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이 만든 의자

LC 2

by 흑백조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건축가',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으로 평가받는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1887 - 1965)는 자신의 저서 '건축을 향하여 (Vers une Architecture, 1925)'에서 집을 "살기 위한 기계(A house is a machine for living in)"라고 정의했었습니다.

또한 그는 이에 덧붙여 집은 "기능성 가구 또는 생활용품을 포함해야 하는 산업제품(an industrial product that should include functional furniture or equipment de l’habitation)"이라고 하였다죠.

르 코르뷔지에는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그의 사촌이자 같은 건축가였던 '피에르 잔느레(Pierre Jeanneret, 1896 - 1967)', 역시 건축가였던 '샬로트 페리앙(Charlotte Perriand, 1903 - 1999)'과 함께 가구를 디자인하기 시작합니다.

이 과정에서 '바스큘랑(Basculant, 1928)', '그랑 콩포르 쁘띠 모델(Grand Conport petit modele, 1928)', '그랑 콩포르 그랑 모델(Grand Conport grand modele, 1928)', '셰이즈 롱(Chaise Longue, 1928)' 등의 명작 가구들이 탄생하게 됩니다.

이들 가구는 다음 해인 1929년 르 코르뷔지에의 가을 박람회(Salon d'Automne)에서 'Equipment for the Home'으로 소개되며 큰 반향을 일으킵니다.

1960년대 들어 이태리의 가구브랜드 '까시나(Cassina)'가 르 코르뷔지에와 직접 접선하여 그의 가구들을 재생산하기로 계약을 하였고, 일련의 가구들은 LC라는 코드에 숫자를 더한 현재의 이름으로 명명되어 'LC Collection'이라는 가구 라인으로 재생산, 판매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코드네임인 LC는 생각하시는 대로 Le Corbusier의 이니셜이지요.

9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까시나의 르 코르뷔지에 의자는 미니멀&럭셔리의 대명사로 베스트셀러가 되어 있습니다.


르 코르뷔지에는 인체의 연장선상에 도달했다는 의미를 담은'human-limb objects'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human-limb objects는 순종적인 하인이다. 좋은 하인은 주인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조심스레 행동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지운다."(The human-limb object is a docile servant. A good servant is discreet and self-effacing in order to leave his master free.")

그가 디자인한 가구는 모던한 외관을 가짐은 물론, 모든 부분이 인체의 치수를 고려하여 설계되었고, 이로 인해 사용자에게 극도의 편안함과 자유로움을 선사합니다.

그의 대표작인 LC2(Grand Confort petit modele)가 각지고 견고해 보이는 외관을 가졌음에도 불구, '마치 몸을 감싸는 듯한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것은 그저 우연의 산물이 아니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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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C2 (Grand Confort petit modele, 1928)

모던 체어의 전형, '타임리스 클래식'이라고도 불리는 의자입니다.

영화나 CF에서도 그 모습을 종종 찾아볼 수 있지요.

크롬도금된 스테인레스강 프레임 안에 5개의 가죽쿠션이 삽입되어 있어, 쿠션 바스켓이라는 별명으로 불려지기도 합니다.

크롬도금된 강관과 검은 가죽쿠션 조합의 모던함은 마치 바르셀로나 체어의 그것을 연상시키기도 하지요.

얼핏 보면 'Grand Confort(직역 시 '큰 편안함')라는 이름값을 할까?' 싶을 정도로 편안함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외관을 가지고 있지만, 많은 사용기에 따르면, '몸을 감싸는 듯한' 편안함을 준다고 합니다.

설계에 '모듈러'라는 인체 치수 개념을 적극 도입한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이니만큼, 당연히 사람의 치수와 자세에 적합하게 디자인된 것이지요.

실제로 저도 앉아 보았었는데, 극도의 편안함을 선사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텅 빈 자신의 자택 거실에 단 하나만의 의자만을 두었을 정도로 가구의 배치와 디자인에 대한 강박에 가까운 취향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그러한 그가 제품 시연회, 인터뷰 등에 사용했던 의자가 바로 LC3입니다. 정육면체 모양의 LC2를 위에서 누르고 옆으로 당긴 것 같은 형태를 가지고 있는 이 의자 역시 모던한 외관과 편안한 사용감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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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C3 (Grand Confort grand modele, 1928)


르 코르뷔지에의 LC 시리즈는 선명한 디자인 콘셉트를 가지고 있는데요,

크롬 도금의 스트럭쳐와 쿠션에 가까울 정도로 탄력 있게 감싸진 검은색 가죽 패드.

그리고 박스 형태의 단순한 이미지 포지셔닝.

주로 노출 콘크리트 건물로 미니멀의 시대를 열었던 그에게 소파들은 그런 단조로운 공간에 놓이는 오브제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도록 디자인한 것 같아요.

게다가 무려 백여 년이 지나도록 그에 필적하는 소파 디자인이 없다는 것.

아직도 고가의 베스트셀러로 판매가 되어 있다는 것.

이 소파 역시 소위 ‘명품 럭셔리 매장’에는 단골 소품이라는 것만 봐도,

연식으로는 클래식이지만 일찌감치 백 년을 앞선 디자인이라는 것은 확실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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