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건 문제가 아닌데, 내 소설이 돈이 될까?
앞의 글과 이어지는 내용이지만 글을 쓰는 것 자체는 부담이 없습니다.
뭔가 떠오르는 앉아서 계속 두들기다 보면 되잖아요.
공모전에 출품을 할 것도 아니고 그냥 쓰면 되죠.
문제는 각 잡고 돈벌이라고 생각하면 부담감이 슬금슬금 발밑에서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글을 쓰는 체계, 프로세서?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소설이라고 해도 신춘문예도 아니고 내가 읽어본 작품 중에 마음에 들었던 작품의 팬픽 내지는 2차 창작 느낌으로 가볍게 따라 써 보면 의외로 간단할 수도 있겠지요. 반면 부담감을 느끼기 시작하면 모니터 앞에서 멍 때리기만 하다가 무너지는 자존감과 함께 수렁으로 빠져들죠.
그냥 뇌를 빼놓고 쓴다는 마음으로 하면 되는 것 아니냐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인간에게 그런 기능은 없는 듯합니다.
웹소설을 무척 좋아했다, 옛날부터 읽어왔고, 마침 써보자 하는 것이 동기였으면 오히려 쉬웠을지도 모르지만, 부업으로 글을 써서 돈이 될 만한 분야가 뭘까 하는 고민에서 시작한 것이라서 난감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읽게 된 계기도 워낙 크게 성장한 분야이고, 그림 작법서로는 한계가 있으니까 글쓰기 관련 창작 서적을 찾아보자는 마음으로 웹소설에는 어떤 요소가 필요할지 분석해 보고자 읽기 시작했던 거든요.
비슷비슷한 과자들 중에 내 입에 딱 맞는 제품을 찾았을 때의 느낌, 어디 가나 있는 떡볶이인데 유독 맛있어서 포장까지 하고 싶어지는 그런 분식을 만난 순간 같은 재미가 있습니다.
이게 웹소설의 묘미 같아요. 건강 챙긴다고 당분에 주의하면서도 미친 듯이 달달한 커피가 당길 때도 있잖아요. 사람의 어떻게 세계 명작 같은 작품만 읽고 삽니까.
문득 돌아보니까, 국민학생(네, 저 국민학생 세대입니다) 때 만화방에 가서 몰래 무협지를 봤던 적이 있더라고요(요즘 분들은 모르실 수도 있는데, 당시에는 만화책도 화영식하고 당구장, 만화방은 청소년 유해업소였죠. 그런데 워낙 한적한 곳에 있던 만화방이라 쪼끄만 애가 와도 그냥 넘어갔던 건지도...) 놀랍게도 그때 봤던 무협지 스토리는 아직도 기억합니다. 뭐죠? 이게 왜 아직 기억에 남아 있는 거죠?
유튜브에 영상 올리는 웹소설 작가분들이 많습니다. 웹소설 전문 출판사, CP라고 하더군요. 콘텐츠 공급자이자, 일종의 작가 매니지먼트인데, 여기서도 유튜브 활동을 하시더군요. 한산이가 작가님과 소울풍 작가님? 아마 맞을 겁니다. 두 분이 나와서 여러 이야기를 하시는데, 일단 좋아하는 장르를 무조건 써봐라 하는 식의 내용이 특별히 인상에 남았습니다.
취향 문제는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키워드로 제 취향을 혼자서 파악해 봤는데, 우주, 사이버펑크, 오컬트, 코스믹이 더라고요.
물론 판타지도 읽고, 무협도 읽고, BL 제외하고는 전부 읽기는 하지만, 막상 제대로 쓰려면 힘든 장르입니다.
웹소설을 단순히 10, 20대의 전유물로 생각하시는 혹시 계실까 봐 말씀드리지만, 30, 40대가 주소비층입니다. 연령별 독서 추이 등이 나오는 플랫폼을 봐도 10, 20대가 차지하는 비율보다 30, 40대가 더 높고 약간의 50대가 포함됩니다. 개인적으로는 너무 유치하지도 않지만 너무 무겁지도 않은 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글을 쓰다 보니까 오래전에 반백수로 빌빌거리면서 우연히 참가했던 웹소설 작가분의 세미나가 떠오르네요. 10년 동안 활동하면서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쓰다니까 나랑 취향이 비슷한 독자들이 생겼다는 식으로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취형이 좀 안 맞더라도 쓰면서 인기 키워드나 장르의 클리셰를 이용하는 식으로 어떻게든 되겠죠.
뭔 뜬금없는 소리냐라고 하실 수도 있지만, 등급이 있습니다.
물론 없는 플랫폼도 있는데, 나름의 기준이라고 정해진 등급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문피아(제가 찾아본 바로는 문피아가 국내 웹소설 시장의 25%를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는 자유 연재 - 일반 연재 - 작가 연재로 나눠져 있습니다. 자유 연재는 작가분들 말을 빌리자면 심해, 즉, 누구도 읽지 않는 곳이라고 하더군요. 그런 자유 연재에서 7만 5천 자를 연재해야 일반 연재가 되면서 공모전 참여나 여러 면에서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플랫폼들이 대충 찾아본 것만 네이버 웹소설, 카카오 스테이지, 문피아, 조아라, 노벨피아 등등 해서 20곳 가까이 되고, 저마다 주독자층의 연령, 성별, 성향이 다르고 장르 선호도 역시 확연한 차이를 나타냅니다. 플랫폼 선택도 무척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출판사에 기획서를 써서 보낼 때도 해당 출판사에서 기존에 출간했던 책이나 가장 많이 팔린 책 등을 조사하잖아요.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근데 제 취향이라고 고른 키워드가 진짜 마이너더군요. 카테고리고 검색해 봤는데 작품 자체가 거의 없네요. 일본 플랫폼은 호러, 오컬트도 나름 인기 장르던데...
일단 문피아, 노벨피아(좀 더 분석이 필요한데 정확히 파악을 못하고 있어요), 브릿지(황금가지에서 운영하는 플랫폼인데, 제 취향의 키워드와 가장 잘 맞는 곳인 것 같기는 한데)에 무작정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보통 얇은 책 한 권이 200자 원고지 600장이고, 글자수로 보면 12 만자니까, 7만 5천 자는 2/3 정도는 채우는 분량이네요. 웹소설 한 화에 5,000자를 기준으로 잡는다고 하니, 15화 정도를 연재해야 하는 셈이네요.
딱히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죠.
아, 제가 소설 관련 작법서도 무지 읽었다고 말씀드렸던가요? 못해도 100권은 넘게 읽은 것 같네요.
초고 완성 전에는 작법서의 모든 내용이 다 개소리라고 보시면 됩니다.
일단 흰색은 종이요, 검은색을 글이라는 생각으로 무조건 많이 써서 초고를 완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만 내가 하나의 주제로 글을 쓸 수 있도록 돕는 장치는 필요합니다.
진짜 무작정 쓸 수 있는 분은 재능이 있으니까 빨리 쓰세요.
예전에 어떤 시나리오 공모전에 최우수상이었나를 수상했던 대학생?(제 기억으로는 대학교 신입생)이 '시나리오 100편 정도를 읽고 그냥 썼는데 됐다'는 수상 소감이 기억에 남아 있네요.
진짜 이런 분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작법서 내용은 다 주옥같고 맞는 말만 있지만, 뭐든 때와 상황에 맞는 것이 필요하잖아요.
일자 나사를 십자드라이버로 돌릴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위에서 말한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장치가 저한테는 나름의 글을 쓰는 체계를 잡는 것이죠.
웹소설을 쓰는 데 필요한 필요 최소한의 정보를 정리하고, 정리한 내용을 바탕으로 무작정 쓰겠다는 말입니다.
산경 작가님이라고 '재벌집 막내아들'로 나름 유명하신 분입니다(드라마가 되면서 국밥집 장남이 되었죠. 왜 원작을 가져다가 국밥을 말았을까요?). 이분 작법서에서 '아이디어나 영감은 불현듯 왔다가 귀신처럼 사라진다. 아이디어에 매달리지 말고 접근 방식을 바꿔라. 소재에 집중해라'라는 부분이 저한테는 확 꽂히더라고요.
출간된 직후에 읽었던 책이지만, 마음을 먹고 다시 읽어보니 내 상황에 맞는 부분이 딱딱 보여서 신기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키워드를 뽑아 본 것도 소재를 쉽게 찾을 수 있는 방법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용서가 글을 쓰는 습관을 들인다고 딱히 번역의 완성도에 큰 차이가 나는 장르가 아니기는 합니다.
제가 딱히 다른 번역가분들처럼 스펙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일본어도 시험 성적만 상위권입니다(외국어 시험 성적은 사실 훈련의 결과죠ㅎ). 일본어 자체를 잘 안다기보다는 잘 쓰는 쪽이죠. 실용서 번역은 외국어는 기본이면 충분하고 해당 분야를 잘 아는 쪽이 유리합니다.
덕분에 습관을 들이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매일 뭐든 쓰니까 키보드에 손을 올리면 자동으로 글은 나옵니다.
주제가 흐릿해서 문제죠. 브런치 시작하면서 쓴 스크리브너 관련 글은 나쁘지 않았죠?
지금까지, 지금도 매일 쓰는 글이 영감과 아이디어를 무작정 써 내려가는 식의 글입니다.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머릿속에 들어 있는 기억들을 틈만 나면 헤집고 있습니다. 예전에 읽었던 작법서, 내가 번역했던 소설 쓰는 법 관련 글(티스토리 블로그 운영하면서 올렸던 글이 있어요)이나 참여했던 강연 내용들을 떠올려 봅니다. 기억의 궁전처럼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저의 뇌는 그렇게 뛰어나지 못하거든요. 단편적인 것들을 어떻게든 긁어모으고 있습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속담이 있잖아요. 지금까지 방치했던 구슬들을 다시 꺼내서 닦고 조이고 기름칠......? 조이고 기름칠 곳은 없는 듯하니 그냥 닦기만 하는 걸로......
뭐든 시작은 쉽습니다. 시도만 하면 되니까.
완결(완성) 이 힘들죠.
웹소설 분야를 찾아보면서, 여기도 진짜 성실하고 꾸준한 사람만 살아남는 것 같다고 느껴졌습니다.
우스갯소리로 데뷔작이 유작이 된다는 말을 하는데, 그렇게 끝나는 작품이 특히 많은 곳인 듯합니다.
내용의 평가를 나뉠 수 있겠지만, 매일 꾸준히 올리는 연재든, 인고의 시간을 거쳐 완성된 작품이든 다 대단합니다.
기회 되면 괜찮게 본 웹소설만 보아서 리뷰를 써볼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