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가 울던 그 날, 엄마가 사라졌다
매앰매앰 매앰매앰
매앰매앰 매앰매앰
무더운 한여름 여유로운 주말 오후, 세 소녀가 사는 집 앞마당 감나무에 매달린 매미는 한여름이 너무 뜨겁다며 투정 부리듯 목청껏 울어댔다. 매미의 속을 모르는 세 소녀는 매미 우는소리와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거실에 펼쳐진 대나무 발 위에서 곤히 자고 있다.
세 소녀 중 가장 큰, 일고여덟 살쯤으로 보이는 소녀가 잠자리에서 뒤척이며 기지개를 켜고 일어났다. 비몽사몽 선풍기 앞에 앉아 창문 밖 타들어 갈 듯 내리쬐는 뙤약볕을 한동안 멍하니 바라봤다.
이상하다. 집이 너무 고요하다. 큰 소녀는 비몽사몽 하던 눈을 번쩍 뜨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집안을 구석구석 뒤지기 시작했다. 엄마 소녀의 엄마는 안방과 작은방에 없다. 엄마~ 부엌 그리고 화장실에도 없다. 엄마! 마당으로 나가 엄마를 불러봤지만, 소녀의 부름에 답하는 목소리는 어디서도 들리지 않았다.
소녀의 울부짖음에 두 어린 동생들은 놀라 잠에서 깼다. 아직 말을 제대로 떼지 못한 막내는 영문도 모른 채 소녀의 얼굴에 서린 불안감과 공포감을 직감적으로 느꼈는지 따라서 엉엉 울기 시작했다.
소녀는 엄마가 언젠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종종 휩싸이곤 했다. 그날이 오늘인가 보다. 막내동생이 태어난 후 줄곧 엄마는 엄마가 없으면 네가 엄마야. 엄마가 없을 땐 동생들을 잘 챙겨야 해라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소녀는 너무나 큰 존재였던 엄마의 역할을 해낼 자신이 없었다. 소녀에게 엄마는 없어서는 안 된다.
소녀의 엄마는 요새 자주 울었다. 최근에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씩씩대는 엄마 손을 잡고 따라간 곳이 있었다. 주인이 없는 듯한 집의 모든 가구엔 빨간딱지가 덕지덕지 붙어있었고, 장판 위의 뿌연 먼지 곳곳엔 발자국이 새겨져 더는 집주인이 돌아올 것 같지 않은 곳이었다. 엄마는 그곳에 주저앉아 돌아오지 않을 집주인을 기다리며 한참을 울었다.
안방에서는 부모님이 다투는 소리가 잦아졌다.
그 집, 지금 다 빨간딱지 붙었고, 옷이랑 필요한 것만 챙겨서 도망간 것 같아. 보증 선 돈 다시 받을 수 있는 거 맞아? 상민씨랑 연락은 돼?
아, 진짜! 남편을 못 믿어? 좀 기다려봐! 돌려받을 수 있어. 그 자식 돌아올 거야.
언제까지이이! 언제까지 기다려어어어!! 지금... 지금... 우리가 곧 죽게 생겼는데. 우리 애들 크면 남들 다 다니는 학원도 보내야 하고, 돈 들어갈 일이 더 많아질 텐데. 어떻게 그걸 우리가 대신 갚아? 어떻게 할 거야!
안방에선 울음 섞인 엄마의 목소리가 매일같이 들렸다. 아빠의 한숨 소리도 커져만 갔다.
그럴 때면 소녀는 그 화살이 작은방으로 향하지 않도록, 방문을 굳게 닫고 책가방에서 노트와 필통을 꺼냈다. 동생들에겐 책을 읽으라며 동화책을 쥐여주고, 소녀는 그날 학교에서 했던 받아쓰기 오답을 몽당연필로 꾹꾹 눌러가며 다시 쓰곤 했다.
학교 선생님이 그랬다. 지금은 우리나라 사람들 모두가 힘든 시기라고, 그러니 나 같은 어린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몽당연필이 돼도 버리지 말고 끝까지 다 쓰고, 치약도 끝까지 짜서 쓰고, 불필요한 전깃불은 모두 끄고, 모든 물건을 아껴 쓰는 거라고.
소녀는 몽당연필을 꾹꾹 눌러쓰며 이 연필을 다 쓰게 될 즘엔 우리 가족에게 불행한 일이 더 이상 생기지 않고, 전처럼 웃음소리만 가득하길 바랬다.
그렇게 다 커버린 소녀, 큰 소녀는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엄마가 집안일을 끝내고 적적한 오후에 주로 찾아가곤 했던 집 앞 미용실 이모에게 찾아갔다. 이모, 엄마가 없어요. 엄마가, 엄마가 없어요. 자고 있는데 엄마가 없어졌어요. 끄윽 끅 소녀는 눈물범벅이 되어 벌겋게 상기된 채로 미용실 안을 두리번거리며 엄마의 존재를 찾았다.
어휴~ 꼬마 아가씨, 다 커서 왜 이렇게 울어. 엄마 여기 안 오셨어. 미용실 이모는 소녀의 눈높이에 맞춰 쪼그리고 앉아 얼굴에 얼룩덜룩 묻은 눈물을 휴지로 닦아주었다.
우리 꼬마 아가씨 엄마는 어디 갔을까? 아, 오늘 장날이잖아. 잠깐 기다려봐. 엄마 장날마다 장 보러 가시잖아~ 너희 자고 있어서 금방 다녀올 생각에 장에 가신 걸 수도 있으니. 집에 가서 좀만 기다려보자.
맞다 오늘은 장날이다. 동네 아줌마들은 다들 장바구니를 하나씩 끌고 미용실 앞을 지나갔다. 미용실 이모도 장날은 더욱 바쁘다. 장 보러 나왔다가 시장에서 가까운 이 미용실에서 머리를 볶으러 나온 아주머니들로 가득 찼다. 울음을 그치고 미용실 안을 둘러보니 머리를 볶으러 줄을 선 아줌마들 서너 명이 소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녀는 미용실 이모의 말을 믿고, 마음을 진정시킨 채 집에서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때, 미용실 밖 익숙한 장바구니가 소리 내며 굴러가고 있었다.
엄마!!! 익숙한 장바구니를 끌고 있는 여자는 소리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이구, 우리 딸 벌써 일어났어? 자는 사이에 금방 다녀오려 했는데. 우리 딸 좋아하는 수박 사왔지요~ 소녀는 엄마가 돌아와서 안도하는 마음과 아직 자신은 엄마 없이 아무것도 못 하는 나약한 존재라는 마음이 뒤섞인 채 엄마에게 달려가 품에 안겼다. 엄마, 우리 두고 어디 가지 마. 엄마는 품에 안긴 소녀의 등을 쓸어내렸다. 어휴 우리 애기 놀랬구나. 알았어, 다음엔 말하고 갈게.
그날 이후 소녀는 엄마에게 졸라 계란프라이 부치는 법과 라면 끓이는 법을 배웠다. 진공청소기와 세탁기를 작동하는 법도 배웠다. 엄마가 계속 우리 곁에 있어 줬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언젠가 소녀가 동생들을 보살피게 되는 순간이 오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엄마 몫을 대신해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서 소녀를 괴롭혔다.
간담이 서늘하고, 세상이 무너져 내릴 것 같았던 그 날의 공포는 아직도 눈에 선하다. 소녀에게 엄마의 몫을 대신하게 될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매미가 목청껏 울어대던 한여름 주말 오후의 그 사건으로 소녀는 빨리 어른이 되어버렸다.
매앰 매앰 매앰
매년 매미가 울면 나는 저절로 전화를 건다.
“엄마! 어디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