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파이와 헤디 라마르 ㅣ 과학단상
그녀는 예뻤다. 어릴 적부터 빼어난 미모를 자랑했다. 1914년 오스트리아 태생인 그녀는 10대 시절부터 영화 주연을 맡았다. 18세 때 출연한 <엑스터시>라는 영화가 그녀의 이름을 알리는 인생작이었다. 남편을 두고 사랑을 찾아 방황하는 여성, 최초의 파격적인 누드 연기 등의 설명이 붙은 영화다. 미국으로 이주한 그녀는 할리우드 배우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삼손과 델릴라>에서 주인공을 맡기도 했다. 영화는 못 봤으나 포스터는 본 기억이 난다.
그녀는 똑똑했다. 어려서부터 과학과 수학을 잘 했다. 어른이 돼서도 과학기술에 관심이 많았다. 무기 거래상인 남편 때문에 만난 기술자들과 무기 체계를 놓고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정도였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돌던 무렵, 그녀는 ‘주파수 호핑’ 기술을 개발한다. 잠수함이 어뢰를 발사할 때 적함이 이를 알아채지 못하도록 하는 일종의 주파수 혼동 기술이자 어뢰 무선 유도 시스템이었다. 1942년 특허를 출원하고, 이 기술을 미국 정부에 기증했다.
눈치챘겠지만, 여기서 ‘그녀’는 동일인이다. 이름은 헤디 라마르(Hedy Lamarr, 1914~2000). 그녀는 클라크 게이블, 스펜서 트레이시, 잭 스튜어트 등 당대 최고의 배우들과 연기 호흡을 맞췄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작업실에 들어가 각종 기계를 분해하고 설계도를 그리며 연구개발에 몰두했다. 낮에는 배우로, 밤에는 발명가로, ‘이중생활’을 즐겼던 셈이다. 무기 거래상과의 첫 결혼 후 반복된 이혼과 결혼, 미국으로의 이주, 할리우드에서 활동했던 ‘섹스 심벌’에서 기술 개발자까지. 그녀는 영화와 같은 삶을 살았다.
주파수 호핑 기술이 탄생하게 된 이야기도 한 편의 영화를 닮았다. 라마르는 독일 잠수함이 영국 여객선을 격침시킨 사건을 보고 주파수 혼동 기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어느 날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전위적 작곡가로 활동하던 조지 앤타일의 집을 찾아간다. 당시 앤타일은 의도된 불협화음으로 관객의 귀를 괴롭히는 실험적 예술작품을 기획하고 있었다. 라마르는 피아노 건반이 다른 음을 변칙적으로 쏟아내듯 주파수가 시시각각 다른 신호를 보내면 군사용으로 유용할 것이라며 공동 개발을 제안한다.
시대를 앞서간 발명과 기술은 대부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다. 라마르가 앤타일과 함께 개발한 주파수 호핑 기술도 마찬가지였다. 미 해군은 어뢰 구조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 기술을 적용하지 않았다. 핑계였을 가능성이 높다. ‘섹스 심벌’로 유명한 여배우가 당대의 과학자들도 생각하지 못한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던 거다.
라마르의 업적은 세월이 흘러 재평가를 받는다. 트랜지스터 발명으로 전자통신 시대가 열리면서 그녀가 특허를 냈던 기술은 무선통신기기에 쓰이는 CDMA(코드분할다중접속) 기술로 발전했다. 지금은 널리 사용되는 근거리 무선통신 와이파이(Wi-Fi)나 블루투스도 라마르가 개발한 주파수 기술에서 출발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녀를 ‘무선통신의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1997년에야 라마르는 CDMA 기술의 기본 원리를 개발한 공을 인정받아 미 전자개척재단(EFF)으로부터 공로상을 받았다. 이런 수상 소감을 남겼다고 한다. “때가 왔군요.”
2015년 11월 9일, 구글은 홈페이지 로고를 라마르의 그림으로 바꿔 그녀의 업적을 기렸다. 이날은 라마르 탄생 101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이 정도가 전부였다. 100주년 때도 특별한 이벤트는 없었다. 올해도 그럴 것이다. 요즘엔 어디를 가든 휴대전화나 노트북의 와이파이부터 연결한다. 와이파이를 사용할 때 그녀의 이름 정도 기억해주면 좋을 것 같다.
by 책방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