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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방아저씨 Sep 06. 2015

그래도 오베는 운이 좋았다

까칠한 <오베라는 남자>의 치명적 매력


"한국의 남성에게 여성 혐오는 차라리 시대정신이다. 그런 걸 전략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여성 혐오만큼 희한한 전략도 흔치 않다.” 


언젠가 <시사IN>에 실린 '여자를 혐오한 남자들' 제하 기사의 내용이다. 일베충들을 중심으로 온라인에서 기생하던 여성 혐오주의자들이 이제 현실 세계에서 목소리를 키워가고 있다. 현실에서 무능력하거나 무기력한 그들이 약자들을 주적(主敵)으로 삼아 공격하는 행태는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집단적으로 약자를 괴롭히고 공격함으로써 자신들의 영역을 넓혀가려는 이 전략은 잔인하다 못해 야비하다. 어느 여류시인이 ‘싸나이(당연히 약자를 보호하고, 불의에 맞서 싸울 줄 아는)’는 사라지고 ‘남성(젠더로서의)’만 남았다고 한탄했던 것이 이미 20년 전이다. 이제는 ‘남성’조차 사라지고 ‘수컷(천박한 본능만 남은)’만 남았다고 한탄해도 전혀 이상하게 들리지 않을 정도다. 그렇게 21세기 한국 사회는 정글이 되고 있다.


북유럽에서 날아온 한 남자(과연 그는 '남자'라 부를만하다)가 있다. 그의 이름은 오베. 59세의 나이로 아저씨라고 하기에는 다소 늦었고, 할아버지라고 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분명한 사실은 죽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것. 그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아내한테 가기 위해 매일 자살을 계획한다.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 <오베라는 남자: A Man Called Ove>의 주인공, 오베의 이야기다. 


저자 프레드릭 배크만은 인기 블로거였다. <사진 출처=출판사 블로그>




◇매일 자살을 꿈꾸는 까칠한 '마초'  

그는 영락없는 ‘마초’다. 남자란 자기 차를 사기 전까지는 진정한 남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남자는 행동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남자인 거야. 말이 아니라.”  자신이 타는 사브 말고 다른 차를 타는 사람은 상종할 가치가 없다고 여긴다.  ‘거주자 구역에서는 차를 몰 수 없다’는 이정표를 보고도 차를 몰고 오는 이웃사람에게는 가차 없이 응징을 가한다.


그는 아주 까칠한 마초다. 세상 모든 게 못마땅하다. 이웃이라고 온 사람들도 엉망진창이다. 후진도 제대로 못하면서 트레일러를 끌고 와서는 화단을 엉망으로 만들고, 게다가 차에서 내려 맞고함을 치는 사람은 만삭인 외국인 여성이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고친 자전거를 선물하고 싶다는 녀석의 ‘사랑하는 연인’은, 남자다. 타이어 하나 갈아 끼우지 못하면서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지식으로 넘쳐 났다.


세상은 점점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말도 안 되는 루저(혹은 사회적 약자)들뿐이다. 그가 원하는 것이라고는 먼저 이 세상을 떠난 아내 곁으로 가는 일뿐이다. 그것도 가능한 한 빨리. 책의 한 대목을 보자. 


이제 원하는 거라고는 평화롭게 죽는 것뿐이라고, 차고 속 사브에 앉아 창문 너머로 정원을 바라보며 그는 생각했다. 머저리 같은 이웃들 방해만 피할 수 있다면 오늘 오후 안에 떠다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속 표지와 내부 일러스트. <사진 출처=출판사 블로그>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기를 이해해준 아내가 없는 세상은 더 이상 살 이유가 없다. 오베에게 아내는 어떤 여자였냐고? 이런 여자였다. "그는 흑백으로 이루어진 남자였다. 그녀는 색깔이었다. 그녀는 그가 가진 색깔의 전부였다."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 오베는 아무 존재도 아니었다. 아내가 죽은 뒤 오베는 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된다. "그의 가슴이 분노와 슬픔으로 고동쳤다. 하지만 그녀는 그저 “다 괜찮을 거예요, 여보”라고 속삭이며 그의 팔에 기댈 뿐이었다. 그녀는 집게손가락으로 그의 손바닥을 부드럽게 눌렀다. 그리고 눈을 감은 뒤 죽었다. (…) 누군가 묻는다면, 그는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자기는 결코 살아 있던 게 아니었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녀가 죽은 뒤에도."


그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일은 그녀의 손을 다시 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녀를 그리며 상상하는 것 중에서 가장 간절한 건, 정말로 다시 하고 싶은 건 그녀의 손을 잡는 것이었다. 그녀는 자기 집게손가락을 접어 그의 손바닥 안쪽에 숨기는 버릇이 있었다. 그녀가 그럴 때면 세상없다는 것도 불가능한 게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워할 수 있는 모든 것들 중에서, 그것이 가장 그리웠다." 


오베는 매일 자살을 시도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이렇게 얘기하는 날이 갈수록 많아진다.  "자살하기에는 내일도 오늘 못잖게 괜찮은 날이야." 




◇오베가 제때 자살하지 못하는 이유


오베가 제때 자살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자신이 도와야 할 이웃, 사소한 일들이 자꾸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도 어느 날 모르고 치운 눈 속에 파묻히는 바람에 같이 살아야 할 고양이도 자꾸 자살을 방해한다. 오베는 귀찮아 죽겠고, 사사건건 짜증 나지만 오베가 그렇게 귀찮고 짜증 내며 나서서 하는 일들이 자꾸 감동을 준다. 고집불통, 짜증 투성이, 투덜거림으로 똘똘 뭉친 이 사내가 자꾸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것이다.


 오베라는 남자와 그의 고양이. <이미지 출처=책 표지에서>


어느새 우리의 마초는 그들을 귀찮고 싫어하면서도 정작 그들의 삶에서 가장 필요할 때, 필요한 일을 해결해주는 ‘슈퍼맨’과 같은 존재가 된다. 물론 그가 그들을 위해 한 일이라고는 사랑하는 연인에게 보여줄 자전거를 고쳐주고, 오갈 데 없는 고양이를 받아주고, 임산부의 남편이 다치자 자신의 차로 병원에 데려다주고, 지하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해주는 정도(?)지만, 점점 사람들은 오베를 받아들이고 이 까칠한 남자를 좋아하게 된다. 


오베가 재미있고,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가장 먼저 눈치챈 것은 옆집에 사는 세 살짜리 꼬마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사물들은 모두 검정 크레용으로 그렸는데, 가운데 오베만 노랑과 빨강, 파랑, 형형색색으로 그렸다. 그 꼬마의 엄마인 이웃집 여자는 이렇게 전한다. “걔가 보기엔 당신이 제일 재미있는 사람인 거예요. 그래서 맨날 당신을 컬러로 그리는 거고요.”


물론 그 세 살짜리 꼬마보다 훨씬 더 먼저 오베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를 눈치챈 것은 그의 아내였다. 그녀가 처음 본 느낌이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 오베의 진짜 모습이다.


그는 아버지가 입던 갈색 정장이 살짝 쫙 끼는 널찍하고 슬픈 어깨였다. 그는 정의와, 페어플레이와, 근면한 노동과, 옳은 것이 옳은 것이 되어야 하는 세계를 확고하게 믿는 남자였다. 훈장이나 학위나 칭찬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그래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남자들은 이제 더 이상 그리 많이 나오지 않는다는 걸 그녀는 알았다.




영화 <오베라는 남자>의 한 장면. 


◇원칙 때문에 싸우는 사람들이 사라진 세상


오베는 ‘자기 원칙을 걸고 싸울 준비가 된 사람들이 더 이상 없는 세상’에서 자기 원칙을 걸고 그 무엇과도, 언제든지 싸울 준비가 된 남자였다. 우리도 이미 알고 있다. 회사에서든 어디서든 이런 남자를 만나기가 얼마나 어려운 세상인지를. 


세상에 화풀이한다며 기껏해야 세상에서 가장 약한 존재들에게 해를 가하고, 여자 다리를 묶어놓고 트렁크에 실어놓고 폼 잡고 서 있는 것이 진정한 남자다움이라고 뻐젓이 표지 사진을 싣는 세상에서 오베와 같은 남자는 결코 만나기 쉽지 않다는 사실을. 


<오베라는 남자>는 <돈키호테>나 <그리스인 조르바>의 오마주로 읽힌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내일이 아니라 오늘의 행복을 위해 나뿐만 아니라 나를 둘러싼 모든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고, 심지어 죽음까지도 내 스스로 선택할 만큼 강한 의지를 가진 진정한 ‘싸나이’에 대한 노스탤지어다. 아홉 페이지 웃으며 읽다가 한 페이지 읽으며 울컥해지고, 또 아홉 페이지 킥킥거리고 웃다가 한 페이지 찡하게 읽는 책이다. 


‘여자를 혐오하는 남자들’만 가득한 일베충의 사회다. 원칙이고, 의리고, 심지어 사랑이고 뭐고 할 것 없이 오로지 '살아남는 것'이 지상과제가 된 헬조선이다. 이 책은 이런 세상에서 오베와 같은 ‘진짜 싸나이' 한 명 정도는 있어도 괜찮지 않겠냐고 말한다. 책을 덮으며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참으로 오랜만에 했다.

그래도 오베라는 남자는 운이 좋았다. 만약 스웨덴이 아니라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그렇게 기를 쓰고 자살을 시도할 필요 없이 이미 화병으로 죽었을 것이다.


 by 책방아저씨 www.facebook.com/booksbooster  


※영화 <오베라는 남자>가 개봉했다. 아직 보지는 못 했다. 책처럼 재미있을지 모르겠다. 


<오베라는 남자> 책 표지. 
<밑줄 친 문장들>

오베가 그녀에게 책장을 만들어주면 그녀는 페이지마다 작가의 생각으로 가득 찬 책들을 거기에 꽂았다. 오베는 자기가 보고 만질 수 있는 것만 이해했다. 시멘트와 콘크리트, 유리와 강철, 공구들, 가늠할 수 있는 물건들. 그는 올바른 각도와 분명한 사용 설명서를 이해했다. 조립 모델과 도면, 종이에 그릴 수 있는 것들. p57

이 세상은 한 사람의 인생이 끝나기도 전에 그 사람이 구식이 되어버리는 곳이었다. 더 이상 누구에게도 무언가를 제대로 해낼 능력이 없다는 사실에 나라 전체가 기립 박수를 보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범속함을 거리낌 없이 찬양해댔다. 아무도 타이어를 갈아 끼우지 못했다. 전동 스위치 하나 설치 못했다. 바닥에 타일도 못 깔았다. 벽에 회반죽도 못 발랐다. 자기 세금 장부 하나 못 챙겼다. 왜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타당성을 잃어버린 형태의 지식들만 넘쳐났다. p119

"모든 어둠을 쫓아버리는 데는 빛줄기 하나면 돼요." 언젠가 그가 어째서 늘 그렇게 명랑하게 살아가려 하느냐고 그녀에게 물었을 때,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p153

살다 보면 자신이 어떤 남자가 될지를 결정하는 때가 온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짓밟게 놔두는 인간이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결정하는 때가. p158

모든 남자들에게는 자기가 어떤 남자가 되고 싶은지를 선택할 때가 온다.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면, 남자에 대해 모른 것이다. p159  

"우린 사느라 바쁠 수도 있고 죽느라 바쁠 수도 있어요, 오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해요." p276

슬픔이란 그런 점에서는 믿을 만한 감정이 아니다. 사람들이 슬픔을 공유하지 않을 경우, 슬픔은 대신 서로를 더 멀리 밀어낼 공산이 컸기 때문이다. p333

자기가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란 어렵다. 특히나 무척 오랫동안 틀린 채로 살아왔을 때는. p410

죽음이란 이상한 것이다. 사람들은 마치 죽음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 양 인생을 살아가지만, 죽음은 종종 삶을 유지하는 커다란 동기 중 하나이기도하다. 우리 중 어떤 이들은 때로 죽음을 무척이나 의식함으로써 더 열심히, 더 완고하게, 더 분노하며 산다. p436

우리는 죽음 자체를 두려워하지만, 대부분은 죽음이 우리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데려갈지 모른다는 사실을 더 두려워한다. 죽음에 대해 갖는 가장 큰 두려움은, 죽음이 언제나 자신을 비껴가리라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우리를 홀로 남겨놓으리라는 사실이다. p436~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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