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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방아저씨 May 09. 2016

신화와 과학의 경계선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책을 즐겨 읽는다. 요즘에는 주로 교양과학에 빠져 있지만, 소설, 에세이, 인문, 역사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깊이가 없다 보니 당연히 넓고 얕은 책 읽기를 내세울 수밖에 없다. 이런 ‘겉멋 든 독서 애호가’도 실패한 분야가 있으니 그것은 신화다. 딱 한 번 그리스·로마 신화 책을 산 적 있다. 머릿속에 기억되지 않는 수많은 신의 이름, 종이 그려가며 읽어도 정리되지 않는 신의 가계도. 결국 절반도 채 읽지 못하고 덮었다(그 책은 지금도 책장 한쪽에서 먼지만 먹고 있다).


영화도 즐겨 보는 편이다. SF를 좋아하지만 멜로, 코미디, 액션, 미스터리, 누아르,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넓고 얕은’ 영화 보기를 표방할 수밖에 없다. 이런 얼치기 영화 애호가가 볼 때마다 헷갈리는 분야가 있으니 그것은 마블 시리즈다. 실제 원작에 등장하는 마블 히어로들은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이름만큼이나 많고 관계가 복잡하다.  


그래도 그리스·로마 신화와 달리 마블 히어로 영화가 개봉하면 곧바로 달려가 스크린 속으로 빠져든다. <캡틴 아메리카:시빌 워>도 마찬가지다. 이유는 단순하다. 재밌으니까!


마블 히어로 시리즈는 신화가 됐다. 영웅들의 이야기는 각자의 탄생 배경과 관계가 얽히고설키면서 후속 편을 만들어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각자의 세계에서 악의 무리와 맞서 싸우던 우리의 영웅들은 이제 단체로 등장해 때로는 연대하고, 때로는 반목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마블 히어로 시리즈는 신화가 됐지만, 주인공들은 ‘신’이 아니다. 그들은 첨단 과학기술의 피조물(혹은 돌연변이)이다. 신소재 방패부터 기능성 슈트, 인공지능(AI) 비서, 드론까지 과학기술이 없었다면 마블 히어로 시리즈의 영웅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블 히어로 시리즈를 신화만 넘치는 판타지가 아니라 상상과 공상이 뒤얽힌 SF 액션으로 읽히게 만드는 힘, 그것은 첨단 기술이다.   

     

캡틴 아메리카의 상징인 방패. 비브라늄이라는 가상의 물질로 만들어졌다.


캡틴 아메리가 팀 vs 아이언맨 팀


<시빌 워>의 주인공은 역시 ‘캡틴 아메리카’ 스티브 로저스와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다. 그들을 상징하는 것은 방패와 아크 원자로(혹은 이것으로 동력을 받아 작동하는 슈트)다.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는 비브라늄으로 만들어졌다. 물론 마블의 세계에서만 등장하는 가상 물질이다. 이 방패를 만들어 준 사람은 아이언맨의 아버지다(또 이렇게 둘은 인연을 맺는다).  비브라늄이라는 소재가 현실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만큼 영화에서 등장하는 방패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현재의 기술로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와 똑같이 만들 수는 없지만, 흉내는 낼 수 있다. 실제 최근 유튜브의 한 채널에서는 실제 총알을 막을 수 있는 방패를 만들었다는 소개 영상이 올라 있다. 이들이 사용한 소재는 티타늄이다. 실험자가 마네킹에게 방패를 들게 한 후 실제 총을 쏘자 정말 총알을 튕겨 냈다.  


렛 얼레인이라는 과학자는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 무게를 계산하기도 했다. 그가 내린 결론은 20kg. 계산방법은 이렇다. 캡틴의 체중은 100kg, 방패의 지름은 0.76m, 재생시간에 따른 방패 위치를 분석해 구한 방패 속력은 초당 19.5m. 여기에 항력 계수 0.3과 방패를 받은 캡틴이 미끄러지는 시간 등을 적용했다. 


영화를 흉내 내 총알을 튕겨내는 방패를 만들고, 영화 속 방패의 무게를 계산한다고 하면 ‘참 할 일도 없는 모양’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비웃지 말자. 과학은 이렇게 ‘별로 소용없어 보이는 일’에서 시작되고 발전했다.


아이언맨의 가슴에 장착된 아크 원자로.


아이언맨이 가슴에 달고 다니는 아크 원자로는 이미 아이언맨 시리즈에서 주목을 받았다. 이번 <시빌 워>에서는 캡틴과 싸우다가 방패에 찍혀 파괴되는 장면이 나온다. 아이언맨의 초능력은 티타늄으로 만든 기능성 슈트에서 나오고, 이 슈트는 아크 원자로에서 동력을 얻는다. 아크 원자로가 파괴된 아이언맨은 당연히 초능력을 잃는다. 


아크 원자로는 핵분열 방식이 아니라 핵융합 방식의 발전기다. 핵분열은 원자를 쪼개서 나오는 열을 이용하지만, 핵융합은 원자 두 개를 하나의 원자로 만들 때 나오는 에너지를 이용한다. 핵분열이든 핵융합이든 아이언맨처럼 가슴에 발전기를 달고 다니는 것은 불가능하다. 핵분열의 경우 치명적인 방사선으로 생명 유지가 어렵다. 핵융합은 신체에 1억 도 이상의 열이 가해져 역시 살아남기 힘들다. 


최첨단 스텔스 슈트부터 인공피부까지


아이언맨 슈트를 빼놓고 아이언맨을 말할 수 없다.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외골격 시스템 연구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미국에서 의료용 보조기기로 승인받은 ‘리워크(ReWalk)’는 배터리를 이용해 다리 힘으로는 걸을 수 없는 환자들이 다시 걸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또 무거운 물건을 들고 옮길 수 있는 ‘로보 메이트(Robo-Mate)’도 등장했다. 


참, 영화 속 아이언맨 슈트의 가격을 계산한 사람들도 있다. 영국의 한 가격비교 사이트에서 마블 누리집, 위키피디아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계산한 결과, 한 벌에 약 1,380억 원이 필요하다고. 수시로 부서지고 새로 만들어 입어야 하니 실제 개발되더라도 갑부인 토니 스타크 아니면 엄두를 내지 못할 것 같다.      


팔콘은 스텔스 슈트와 정찰용 드론 ‘레드윙’이 가장 강력한 무기다.


캡틴 팀에서 활약하는 팔콘은 하늘을 나는 최첨단 스텔스 슈트가 상징이다. 아이언맨과 같은 만능 슈트는 아니지만, 초인적 힘을 발휘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늘을 나는 슈트는 이미 다양하게 개발되고 있다. 중국의 한 업체는 120kg의 물건을 적재하고 시속 80km로 날 수 있는 개인용 비행장치 ‘제트팩(Jet-Pack)’을 개발해 상용화에 나섰다. 2개의 프로펠러로 공기를 밀어내 추진력을 얻고 보조날개로 방향과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제트팩의 가격은 약 2억 9,000만 원. 두바이 소방대가 고층 빌딩 화재 진압에 쓰겠다며 20대를 선(先) 주문했다고 한다. 


팔콘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왼쪽 팔에 장착된 정찰 드론 ‘레드윙’. 적의 동채를 파악해 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등 중요한 순간마다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드론은 군사용, 공중 촬영, 상품 배달, 통신용 기지국 등 이미 여러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최근 미군은 2018년까지 정찰용 초소형 드론을 육군 전체에 보급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미군은 현재 ‘그레이 이글(Gray Eagle)’이나 ‘섀도우(Shadow)’ 등의 무인 정찰기를 운용하고 있으며, 영국과 노르웨이군은 4년째 일명 ‘블랙 호넷’으로 불리는 초소형 무인기 ‘PD-100’을 사용 중이다. 


<시빌 워>에서도 그렇지만, 마블 히어로 가운데 가장 ‘인간적’인 캐릭터는 호크 아이. 별다른 초능력이나 첨단 무기는 없지만 뛰어난 활쏘기 실력으로 전투력만큼은 다른 슈퍼 히어로에 뒤지지 않는다. 호크 아이는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다. 생사를 오가는 상황에서 그를 구한 것은 한국계 천재 생명공학자 닥터 조. 그녀는 첨단 인공 피부로 호크 아이의 생명을 구한다. 


호크 아이는 <어벤져스2>에서 인공피부를 이식해 죽음의 위기를 벗어난다.


최후의 승자는 첨단 과학기술?


슈퍼 히어로뿐 아니라 <시빌 워>는 장면 곳곳에 과학기술에 대한 부스러기들을 뿌려 놓은 영화다. 영화는 악당 럼로우가 건물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면서 시작되는 데 그곳은 다름 아닌 전염병 연구센터. 약골이었던 스티브 로저스를 ‘천하무적’ 캡틴 아메리카로 만든 곳은 전략과학부였고, 마블 히어로들이 상대하는 적은 나치의 비밀 과학조직 ‘하이드라’였다.


과학기술에 대한 마블의 인식은 <시빌 워>의 도입부,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가 MIT에서 강연하는 장면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강연을 마치며 토니 스타크는 MIT에서 진행하고 모든 프로젝트의 비용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한다. 본인 역시 15세에 MIT에 입학한 천재 발명가였다.


캡틴 아메리카 팀과 아이언맨 팀의 불꽃 튀는 대결. 최후의 승자는 누구일까? 누군가 캡틴도 아니고 아이언맨도 아닌 마블이라고 말했다. 나는 첨단 과학이라고 말하고 싶다. 마블 히어로 시리즈는 신화가 됐지만, 그들은 신이 아니라 첨단 기술로 무장한 슈퍼 히어로일 뿐이다. 


기회가 되면 그리스·로마 신화에 다시 도전해볼 생각이다. 마블 히어로 시리즈도 다시 정주행 해볼 참이다. 


by 책방아저씨 https://www.facebook.com/booksbooster     


마블 히어로 시리즈는 신화와 과학의 경계에 있다. 그 경계에서 영웅들이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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