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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방아저씨 Jul 13. 2015

"모든 인문학은 사랑과 자유에 바치는 헌사"

내가 사랑한 글쟁이 7. 강신주

발단은 한 권의 책이었다. 예상 밖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 책을 누군가 (아주 살짝) 비판하는 글을 썼고, 그 글을 개인적으로 운영 중인 페이스북 페이지에 공유했다. 뜻하지 않게 격한 논쟁이 벌어졌다. 다행히 아주 심각한 상황까지 가진 않았지만 그 논쟁의 주제는 사뭇 심각한 것이었다. 요약하자면 ‘얕은 인문학 전성시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 정도?   


댓글과 반론이 거듭됐다. 의견은 정확히 반으로 갈렸다. ‘얕은 인문학’이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의 인문학을 더욱 고사시킬 것이라는 주장과 ‘얕은 인문학’이더라도 결국은 우리 사회의 인문학을 더욱 풍요롭고 튼튼하게 할 것이라는 주장. 당연히 뚜렷한 결론은 나지 않았다.  


의외였다. 이렇게 이름 없고 보잘 것 없는 페이스북 페이지에 포스팅된 글을 보고도 사람들은 뜨겁게 반응하는구나. 이렇게 천박한 ‘야만의 시대’에도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을 고민하고, (진정한) 인문학을 갈망하는구나.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그런 논쟁까지 촉발시킨 그 책이, 일약 베스트셀러가 된 그 책의 저자가 부러웠다.  


문득 궁금했다. 철학자 강신주가 이 논쟁을 봤다면 어떻게 답했을까? 삶, 죽음, 사랑, 이별, 고독, 꿈, 일, 정치 등 이 시대를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심각하게 고민했을 문제들에 대해서 그는 늘 적확하고 쉬운 답변을 제시하지 않았던가. 그라면 뭐라 말했을까? 당연히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테니 혼자 상상하는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는 이렇게 답했을 것 같다.  


“인문학은 사랑과 자유예요. 그래서 반체제적이고, 김수영이 얘기했던 것처럼 불온한 거죠. 사랑과 자유의 힘을 믿을 때 우리는 강해져요. 반대로 제대로 사랑을 못할 못할 때, 인간에 대한 근본적 신뢰가 붕괴되어버릴 때 사적인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정치적 관계에서도 절망이 오는 거예요. (중략) 모든 인문학은 사랑과 자유에 바치는 헌사예요. 그래서 저도 제가 하는 인문학을 사랑과 자유에 바쳐야 하고요(<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 중에서).”  


◇인문학은 깊이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성의 문제  

강신주는 늘 대중과 소통하는 철학자다. <사진 출처=도서출판 동녘> 

결국 인문학은 깊이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성의 문제라는 거다. 깊이가 얇다고 인문학 책이 아니라거나 진정한 인문학 전성시대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다. 거꾸로 그 책의 깊이가 깊다고 인문학 전성시대를 일조하는 것이 아니다. 그 책은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가? 저자가 추구하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강신주의 말처럼 인문학은 ‘사랑과 자유’다. 그것을 방해하고, 숨죽이게 하고, 억압하려 하는 모든 것은 거짓 인문학, 거짓 인문주의다. 철학자 김영민이 말했듯 인문(人文)이란 무릇 사람의 무늬, 인문(人紋)이 아니던가. 


우리가 철학자 강신주에게 열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랑과 자유’에 바탕을 둔 인문학. 그러니 그 어떤 고민에도 막힘이 없다. 그가 제시하는 해법을 지지하고, 결국은 그를 지지할  수밖에 없다. 위로를 받고 위안을 삼는다. 사랑하라는데, 자유로워지라는데 그걸 싫어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의 얘기를 더 들어보자. 


“자유로운 사람만이 사랑할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만이 자유를 얻어요. 사랑하는 사람만이 구속이 뭔지 느끼니까요. (중략) 사랑을 하면 자유롭고 강해져요. 자유로운 사람만이 사랑할 수 있고오. 사랑과 자유가 동의어라는 것을 알아야 해요. 사랑과 자유는 같이 가요. 개인적 차원에서 뿐 아니라 정치적·사회적 층위에서도 마찬가지예요.” 

강신주는 대중과 직접 대면하는 철학자다.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MBC 라디오(그렇다. MBC였다. 한 때 MBC는 좋은 프로가 많았다)에서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가 진행하던 <색다른 상담소>였다. 그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게스트로 출연해 청취자들이 보낸 고민에 답하고 상담했다. 지금은 종영됐지만 <색다른 상담소>는 팟캐스트에서 전 분량이 올라 있다. 답답하고 답을 찾기 어려우면 지금도 이 프로를 가끔 듣는다.  


그를 가장 대중적으로 알리게 된 계기는 물론 팟캐스트 <벙커 1 특강>이다.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다. 2013년 초였던가. 겨울이었다. 출근하며 ‘철학박사 강신주의 다상담 1회-이 죽일 놈의 사랑’편을 들었다. 이후 그는 내 출퇴근길의 든든한 동행자였다. 그를 듣기 위해 일부러 걸었다. 걷는 거리가 짧고 아직도 들을 분량이 남았으면 일부러 돌아서 갔다. 눈 쌓인 길을, 혹은 비 내리는 거리를, 때로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걸을 때도 내 귀에는 늘 이어폰이 끼어 있었다.  


누군가 먼 훗날, 그 힘든 시기를 어떻게 견뎠느냐고 묻는다면(물론 그렇게 물어올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 말고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다상담’이 있어 가능했다고.  그리고 읽은 책은 많지 않지만 그의 책들이 있어 가능했다고. 나이, 성별, 직업을 불문하고 이 사회의 나 같은 사람들이 그의 든든한 소비층이다. 그들을 위해 그는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소비된다. 


◇“독서란 읽는 것이 아니라 읽어버리는 것”  

철학자 강신주의 책은 공저까지 포함해 30권이 훌쩍 넘는다. 내가 읽은 책은 일부에 불과하다. 

그가 사랑과 자유를 논한다고 그의 책을 만만하게 보면 안된다. 몇 시간씩 쉼 없이 이어지는 그의 강연은 켜켜이 쌓인 철학적 내공의 힘이다. 수백 쪽에 달하는 책을 1년에도 몇 권씩(요즘에는 다소 뜸하지만) 펴내는 글쓰기는 깊이와 넓이를 알 수 없는 글 읽기의 힘이다. 그에게 독서란 ‘읽는 것’이 아니라 ‘읽어버리는 것’이다. 강력한 편애와 몰입. 한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독서와 글쓰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읽는’ 게 아니라 ‘읽어버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한 작가의 글의 빠져 다른 글을 통 읽지 못하게 되는 경험을 해봐야 한다는 겁니다. 아주 절실하고 치열한 독서체험이죠. 저는 김수영과 니체, 스피노자, 마르셀 푸르스트, 나가르주나를 그렇게 읽어버렸습니다. (중략) 다독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100명의 여자와 잠을 잔다고 사랑을 알게 되는 것은 아니죠. 한 여자와 정말 지독하게 사랑을 해야 비로소 사랑을 알게 됩니다.”  


그의 표현대로 그를 ‘읽어버렸다’고 자신할 수는 없다. 적어도 ‘읽기’는 했다. <철학적 시읽기의 괴로움>, <상처받지 않을 권리>, <철학이 필요한 시간>을 거쳐 <김수영을 위하여>,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 <강신주의 다상담 1,2,3>을 지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 <감정수업>까지(900페이지에 달하는 <씨네샹떼>는 아직 책을 펴들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 책들은 철학자 강신주가 절실하고 치열하게 ‘읽어버렸던’ 독서의 결과물들이다.  

시인 김수영은 강신주가 가장 사랑하는 문인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의 책은 녹록지 않다. 쉽게 덤볐다가는 쉽게 포기하기 십상이다.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이나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 <감정수업>과 같은 책은 제목만 보고 단숨에 읽어버리겠다고 욕심 내기 쉽지만 담고 있는 철학적 깊이가 만만치 않다. 특히 밀란 쿤데라의 <정체성>을 통해 ‘자긍심’을,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통해 ‘탐욕’을,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를 통해 ‘절망’을 읽어내는 강신주식 ‘스피노자 읽기’는 문학과 철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꽤 폭넓은 사유를 필요로 한다.  


그렇다고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다. 읽히지 않으면 포기하고 다른 텍스트를 골라도 된다. 이를테면 <강신주의 다상담 1,2,3>의 경우 강연을 듣고 상담을 받는 편안한 기분으로 가볍게 읽어도 된다. 어차피 그의 책들은 어느 지점에선가 만난다. 그 지점에서 펄럭이는 깃발은 어김없이 사랑과 자유다. 


철학자 강신주가 ‘힐링캠프’에 출연한 적이 있다. 성유리가 “낯에는 ‘나는 괜찮다’며 쿨한 척 하지만 밤만 되면 낮에 있었던 일을 곱씹으며 극도로 소심해진다”는 고민을 털어놓자 강신주는 “사랑을 하면 된다”고 조언한다.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산다. 그 가면을 벗어야 자기의 삶을 살 수 있는데, 가면을 벗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랑을 하는 것이다. 그의 조언이 통했을까? 얼마 뒤 성유리의 열애설이 터진다. 


2013년 ‘다상담’ 듣던 때를 추억하며 2014년 <다상담>을 책으로 읽었다. 고작 1년이지만 세월은 흘렀고, 상처들은 아물고, 마음은 조금 단단해졌던 것 같다. 그리고 그 해 가을 다니던(경영서와 자기계발서를 인문서로 착각하는 사람이 대표로 있던) 회사를 그만 뒀다. 


 by 책방아저씨 https://www.facebook.com/booksbo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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