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그냥 쓰면 되잖아.
부정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람은 주변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내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받습니다.
저는 번역하면서 매번 느낍니다.
주로 번역하는 작법서의 저자는 대부분 책을 처음 집필하거나 외부와 교류가 많지 않은 분들도 있고, 평소 언어생활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해독을 하는 마음으로 접근해야 하는 원서도 있어요.
처음에는 각 잡고 '이런 건 저렇게, 저런 건 이렇게, 이해하기 쉽고 최대한 간결하게 핵심만...'이라고 작업을 하지만, 가끔 원서 그대로 번역하고 있는 저를 보고 깜짝깜짝 놀랍니다.
처음에는 일단 연습이니까 혹은 습작으로 올려보자라는 마음으로 시작하지만, 잡다한 지식들이 걸음을 떼지 못할 정도로 들러붙습니다. 찔끔 쓰고 뭘 자꾸 찾아본다고 뒤적이고, 또 찔끔 쓰다 보면 누가 자꾸 귓가에서 속삭입니다. "ㅈ라 구려."
그렇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어쩌면 못난 자신의 결과물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가짐이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네요.
체계라는 말을 여러 번 했는데, 작법서나 유명한 사람이 말한 방식이 아니라, 내가 왜 중간에 멈추게 되는지, 완성하지 못하는지 돌아보면서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는 말이죠.
보통 뭘 쓰기 전에 로그라인이라는 말을 아마도 가장 많이 듣지 않을까 싶어요.
쓰고자 하는 글의 핵심을 간략히 요약한 글일 뿐이죠. 누구나 이런 이야기는 어떨까 하고 생각하는 내용이 있잖아요? 있으실 텐데요.
평소 반짝하고 떠오른 아이디어로 쓸 수는 있는데, 끝까지 못 갑니다. 도착 지점은커녕 경로도 정하지 않고 쓰는 글이 뻥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는 스포츠카처럼 죽죽 뻗어나갈 리가 있나요.
제 목적은 부업이잖아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거나 끝장나게 재밌는 뭔가를 쓰겠다는 의도도 없고, 쓸 능력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사부작사부작 끄적인 글도 자꾸 고치게 됩니다. 괜히 이랬다 저랬다, 오락가락하면서 시간만 흘려보냅니다.
구체적인 통계는 없지만, 아마 잠깐 끄적이다 관두는 분이 90% 이상일 겁니다. 연재소설을 기준으로 최소 5화까지 쓰는 분들도 5% 미만일 걸요?
일단은 지금처럼 뭔가 떠올랐을 때 무작정 시작해서 쓰되, 무조건 결론까지 넣습니다.
흔히 뇌절이라고 하는 꿈이었다든, 그냥 이유도 없이 지구가 파괴되었다든 일단 시작과 끝은 무조건 쓰는 거죠.
예전에 일본 게임 시나리오 관련 자료에서 주어와 목적어, 그러니까 누가 뭘 한다는 문장만으로 줄거리를 쓰라는 내용이 있었거든요. 맞는 것 같습니다.
일단 그렇게 쓰고, 장르의 클리셰든, 인물 설정, 있을 법한 사건을 배치하는 식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클리셰는 공공재 취급이라서 참 다행인 듯.
예를 들어 옛날 패미콤 게임 시절에 드래곤퀘스트나 파이널 판타지도 보면, 운명의 선택을 받은 용사가 세상의 악을 무찌른다가 핵심 내용이잖아요.
거기에 중간에 어떤 위기가 있고, 어떤 동료를 만나고, 어떤 상실을 경험하는지 등을 끼워 넣는 거죠.
올드 JRPG는 원래 마을에서 고양이 찾기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필드에 나가면 슬라임부터 잡아야 하고요.
저는 계획을 너무 치밀하게 세우다가 방전되는 타입이더라고요. 왜 휴가 계획 열심히 동선까지 디테일하게 짜고는 더운데 그냥 집에 있자 같이 되는 분 없으세요? 저는 딱 그렇거든요.
유튜브 당일치기 트래킹 영상만 보고 이미 다녀온 듯한 기분이 들잖아요(영상을 1인칭으로 너무 잘 찍은 그분들 탓입니다. 절대로 귀찮아서 그런 거 아닙니다ㅜㅜ).
에너지를 소재와 전체 흐름에 쏟고, 해당 장르의 클리셰를 최대한 활용하자는 것이 제 계획입니다.
단기 목표 : 1) 최소 5회까지 쓰기 2) 문피아 일반작가 등업
장기 목표 : 첫 습작 완결
준비 작업
1. 주어와 목적어만으로 시작과 끝이 포함된 대강의 내용을 쓴다.
2. 흐름에 적합한 사건을 배치한다. 이때 해당 장르에 주로 쓰이는 문제나 사고를 찾아서 차용한다.
이후는 캐릭터 조형에 힘을 쓴다.
캐릭터와 관련해서는 이력서를 써보라는 식의 설명도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드라마 대본집들이 많잖아요. 대본집을 보니까 초반 캐릭터 설명이 있더라고요. 몇 가지 읽어보니까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겠더라고요.
글로 쓰는 소설은 외형 묘사가 중요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던데, 드라마 대본은 작가님들이 주연 배우를 대강 떠올리면서 쓰고 대부분 현재가 배경이라서 크게 드러내지 않는 듯합니다.
이 부분은 밀리의 서재 구독 덕을 많이 봤습니다. 대본집 많이 올라와 있거든요.
"일단 앉아서 쓰기 시작했으면 무조건 5,000자를 써라. 중간에 쓰다가 멈추면 또 고치다가 결국에는 다 못 쓰게 된다"
어디서 봤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맞는 말 같습니다. 설사 부업이라고 해도 일단 쓰면 집중해서 정해진 분량을 쓸 수 있어야 지속할 수 있겠죠.
소설을 쓰는 방법이나 관련 정보는 너무 많아서 사람마다 적합한 방식이 다들 수 있습니다.
저는 집중력 부족과 초짜라는 주제 파악을 못하는 점에 문제라서 기계적으로 순서대로 빈칸을 채워 가나는 방식이 맞는 것 같습니다. 템플릿이라도 만들어야 할지도...
아무튼 이 사람은 이렇게 꿈틀거리고 있구나 하고 가볍게 읽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