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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방아저씨 Jul 16. 2015

이 넓은 곳에 우리만?

우주와 지구에 대한 무한상상  <태양계 연대기>

과학적 상상력으로 무장한 대표적 이야기꾼은 베르나르 베르베르다. <개미>를 통해 지구 지배자는 인류가 아니라 개미라고 설파하더니, <제3인류>에서는 인류의 기원에 대한 과학적 상식을 송두리째 뒤집는다. 


이제 1권을 읽었는데 인류의 조상이 키가 17m에 달하는 거인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이건 '소일거리'로 읽을 책이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왜 인류가 지금의 키가 되었는지, 미래의 인류는 어떻게 될지(소설 속 주인공 과학자들은 피그미족과 아마조네스의 유전적 결합을 시도한다)가 어디 그리 간단한 문제인가. 무려 5권이나 되는데 언제 완독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기원 전 약 5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오스트레일리아의 인물화. 헤드기어 같은 것을 착용하고 있다. <책 본문 중에서>

물론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소설 속 허구다. 대부분은 '아마 그러지 않았을까?'라는 상상력으로 빚어진 이야기다. 그런데도 읽다 보면 '정말 그랬구나'라고 자꾸 고개가 끄덕여진다. 


허황된 추측이 그럴듯한 호기심으로 변하는 접점의 그 순간, 상상력은 과학이 된다. 실제 소설 속에서는 현대 과학으로도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는 피라미드의 미스터리도 간단하게 해결된다. 키가 17m에 달하는 부족이 있었다면 피라미드를 비롯한 고대 거대 건축물들은 손쉽게 만들어졌을 것이다. 


거짓말도 스케일이 커지면 사실처럼 들린다. 누구도 입증할 수 없고, 여전히 과학적으로 풀리지 않는 문제라면 더욱 그렇다. UFO나 외계인은 존재하는가? 지금보다 훨씬 더 발달한 초고대 문명이 존재했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해 우리는 누구도 100% 확답할 수 없다. 일단 이것부터 인정하자. 거짓말과 과학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대화에서는 과학적 지식보다 상상력이 더 풍부한 사람이 늘 승자가 될 수밖에 없다. 


UFO나 외계인 존재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태양계 연대기>는 지구와 우주를 배경으로 풀어놓은 거대한 '입담'이다. 거짓말과 진실, 상상력과 과학이 수시로 충돌하고 싸우고 섞인다. '스케일 큰 거짓말'인가,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과학'인가. 끊임없이 의문이 드는데 다행스럽게도 저자는  한쪽을 강요하지 않는다(그것은 읽는 자의 몫이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생각하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와 미스터리가 상당 부분 해소된다는 사실. 마치 베르베르가 '제3인류'에서 키 17m의 거인을 인류의 조상으로 등장시킨 것처럼. 


게다가 이 엄청난 입담의 실마리를 제공한 사람은 칼 세이건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광대한 우주 속에 만약 우리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엄청난 공간의 낭비일 것이다." '파토'라는 필명으로 온·오프라인에서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저자 원종우는 여기에 덧붙여 이렇게 말한다. "우주의 광활한 크기는 인류 외의 문명이 존재할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을 제공한다."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은 한 술 더 뜬다. "이 정도의 설득력이라면, 외계인은 존재해줘야만 하는 거다." 

우주 탐사선 호라이즌호가 찍은 명왕성. <사진 출처=NASA>

머리가 다소 아프더라도 상상력을 발휘해보자.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천체는 달이다. 지구와의 거리는 38만 km. 초속 30만 km를 달리는 빛은 1.3초, 빛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느린' 초속 11km의 우주선도 4일이면 도착한다. 이렇게 '가깝다'보니 인류는 이미 1969년 달에 발자국을 남겼다. 


문제는 인류가 직접 발을 내디딘 천체가 달이 유일하다는 사실. 달 바깥으로는 어느 곳에도 발을 딛지 못했다. 사정은 이렇다. 지구는 태양계의 세 번째 행성이다. 태양과의 거리는 1억 5000만 km로 지구와 달 사이 거리의 400배에 달한다. 명왕성과 태양의 평균 거리는 59억 1400만 km다. 명왕성과 지구의 거리는 약 58억 km. 우주선으로 가면 편도로만 16년이 걸린다. 


태양계를 벗어나면 거리나 시간 등은 사실상 의미가 없어진다. 숫자가 있으니 표기는 할 수 있겠으나 무한대에 가깝다. 예를 들어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센타우루스 자리의 알파성은 약 4.3 광년(1 광년은 빛이 진공 속을 1년간 달리는 거리로 9조 4600억 km)이다. 이 거리를 가는데 필요한 시간은 117만 2600년. 인간이 호모 에렉투스 시절에 지구를 출발했다면 대략 지금쯤 겨우 그곳에 도착했을 것이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 웜홀과 블랙홀을 통과해 다른 은하계를 여행한다. <사진=워너브라더스코리아>

피라미드를 이집트인이?…초고대 문명의 미스터리 


이 대목에서 이런 식상한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우주는 정말 경이롭고 거대하구나. 우리 인간은 얼마나 티끌 같은 존재인가.' 하지만 이런 탄식을 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이제 겨우 시작이기 때문이다. 현대 과학기술로 관측 가능한 우주의 크기는 지름이 약 930억 광년이다(1 광년이 9조 4600억 km라고 했으니 계산은 각자 알아서 하시길). 그 속에는 우리 은하와 같은 은하들이 약 1000억 개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가장 가까운 은하는 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 '안드로메다'인데 거리는 약 250만 광년이다. 


그만하자. 우주의 끝까지 가려면 아직도 멀었다. 저자가 책에서 이런 우주의 규모를 장황하게 설명한 이유는 간단하다. "이 광대한 우주 속에 만약 우리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엄청난 공간의 낭비일 것"이기 때문이다. "우주의 광활한 크기는 인류 외의 문명이 존재할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을 제공한다"는 본인의 주장에 타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다. 


지구 이야기로 돌아가자. 이렇게 거대한 우주에서 지구에만 인류가, 그리고 지금의 인류만이 과학문명을 누리고 있겠느냐는 것이 의문의 시작이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초고대문명론이다. 기원전 1만 5000년 전 현대문명보다 더욱 발달한 문명이 있었다는 것이다(그것은 어쩌면 외계 문명과도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는 지금의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다. 


실제 타제석기와 마제석기로 원시림이나 누볐을 구석기와 신석기 인류들이 오리온좌의 별자리를 따라 피라미드를 만들었다. 현대의 기술로도 그 먼 거리를 옮기는 것은 물론 들기조차 어려운 거석들을 마치 벽돌처럼 다뤘다. 100년 전에야 발명했던 비행기 모형의 토기를 만들어 사용했다. 아무리 연구하고 추적해도 답을 찾을 수 없자 고고학계나 과학계는 이런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들을 '세계의 7대 불가사의' 등으로 치부한 채 넘어갔다. 저자는 이러한 애매모호한 태도야말로 '비과학적'이라고 돌직구를 날린다. 


우주 탐사선 호라이즌호가 명왕성에 초근접해 명왕성의 영상을 전송하자 환호하는 사람들. <사진=NASA> 

화성의 생명체…흔적 찾기 도전은 계속된다 


화성에서 생명체의 흔적을 찾기 위한 인류 도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 도전은 화성에 생명체가 있었거나 있을 것이라는 가정을 전제로 한다. 이 책의 끝없는 상상력이 화성을 피해 갈 리 없다. 


저자에 따르면 오래전 화성에는 생명체가 실제 존재했다. 그 생명체는 우리보다 더 발달한 문명을 누렸다. 먼 옛날 지구도 그랬듯 혜성도 우주의 거대한 파편과 충돌했다. 그 충돌은 화성의 북반구 지각을 날려버릴 만큼 강력했다. 화성에 존재했던 생명체를 순식간에 소멸시킬 강력한 충돌이었다. 


상당수 과학자들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인류는 1960년대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미국, 러시아, 유럽, 일본, 인도 등에서 수십 기의 화성 탐사선을 발사했다. 탐사선들은 화성의 지표를 돌아다니며 수만 장의 고해상도 사진을 지구로 전송하고 있다. 드릴로 지표를 뚫고 표본을 채취하고 성분 분석 등 실험을 수행한다. 이런 활동을 통해 물이 흐른 증거를 확인하기도 했다. 실제 생명체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화성에 생명체가 존재했거나 존재할 가능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책을 '과학과 역사, 우주적 상상력이 결합한 다큐멘터테인먼트'라고 명명했다. 아직 과학적으로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개연성을 과학적 상상력으로 풀어놓았다는 의미로 그런 장르명을 만들어냈다. 


다큐멘터리로 볼 것인지, 엔터테인먼트로 볼 것인지 그 판단도 결국 독자의 몫이다. 다만 "이 책이 풀어낸 이야기가 전반적으로 사실일 가능성은 대단히 희박하다는 점, 일단 털어놓는다. 그러나 그중에 진실들이 단편적으로 숨겨 있을 여지조차 없는 건 아니다. 무엇이고 허구이고 무엇이 사실일지는 시간을 두고 지켜보면 될 일"이라는 저자의 말은 겸손이 아니라 자신감으로 읽힌다. 


고교 시절 지구과학 선생님이 있었다. 선생님은 졸린 눈으로 도무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의 우리들에게 우주의 크기를 열심히 설명했다. 이 책의 본문과 비슷한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선생님은 설명을 포기하며 탄식처럼 한 마디를 남겼다. 


"그러니 미치지 않고서야 우주를 연구할 수 있겠냐?" 


by 책방아저씨

파토 원종우의 <태양계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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