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디서 왔고 누구인가에 대한 물리학의 대답
다시 한 번 스티븐 호킹의 ‘방정식과 책 판매량 반비례 법칙’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자. 이 법칙은 글자 그대로 책에 방정식, 혹은 복잡한 공식 하나가 추가될 때마다 책의 판매량은 반감한다는 내용이다. 스티븐 호킹은 <시간의 역사>에서 지인에게 들었다는 이 법칙을 소개하며, 실제 단 하나의 공식만 책에서 언급했다. 그것은 질량-에너지 등가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고안한 ‘E=mc²’이었다.
‘방정식과 책 판매량 반비례 법칙’을 철저히 따른 이 책이 얼마나 팔렸는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사실은 아인슈타인의 ‘E=mc²’ 하나면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스티븐 호킹은 이 단순한 공식 하나로 질량과 에너지는 물론 시간과 공간의 복잡한 문제까지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해석하고,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가장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는 공식. 아인슈타인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다. 가장 단순한 것이 가장 아름다운 법이다.
위대한 아인슈타인의 젊은 시절은 별 볼 일 없었다. 이탈리아 파비아 대학에 진학해서도 이런 ‘빈둥거림’은 계속됐다. 정식으로 강의를 등록하지도 않고, 시험을 치르지도 않고, 재미 삼아 학교에 다녔다. 칸트의 책을 읽으며 그저 학교를 ‘왔다 갔다’ 했다. 아인슈타인의 천재성이 폭발(마치 빅뱅처럼)한 것은 취리히 대학에 진학하면서부터다.
여기서부터는 우리가 익히 아는 내용이다. 아인슈타인은 1905년 당시 명성을 크게 얻던 과학 잡지 <물리학 연보>에 세 편의 논문을 보낸다. 첫 번째 논문은 원자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내용이었고, 두 번째 논문은 양자역학의 장을 여는 내용이었으며, 세 번째 논문은 왜 사람에게 시간이 똑같이 흘러가지 않는 것인지를 설명하는 상대성이론이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상대성이론이 아이작 뉴턴의 ‘만유인력’에서 설명하는 중력과 논리적으로 충돌한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만유인력과 상대성이론이 양립할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무려 10년을 매달렸다. 그 결과 아인슈타인의 최대 업적이자 인류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과학 이론’으로 불리는 일반상대성이론이 탄생한다.
◇‘가장 아름다운 이론’을 마주한 순간
저자 카를로 로벨리는 대학 졸업반 시절 상대성이론을 접하며 느꼈던 감동을 잊지 못한다. 그는 칼라브리아 섬의 해안에서 지중해 햇살을 즐겼다. 책을 읽다 가끔 고개를 들어 반짝이는 바다를 바라보곤 했다. 그때의 ‘충격’과 감동을 이렇게 전한다.
“마법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마치 친구가 내 귀에 대고 아주 특별한 숨겨진 진실을 속삭여주고, 그 진실을 통해 어느 순간 갑자기 아주 간단하지만 심오한 규칙의 베일이 느껴지는 듯했지요. 우리는 지구가 둥글고 미친 듯이 돌아가는 팽이 같다는 것을 배운 후로 세상의 실제 모습이 겉으로 보이는 것과 똑같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때의 감동을 잊지 못한 저자는 결국 물리학자의 길을 걷게 된다. 그리고 대가가 되었다. 양자이론과 중력이론을 결합해 ‘루프양자중력’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었다. 또 대중을 위한 물리학 강연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본인이 상대성이론을 처음 접했을 때 느꼈던 충격과 감동을 과학과 무관한 사람들도 느껴보길 바라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런 활동의 일환이다.
책도 그렇지만, 책이 나온 배경도 흥미롭다. 이 책은 우연히 출간됐다(베스트셀러의 상당수가 그렇다). 이탈리아 신문에 글을 연재하자 여자 친구는 그에게 양자중력에 관해 모두가 쉽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도록 글을 써보라고 조언했다. 처음에는 이런 조언에 회의적이었다.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양자중력을 하나의 이야기로 압축할 방법이 없다. 그렇게 하면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내(혹은 여자친구)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것은 진리인 모양이다. 2,000부 정도만 팔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출간했다. 하지만 ‘딱딱한 과학책, 특히 물리학책은 안 팔린다’는 편견을 깨고 이 책은 이탈리아에서만 30만 부가 팔렸다. 유럽에서 10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당시 유럽은 물론 전 세계 출판계를 휩쓸던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도 따돌렸다.
원제 ‘7개의 짧은 물리학 강의(Seven Brief Lesson Physics)’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7개의 강의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일반상대성이론과 약자역학, 세 번째는 일반상대성이론이 적용된 우주의 구조, 네 번째는 양자이론을 바탕으로 한 물질의 구조,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는 양자중력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본 블랙홀, 그리고 마지막 일곱 번째 강의에서는 이것을 마주하는 인간이라는 문제를 다룬다.
◇공간, 시간, 블랙홀, 그리고 빅뱅
모든 것이 아인슈타인에서 출발했다. 그래서 책은 아인슈타인에 바치는 저자의 찬사로 시작된다. “인류의 모든 지식 중에서 상대성이론은 단연 특별합니다. 첫 번째 이유로 이 이론은 일단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 원리만 알게 되면 말도 못하게 간단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찬사는 과장이 아니다. 상대성이론의 세계에 본격적으로 들어가자. 시작은 아주 단순한(그러면서도 특별하고 천재적인) 발상에서 시작된다. 중력에도 일정한 범위, 즉 장(場, field)이 존재한다는 발상이었다. 중력장이 공간 속에서 확산하는 것이 아니라 중력장 자체가 공간이라는 것, 일반상대성이론의 출발점이다.
우선 아인슈타인은 별 주위의 공간이 어떻게 휘는지를 설명했다. 그는 태양이 빛을 굴절시킨다고 예측했고, 이런 예측은 1919년 사실로 입증된다. 아인슈타인은 공간뿐 아니라 시간도 휜다고 예측했다. 중력이 약한 곳에서는 시간이 빨리 흐르고, 중력이 강한 곳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는 것이다. 이것도 실험으로 입증됐다.
그다음은 블랙홀. 거대한 별은 수명이 다하면 빛을 잃는다. 자신의 연료를 모두 태우고 열기마저 다 사라지게 되면 별은 자신의 무게에 짓눌리게 된다. 심지어 공간을 매우 강하게 휘게 만들어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는 구멍이 만들어지는데 이 구멍이 바로 블랙홀이다. 처음에는 이 가설을 아무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들이 계속 나오고(지금까지도) ‘우주배경복사’까지 관찰됐다. 아인슈타인이 옳았다.
◇마지막 질문 “인간은 무엇인가”
또 하나의 기둥은 양자역학이다. 저자는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일반상대성이론은 아인슈타인의 생각, 그 한 가지만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중력과 공간, 시간에 대한 단순한 시각을 시종일관 유지하는 단단한 보석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양자역학, 혹은 양자이론은 다양한 실험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습니다. 그것들을 응용함에 따라 우리의 일상생활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막스 플랑크는 뜨거운 열상자 속에서 균형 상태에 있는 전기장을 계산했다. 전기장의 에너지가 양자(quantum)와 같은 덩어리 형태로 분포되어 있다는 상상을 한 것이다. 예측은 맞았지만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 ‘에너지 덩어리’가 실재한다는 사실을 입증한 사람도 바로 아인슈타인이었다.
이렇게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으로 시작한 저자의 강의는 우주의 구조, 입자, 루프양자중력, 시간 등을 관통한다. 이렇게 멀리서부터, 심오한 이야기를 풀어낸 이유는 단 하나다. ‘우리는,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서다. 마지막 일곱 번째 강의의 제목이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라고 붙여진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이 책에 답은 없다. 질문만 있을 뿐이다.
“느끼고 판단하고, 울고 웃는 인간 존재인 우리는 현대 물리학이 제공하는 세상이라는 이 거대한 벽화 속에서 어떤 위치에 놓여 있을까요? (…) 우리 역시 그저 양자와 입자로만 만들어졌을까요? 그렇다면 각자 개별적으로 존재하고 스스로를 나 자신이라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의 가치, 우리의 꿈, 우리의 감정, 우리의 지식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요? 이 거대하고 찬란한 세상에서 우리는 대체 무엇일까요?”
책에는 단 하나의 공식만 등장한다. 아인슈타인의 중력방정식(Rab-1/2Rgab=Tab). 스티븐 호킹이 말한 ‘방정식 개수와 책 판매량 반비례 법칙’이 다시 한 번 입증된 셈이다. 물론 이 방정식조차 무시해도 좋다. 아니 무시하라고 저자는 말한다.
“베토벤의 사중주에서 흔치 않은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을 정도의 전문적인 기교까지는 필요치 않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예측에서든 리만의 이론에서든 그 속에 감춰진 아름다움과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만 인정할 줄만 알면 됩니다.”
책을 덮는 순간,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에 진지하게 도전해봐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끝내 이해하지 못하고 포기하더라도 상관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쉽고, 아름답고, 명쾌하다’는 책 뒤표지의 문구가 새빨간 거짓말은 아니었던 셈이다.
by 책방아저씨 https://www.facebook.com/booksboo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