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으로써의 과학 ㅣ 과학단상
홍보자료에는 ‘이야기’가 없다. 오늘도 많은 담당자들이 ‘이야기 있는 홍보자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고민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이야기란 사람들이 몰랐던 이야기다. 아무리 재미있는 사연도 모두가 알게 되는 순간 흥미는 반감된다. ‘홍보자료의 딜레마’라고 할 수 있다. 과학기술 분야는 특히 그렇다. 일단 용어 자체가 생소하다. 과학자들이 가장 곤혹스러울 때는 “이 말을 더 알기 쉽게 풀어 달라”라는 주문을 받을 때라고 한다. 상대성 이론은 ‘상대성 이론’이라고 표현할 때 가장 적확(的確)하다. 알기 쉽게 설명한다고 상대성 이론에 다른 이름을 붙이는 순간 전혀 다른 이론이 된다.
그래서 어떤 과학자는 ‘쉬운 과학’의 위험성과 폐해를 경고하기도 한다. 물론 쉬운 과학이 과학 발전을 방해한다는 주장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재미있는 과학’과 ‘쉬운 과학’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에는 동의한다. 이를테면 과학 대중화는 모든 청소년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제대로 이해하게 만들려는 노력이 아니다. 오히려 청소년들의 장래희망 1순위를 연예인이 아니라 과학자로 만들기 위한 노력에 가깝다.
‘쉽다=재미있다’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쉽지만 재미없는 일도 있고, 어렵지만 재미있는 것도 많기 때문이다. 결국 ‘쉽다’는 재미를 위한 필요조건이 될 수 있어도 충분조건은 아니다. 과학도 마찬가지다. 재미는 이야기에서 나온다. 관건은 어려운 과학기술 용어를 쉽게 풀어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어려운 과학을 재미있는 이야기로 받아들이게 하느냐다.
나는 문과 출신의 수포자(수학포기자)였다. 미분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다가 결국 적분에서 책을 덮었다. 뒤늦게 수학이나 과학의 뒤에 숨어 있던 재미있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접하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그래봐야 읽는 정도지만). 조금 과장하면 소설보다 재미있을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방정식으로 불리는 ‘오일러의 항등식’에서는 지금도 어떤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한다. 머리만 아프다. 하지만 시각 장애인이었던 오일러의 이야기는 사뭇 감동적이다. 그는 시력을 잃고도 계산을 멈추지 않았다. 오일러가 머릿속으로 계산한 공식을 동료들이 받아쓰곤 했는데 계산 속도가 너무 빨라 따라잡기 어려웠다. 그가 눈감았을 때 누군가 이런 추도사를 남겼다고 한다. “오일러가 계산을 멈췄다. 삶을 멈췄다.”
위대한 과학자들은 “과학=스토리텔링”이라는 사실을 오래 전에 눈치 챘다. 스티븐 호킹 박사의 기념비적인 저서 <시간의 역사>에는 단 하나의 공식(E=MC²)만 등장한다. 과학 저서에 적용되는 ‘공식 숫자와 판매량 반비례 법칙(책에 숫자와 공식이 많을수록 책이 안 팔린다는)’을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호킹 박사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공식은 필요 없다. 나에게 이야기를 달라.
인류가 달에 최초로 착륙한 것은 1969년이지만, 쥘 베른은 100여 년 전 소설 <지구에서 달까지>를 통해 인류의 달 여행을 예언했다. 1902년 조르주 엘리어스는 이를 바탕으로 영화 <달세계 여행>을 만들었다.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꺾기 50년 전, 아서 클라크는 소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인공지능(AI)의 출연을 예언했다. 과학 이전에 이야기가 있었던 셈이다.
단 이야기의 구현과 현실 적용은 철저하게 과학적이어야 한다. 과학은 없고 이야기만 있을 때 어떤 결과를 낳는지 우리는 황우석 사태에서 경험했다. 과학은 있고 이야기가 없을 때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박기영 과학기술혁신본부장 내정 사태에서 목격했다. 이야기 없는 과학은 허무하고, 과학 없는 이야기는 맹목이다.
by 책방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