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의 특성
어떤 조직이든 질서와 체계가 있다. 조직의 질서와 체계는 산업과 규모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의사결정 권한이 누구에게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물류라는 산업군을 큰 틀로 하고, 오프라인과 온라인이라는 범주를 작은 틀로 설정해 그 차이를 비교해 보면 어떨까?
조직이 유연하다는 것은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의미한다. 혹자는 "유연한 조직일수록 체계가 없는 것이 아니냐?" 반문할 수 있으나 '조직이 유연하다는 것'과 '조직에 체계가 없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이다.
물류에서 유연한 조직은 큰 강점을 지닌 것이나 다름이 없다. 물자가 이동하는 과정에서 예측할 수 없는 무수한 일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주문 변경, 재고 부족, 상품 파손, 오배송, 크고 작은 사고까지. 이러한 돌발상황에 발 빠르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일정 부분 유연한 체계가 조직 내에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내가 실제 겪었던 사례를 한 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오프라인 물류 일을 하고 있을 때다. 여느 때처럼 거래처의 주문이 접수됐다.
* 주문처 : OO회사(인천광역시 서구 OO)
* 주문내역 : OO제품 OO개
* 특이사항 : 회수용 팔레트 포장 요망(밴딩 및 랩핑)
* 수령일자 : OO년 OO월 OO일 OO시 (담당자 : OOO)
나는 위 주문서를 바탕으로 먼저 OO제품 OO개가 출고 가능한지 여부를 전산으로 확인했다. 다행히 재고가 있었고, ERP를 통해 출고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수령일자를 지키기 위해 인천까지 소요되는 시간을 고려하여 차량을 배차했다. 배차를 마친 뒤 현장으로 가 실제 수량을 확인하였고, 후가공 담당자에게 주문서를 건네며 특이사항대로 포장해 줄 것을 요청했다. 포장을 마친 후 직접 현장으로 내려가 포장 상태와 제품 및 수량을 한번 더 점검하였고, 해당 물품을 이상 없이 상차하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위 제품은 반품조치를 당했다.
반품 요청서의 반품 사유는 다음과 같았다.
"명시된 수령일자의 시간보다 약 2시간 뒤에 제품이 도착하였음."
당장 기사에게 전화를 걸어 늦은 이유를 물었다. 대답은 간단했다.
'접촉사고로 인한 운송지연'.
주문서대로 정확히 출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사유 때문에 반품처리가 된 것이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완벽히 준비하였는데,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범위에서 벌어진 일 때문에 반품이 되었다는 사실에 상당히 억울했다.
하지만 나는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고객사와 커넥션 관계가 있는 영업관리팀의 부장님만이 이 상황을 협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반품된 제품을 원하는 시간대에 다시 보낼 것인지 또는 다시 창고에 적재해둘 것인지에 대한 결정을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오프라인 물류 조직에 속해 실무를 담당했음에도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실제로 물류 산업 전반에서 위와 같은 돌발상황은 수시로 발생한다. 또한 돌발상황에 독자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오프라인 물류 조직은 상당히 드물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오프라인 물류의 특성을 알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오프라인 물류는 특정 고객을 상대로 물류 업무를 수행한다. 조직 내에선 특정 부서 혹은 직책에 위치한 사람만이 고객사와 커넥션을 유지하며 그 관계를 조정할 수 있다. 또한 대부분의 거래가 회사 간의 계약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관계가 지속적이며 상황에 따라서는 담당자 간의 유대관계가 형성되기도 한다.
이러한 점을 전제로 한다면 왜 오프라인 물류 조직이 독자적으로 돌발상황을 해결하기 어려운지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대부분의 기업이 영업관리팀과 물류팀의 특정 인원을 통해 고객사를 상대한다. 그렇다고 해서 오프라인 물류 조직을 좋다, 나쁘다 평가하기는 어렵다. 특정 고객을 상대로 하는 오프라인 물류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어느 정도 경직성을 확보하는 것이 고객사와의 관계와 이윤추구에 더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반면, 온라인 물류는 불특정 고객을 상대로 물류 업무를 수행한다. 회사와 개인 간의 지속적 계약이 아닌 일회성 계약을 통해 거래가 이루어지며, 고객의 수도 매일 달라진다. 따라서 특정 부서 또는 직책에 위치한 사람과 커넥션을 유지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온라인 물류 조직에서는 상황에 따른 매뉴얼을 구체적으로 설정해두고 다수가 다수의 고객을 상대하는 방법을 보편적으로 활용한다. 고객이 제품에 대한 클레임을 요청했을 때, CS 부서에서 그 요청을 받아 물류팀에 전달해주면, 물류팀은 고객의 요구에 맞추어 설정된 매뉴얼에 따라 일을 처리한다. 갓 들어온 신입사원이든 물류팀의 팀장이든 상황에 따른 매뉴얼만 제대로 숙지하고 있다면 누구든 돌발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그렇다면 온라인 물류 조직이 오프라인 물류 조직에 비해 더 유연하다 할 수 있을까?
아래의 표를 보자.
'상황에 따른 의사결정'과 '의사결정 권한의 분배'라는 두 가지 기준 중 어떤 기준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조직의 유연함을 달리 정의할 수 있다.
'상황에 따른 의사결정'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오프라인 물류 조직이 온라인 물류 조직에 비해 훨씬 유연하다 할 수 있다. 비록 특정 직책의 담당자가 고객사와의 관계를 전적으로 유지하지만, 담당자 간의 유대관계를 바탕으로 합의와 일정 부분 양보를 통해 피해와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기준으로 본다면 오프라인 물류 조직은 설정된 매뉴얼에 따라 돌발상황을 처리해야 하는 온라인 물류 조직에 비해 상당히 합리적이다.
반면 '의사결정 권한의 분배'라는 기준에 비추어 본다면 온라인 조직이 상대적으로 유연해 보인다. 불특정 다수라는 고객군의 특성상 구체적인 매뉴얼을 설정해두어 업무 관련자 모두가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어떤 조직이 더 유연하다 단정 지을 수 없지만, 두 조직 모두 물류 환경의 특성과 고객이라는 틀 안에서 최대한 유연성을 확보하도록 개편되어왔음은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현재 오프라인 물류 조직과 온라인 물류 조직이 가진 상대적 유연성은 그 특성에 맞게 최적화된 조직 형태라 볼 수 있다.
오늘도 물류는 예측할 수 없는 무수한 돌발상황에 둘러싸여 있다. 어제도 그랬고 내일도 그럴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고객을 상대하는 조직인 '영업관리팀(오프라인)', 'CS팀(온라인)'과 긴밀한 협조가 바탕이 되어야 하며, 그 안에서 유연함이 발휘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물류의 최종 목적지는 '고객'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