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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방아저씨 Aug 15. 2015

"첫 문장을 쓰세요"

김영하의 <말하다>에서 말하는 글쓰기




1995년 세계적인 패션 잡지 <엘르>의 편집장이던 장 도미니크 보비가 쓰러졌다. 뇌졸중이었다. 잘 나가던 패션 잡지 편집장에서 전신마비로 아무것도 움직일 수 없는 비극적 처지로 전락했지만 그때부터 그는 평생 하던 일에 다시 도전하기 시작했다. 


그는 눈을 깜빡여 알파벳 신호를 보냈다. 15개월 동안 무려 20만 번을 깜빡였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그의 책  <잠수종과 나비>는 그렇게 탄생했다. 그리고 책이 나온 지 8일 후에 보비는 눈을 감는다. "고이다 못해 흘러내리는 침을 삼킬 수만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보비의 마지막 말이다. 


김영하는 에세이 <말하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잠수종에 갇혀 있던 그의 영혼이 비로소 나비가 되어 날아간 것이죠. 생의 마지막까지 그가 한 것은 오직 하나, 글쓰기였습니다. 20만 번의 눈 깜빡임으로 15개월에 걸쳐 책을 쓴다는 것이 답답할 정도로 느린 것일까요? 저는 1분에 300자를 타이핑할 수 있는 빠른 손놀림으로도 몇 달 동안 단 한 문장도 쓰지 못한 적이 있었습니다."


장 도미니크 보비. 
도미니크 보비의 삶을 그린 영화 <잠수종과 나비>의 한 장면.


◇<엘르> 편집장 보비와 남극 탐험가 스콧 


노르웨이의 로알 아문센과 영국의 로버트 스콧은 남극 탐험을 두고 경쟁했다. 아문센의 탐험대가 1911년 10월 19일 남극점을 향해 출발했고, 며칠 뒤인 10월 24일 스콧의 선발대도 남극으로 향했다. 비슷한 규모의 탐험대를 이끌고 비슷한 시기에 출발했지만, 결과는 극과 극이었다. 


개와 스키를 이동수단으로 삼았던 아문센에게는 천운이 따랐다. 평탄한 지형의 남극에 도착해 개썰매와 스키를 타고 순조롭게 전진했다. 아문센은 그해 12월 14일 인류 최초로 남극점에 노르웨이 깃발을 꽂았다. 말과 살상차를 이동수단으로 삼았던 스콧은 악전고투의 연속이었다. 극심한 추위에 설상차는 얼어붙었고 말도 모두 동사했다. 스콧의 탐험대는 아문센보다 한 달 이상 늦은 1912년 1월 17일 남극점에 도착해 영국 깃발을 꽂았다. 


돌아오는 길, 남극에는 눈보라와 악천후가 덮쳤다. 식량도 떨어졌다. 대원들이 하나둘씩 쓰러졌다. 부상당한 한 대원은 "잠시 나갔다 오겠다"며 텐트 밖 눈보라 속으로 사라졌다. 스스로 희생을 선택한 것이다. 죽음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절망의 순간에도 모든 것을 기록했다. 김영하의 말처럼 그것밖에 할 게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거라라도 하지 않는다면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1912년 3월 29일, 이 일기를 끝으로 스콧은 결국 숨을 거둔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지만, 우리는 점점 지쳐가고 있다. 끝이 머지않았다. 유감이지만 더 이상은 일기를 쓰지 못할 것 같다. 신의 가호가 있기를." 


남극 도전에 나섰던 스콧과 그의 마지막 일기. <사진=위키피디아>

◇ 그들은 썼다, 그리고 또 썼다


극한의 한계 상황에서 그들이 한 일은 '글쓰기'였다. 죽음의 공포가 엄습하고 그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닥쳤을 때, 그들은 썼다. 쓰고 또 썼다. 보비뿐 아니라 1980년대 일본의 미즈노 겐조라는 시인은 눈을 깜빡여 시집을 출간했다. 남극 정복에 나섰던 스콧도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기를 썼다. 


솔제니친은 혹한의 수용소 생활을 경험하고, 당시의 경험을 살려 소설을 썼다. 사마천은 궁형이라는 끔찍한 형벌을 당한 몸으로 평생에 걸쳐 글을 썼다. <사기>가 바로 그 책이다. 글은 총알과 포탄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도 숱하게 탄생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스페인 내전에 직접 참전하고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썼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안네의 일기>도 언제 발각될지 모를 공포와 마주하며 매일매일 써 내려간 기록이다. 김영하는 이렇게 정리한다. 


"요컨대 사람들은 그 어떤 엄혹한 환경에서도, 그 어떤 끔찍한 상황에서, 그 어떤 절망의 순간에서도 글을 씁니다. 그것은 왜일까요? 글쓰기야말로 인간에게 남겨진 가장 마지막 자유, 최후의 권능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빼앗긴 인간도 글만은 쓸 수 있습니다ᆢ거꾸로 말하자면, 글을 쓸 수 있는 한, 우리는 살아 있습니다. 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썼다. 그리하여 김영하의 말처럼 '글을 쓴다는 것은 한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지키는 마지막 수단'이다. 


솔제니친. <사진=www.theimaginativeconservative.org>


글쓰기는 인간에게 남겨진 마지막 자유


김영하의 <말하다>는 등단한 이후의 인터뷰와 대담, 강연을 모은 글이다. 개인적으로 인터뷰나 대담보다는 강연이 좋았다. <힐링캠프>에서 강연했던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근거 없는 낙관이 아니라 비관적 현실주의'라는 주장도 마음에 든다. 이를테면 이런 내용이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낙관이 아니라 비관입니다. 어떤 비관인가? 바로 비관적 현실주의입니다. 비관적으로 세상과 미래를 바라보되 현실적이어야 합니다ᆢ대책 없는 낙관을 버리고, 쉽게 바꿀 수 있다는 마음을 버리고, 냉정하고 비관적으로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김영하의 <말하다>를 읽으며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두 책은 유사하면서도 사뭇 다르다. 그의 전작 <보다>와 비교해도 그렇다. 책을 읽으며 김영하를 잘 알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자에 읽은 <살인자의 기억법>도 조금 특이하네 정도가 전부였다. 그의 글쓰기에 대한 철학, 작가와 독자의 소통법. 소설가로서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이 책은 그래서 '김영하의 새로운 발견'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아직 읽지 못한 그의 소설들을 하나씩 읽어볼 참이다.

글쎄다. 앞서 언급했던 보비나 스콧, 헤밍웨이, 사마천과 같은 상황에 처하면 비로소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럴 것 같지 않다. 작가 김영하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오히려 내 삶의 자유를 위한 글쓰기다. 누가 읽지 않아도, 혹평이 쏟아져도, 설사 글 한 줄 쓰기 힘든 엄중한 상황에서도 주눅 들지 말고 자신의 즐거움과 자유를 위한 글쓰기. 그래서 그의 이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게 무엇이든 일단 첫 문장을 적으십시오. 어쩌면 그게 모든 것을 바꿔놓을지도 모릅니다."     


by 책방아저씨 


김영하 작가. <사진=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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