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의 시작과 끝
물류는 돌고 돈다. 물류 자체가 '물건의 흐름'을 뜻하는 것이니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물류라는 큰 틀에서 벗어나 세부적인 프로세스를 살펴보면 돌고 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검수란 간단히 말해 '개수를 검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지 않는 표현이기에 다소 생소할 수 있으나 '확인'의 개념이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선물용 사과를 구매하기 위해 마트를 방문했다고 가정해보자.
진열된 포장용 사과상자를 발견하고 그 자리에서 바로 구매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아마 극히 드물 것이다.
박스를 열어 사과의 개수를 세어도 보고, 사과의 상태는 괜찮은지 살펴도 보고, 운이 좋다면 샘플용 사과를 시식할 수 있는 기회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더 까다로운 사람은 사과 박스의 디자인과 흠집 여부도 확인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확인 작업을 거치는 것일까? "제대로 된 제품을 구매하고 싶기 때문이다."
정당한 값을 지불했음에도 제품에 하자가 있거나 결함이 있다면 그 피해는 미처 확인을 하지 못한 본인이 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물류에서 '검수'도 마찬가지다. 내가 받은 제품의 수량과 상태가 괜찮은지 확인하는 작업을 거치지 않는다면, 후에 발견된 제품의 하자나 결함에 대한 책임은 고스란히 회사와 물류부서가 떠안을 수밖에 없다. (책임에 대한 시시비비를 가리기가 상당히 곤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가 받은 제품을 내 소유로 확정하기(재산 처리 혹은 구매 처리) 이전에, 제품에 이상이 없음을 반드시 '확인'해야만 한다.
검수 작업을 조금 거시적으로 보자.
물류과정에서 검수 작업을 본다면 '돌고도는'이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제품 'A = B+C+D'라고 가정해보자.
A제품을 만드는 제조업체는 B부품, C부품, D부품을 각 협력사로부터 조달해 제품을 생산한다. 생산계획에 따라 B, C, D부품을 주문하고, 해당 부품이 공장에 도착하면 검수작업을 통해 부품의 개수와 상태를 확인한다. 생산계획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꼼꼼히 점검하고 이상이 없다면 제품 A를 생산하게 된다.
제품 'Z = Y+X+A(=B+C+D)'
완제품 Z를 만드는 제조업체는 Y부품, X부품, A부품을 각 협력사로부터 조달해 제품을 생산한다. 위와 마찬가지로 Y, X, A 부품을 검수하고 이상이 없다면 제품 Z를 생산한다.
이렇듯 출고와 입고라는 과정이 이루어질 때마다 검수는 반드시 수반된다. 그리고 이 검수는 최초의 부품이 생산되는 시점부터 여러 제조업체를 거쳐 단위 부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통해 최종 소비자의 구매행위에까지 이르러야 비로소 종료된다. 최종 소비자 역시 완제품을 검수하고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뒤에 구매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돌고도는' 검수과정은 산업이 고도화되고, 완제품을 구성하는 부품의 수가 많아질수록 보다 정밀하며 복잡하다. 따라서 물류부서는 검수라는 작업의 특성상 구매, 품질 부서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다시 돌아와 내가 몸담고 있는 온라인 의류업체의 검수과정을 '간단히' 살펴보자.
독점 판매권 계약을 맺은 54개의 거래처에서 제품을 수령한다. 통관을 거쳐 물류창고로 제품이 들어오면 가장 먼저 검수작업이 이루어진다. 1개 업체당 적게는 2,000피스, 많게는 50,000피스 이상을 입고하기 때문에 검수량이 많은 경우엔 물류센터의 전 직원이 붙어 검수작업을 수행해야만 한다.
대부분 바코드가 붙어 들어오기 때문에 제품 하나하나를 바코드로 스캐닝해 제품수를 확인하는 작업을 거치지만, 54개의 거래처 중 8개 브랜드는 바코드가 미부착된 상태에서 들어오기 때문에 바코드를 인쇄, 등록, 부착, 검수하는 다소 번거로운 절차를 한번 더 수행하는 경우도 있다.
전 직원이 달라붙어 바코드 스캐닝 작업을 끝내면, '최초 주문서'와 '송장에 기록된 제품의 수량'과 '바코드 작업 수량'을 비교해 검수 결과를 도출한다. 대부분 수량이 일치하지만 간혹 수량이 부족한 경우가 발생하는데, 이럴 경우 부족한 제품군만 다시 재검수한다.
그렇게 1차 검수가 이상 없이 완료되면, 2차 검수를 위한 준비가 이루어진다.
2차 검수를 위한 준비과정은 1차 검수를 완료한 제품을 세분화된 창고와 매장으로 재산 처리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즉, '분류'작업이 시작되는 시점인 것이다. 이 역시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작업이다.
예를 들어, A제품 100개가 있다고 가정하면, 이 100개를 온라인 재고, 일반창고 재고, 위탁업체 재고, 매장 재고로 분류한다. 그러나 한 제품당 그 수량이 수백 개인 점, 수십 개의 제품군이 입고된다는 점, 분류해야 할 위탁업체와 매장이 20곳이 넘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꽤 성가신 작업이다.
이 작업을 끝내면 재산처리를 위해 2차 검수를 실시한다. 온라인, 일반창고, 위탁업체, 매장별로 분류한 제품의 수량을 파악해 계획대로 분배 작업이 수행됐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런 뒤에 ERP에 각 카테고리별로(온라인, 일반창고, 위탁업체, 매장) 재산을 입력하고, 지정된 랙(Lack)에 제품을 보관한다.
여기까지 완료하면 일반적인 검수과정이 종료된다.
(입고된 전체 물량을 확인하는 1차 검수, 분배된 부분 물량을 확인하는 2차 검수)
하지만 회사라는 곳은 매출을 극대화하여 이익을 산출해야만 하는 집단이다. 1년을 기준으로 보면 시즌별 매출을 극대화하는 할인행사가 중간중간 계획되어있고, 각 매장의 반품 건과 창고에 쌓인 장기재고품목, 정기재고조사, 그밖에 랙(Lack)의 보관효율성을 위해 제품 구역을 통합하는 대공사 작업도 주기적으로 수행한다.
그러다 보면 같은 제품을 최소 5번 이상 검수하게 되는데, 제품군의 종류가 다양하고 그 수가 많을수록 보다 정확하고 오류가 발생하지 않도록 수행되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제품이 입고되는 순간부터 창고에 보관하는 과정을 거쳐 고객에게 출고될 때까지 검수작업은 끊임없이 반복되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회사의 재산을 관리하고 고객이 필요로 하는 제품을 '이상 없이'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론 막막하고 때론 너무 반복적이라 지루하지만, 검수는 물류의 기본이며 시작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