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해서 시작조차 못하고 있다면
내가 24시간 짧은 하루를 보내면서 집중하지 못하는 순간 가장 많이 떠올리는 생각이다. 모든 감정들은 말 그대로 이성의 영역 밖에 있는 것이기에 자신의 의지만으로 제어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사람이 가장 다루기 힘든 감정은 '불안'이 아닐까 한다. 자기 계발서의 아버지 '데일 카네기'조차 <자기 관리론>에서 걱정을 멈추고 불안을 자제하는 것이 가장 어렵지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불안'하면 떠오르는 설화가 있다. MZ세대에게 친숙한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설화'이다. 흔히 '지나친 사랑의 성급함'을 이 이야기의 주제라고 해석한다. 하지만 나는 오르페우스가 느꼈을 감정에 좀 더 몰입해보니 그가 얼마나 '불안'했을지에 더 마음이 쓰였다.
이 설화의 내용을 모르거나 들어 본 것 같은데 기억이 안나는 이를 위해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둘의 이야기를 간략히 소개해보자. 오르페우스는 리라(lyra, 고대 그리스의 작은 현악기. 하프와 비슷하다.)를 아주 잘 켜는 남자인데, 에우리디케라는 여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한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에우리디케는 산책을 나갔다가 자신에게 집적대는 양치기를 만난다. 그를 피해 달아나던 그녀는 독사에 물려 죽게 되고 아내를 잃은 오르페우스는 슬픔에 빠져 리라를 연주하며 혼자 쓸쓸히 지낸다.
그의 구슬프고 아름다운 리라 연주와 에우리디케와 사별한 사연을 듣고 감동한 이들의 도움을 통해 오르페우스는 죽음의 신 하데스가 있는 지하세계까지 떠나게 된다. 하데스마저 그의 음악에 마음을 뺏겨 '오르페우스는 둘 다 지상에 올라가기 전까지 뒤돌아 에우리디케를 보지 마라'는 조건과 함께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에게 기회를 준다. 고된 여정과 오랜 기다림 끝에 에우리디케를 데리고 지상으로 오르던 오르페우스는 자신이 지상에 도착하자 금기를 잊고 뒤를 돌아본다. 아직 에우리디케는 지상에 다 오르지 못했었고 결국 그녀는 지하세계로 떨어져 오르페우스와 다시 이별하게 된다.
어느 날 강변을 따라 러닝을 하다 오르페우스가 떠올랐다. 10km를 목표로 달리기 시작했고 어느새 반환점을 돌아 1km를 남겨둔 때였다. 고작 1km를 남겨둔 상황이었지만 사실 1km라는 거리를 직접 눈으로 본다면 어마어마한 거리에 놀라기 십상이다. 하물며 이미 9km를 뛰어 숨이 차고, 다리가 천근만근 무거울 때 1km 떨어진 목표지점을 본다면 얼마나 진이 빠지겠는가. 번지점프대 위에서 밑을 내려다보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밑을 힐끔 보게 되는 사람처럼, 마음속으론 "보면 안 돼!"라고 수없이 외치던 나도 결국 땅바닥을 향해 고정해둔 고개를 들어 저 멀리 떨어진 도착점을 바라보고야 말았다. 그 순간 지하로 떨어진 에우리디케처럼 나의 러닝도 끝이 났다.
뒤돌아 에우리디케를 바라본 오르페우스와 고개를 들어 도착지를 바라본 나의 공통점은 "과연 내가 목표를 이루어 낼 수 있을까?"라는 '불안함'이다. 성공에 대한 기대는 의욕을 불태우기도 하고 좋은 자극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기대로 인해 불안해진다. 불안한 마음에 자신이 원하는 목표, 이상을 다시 확인할수록 지금 자신의 현실 사이의 괴리감만 더 커진다. 불안이 다시 불안을 키우는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에우리디케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었던 오르페우스는 지상으로 올라오는 내내 굉장히 불안했을 것이다. 불안하면서도 자신의 목표를 이루면 다시 살아난 에우리디케와 함께할 나날들을 기대하였을 테고, 그럴수록 확인할 수 없는 에우리디케를 생각하며 더욱더 불안해졌을 것이다.
어쩔 수 없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나와 오르페우스 같은 사람은 한 번 불안하기 시작하면 빠져나오기 힘든 악몽이 시작된다. 그래서 '불안'의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할 때마다 나는 데일 카네기의 조언을 잊지 않으려 몇 번을 되뇐다. "오늘 하루를 충실하게 살아라." 과거의 '오늘'이 모여 현재의 나를 이루었으니 더 좋은 미래를 위한다면 미래를 떠올리며 불안해하지 말고 '지금'에 집중해야 한다.
그 이후로 나는 더 이상 도착지점을 통과하기 전에 달리기를 멈춘 적이 없다. 힘들고 지칠수록 도착지점을 바라보지 않고 지금 내딛는 한 발 한 발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렇게 구구절절 '불안'에 대해 이야기하고 오르페우스 설화까지 언급한 이유는 브런치 작가 신청을 통과하고 처음 글을 쓰려니 다시 불안해졌기 때문이다. '좋은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텅 빈 화면 속에 글자는 채워지지 않고 마음속에 불안함만 가득 차올랐다. 그래서 나는 '그저 그런 글'을 쓰더라도 '오늘' 한 편의 글을 써야겠다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