이성적이고 언어적인 사고를 하기 이전부터, 그저 단순히 어떤 장면을 시각적으로만 기억하고 인출하던 옛날옛적부터 우리와 함께 존재하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인간은 자연스럽게 찾고 귀담아듣고 공감하고 이입하고 분석하고 기억에 저장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자신만의 이야기를 쓴다. 그것이 내가 주관적으로 경험하는 세계를 느끼고 이해하고 파악해서 그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하는 유일무이한 길이기 때문에.




HINT(통합이야기치료)



그래서 나는 사실 상담심리이론들 중에서 전혀 주류에 속하지 못하는 '이야기치료'에 관심을 많이 가졌다. 하지만 기존의 '이야기치료'는 사실상 나름의 '서사'를 활용하여 심리치료에도 활용하고 여러 부분들을 이야기와 연관시켜 가져다쓰긴 하지만 근본적인 '이야기'에 관한 믿음과 고민이 들어있진 않았다.


하지만 '이야기'는 단순히 어떤 형태와 구조를 가져와서 활용만 하는 도구로 보기엔, 인간에게 너무 근본적이고 중요한 존재다.


인간중심상담이론이라는 가장 영향력있는 상담심리이론이 있는데, 그 창시자인 칼 로저스는 자신의 저서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 책 제목이 기억이 안 난다. 책장 어디 박혀있을텐데 찾을 맘이 안 생ㄱ..)


"기본적으로 우리가 지각하는 모든 세계는 '가설'이다."


지당한 말이다. 모든 것들은 그저 짐작하고 추론하는 가설에 불과하다. 물론 살면서 그 일부는 우리가 직접 경험하고 체험하며 검증해나갈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감각기관을 통해 확인했다한들 그 또한 본질적으로 '가설'에 불과하다는 생각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어떤 것을 지각할 때 애초부터 내게 중요하거나 내게 영향을 미치는 것들만을 선별적으로 지각하기 때문이다.(로저스는 책에서 앉아있을 때 허벅지에 느껴지는 압박감각을 예로 드는데, 다음에 한 번 따로 다뤄보도록 하겠다.)


사실 그 가설이란, 가설을 세운 사람의 것인데. 그 가설의 형태는 연구논문에서 말하는 형식의 문장이라기보다는 '이야기'의 모습에 가까울 것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우리는 세상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를 쓴다. 아니, 이미 써왔다. 이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이야기다. 모든 인간은 이야기를 쓰며 살아왔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무수히 많이 쌓여 지금의 우리가 느끼고 경험하는 세계가 되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결국 자신이 써온 이야기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다. (이건 사실 책 <HINT>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첫문장이기도 하다. 그만큼 내겐 강력하고 의미있는 뿌리같은 문장이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이해하고 수용하고 이를 바탕으로 삶의 경험들을 새롭게 전환시키고 괴로운 것들을 해소하고 하는 모든 과정들은 '이야기'에서 시작해 '이야기'에서 끝난다.


심리상담이란, 각자가 자신만이 쓸 수 있는, 그간 살면서 써온 '이야기'를 함께 읽고 발견하고 퇴고하고 분석하고 새롭게 쓰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만약 살다가 지치고 괴로운 마음에 무릎을 짚고 잠시 내려앉게 된다면, 기억하길 바란다. 지금의 이 모든 것의 근간에는,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이겨내고 새로운 차원의 국면으로 삶을 이끌고 나갈 수 있는 묘수에는, 반드시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을.


나와 당신, 우리 모두의 삶은 곧 '이야기'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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