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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방아저씨 Sep 11. 2015

왜 짜증나는가

'짜증'의 과학, <우리는 왜  짜증나는가>


그(녀)가 누군가와 나누는 대화는 별로 짜증스럽지 않다. 매력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목소리도 그 정도면 들어줄 만 하다. 대화 내용도 호기심을 유발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전화로 통화하는 그(녀)는 짜증스럽다. 똑같은 목소리 톤에, 나와는 상관없는 대화 내용을 왜 듣고 있어야 하지? 버스나 지하철을 탔을 때 흔히 겪는 일이다. 쉬쉬하지만 직장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 


여기서 질문을 바꿔보자. 다른 사람의 전화통화가 도대체 왜 짜증이 나는 걸까? 요크대 학자들은 두뇌과학 측면에서 이 문제를 관찰했다. 통화하는 사람이 무례하다거나 에티켓이 부족하다는 등의 사회적 잣대는 배제했다.

결론은 이렇다. 다른 사람의 전화통화가 짜증 나는 이유는 그 대화가 '반쪽짜리 대화'이기 때문이다. 목소리가 큰 것도 아니고(유난히 큰 사람도 있기는 하다), 패턴도 일정하지만 언제 끝날지도 불확실하고, 어떻게 대화가 전개될지 모르는 '예측 불가능성'이 짜증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인간의 두뇌는 뭔가 예측하지 못한 일이 발생하면 그쪽으로 주의를 기울이고 짜증이 나도록 작동한다.


우리는 옆사람의 전화 통화, 혹은 사소한 소리에도 짜증이 난다.


정반대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전혀 매력적이지 않은 그(녀)와 사랑에 빠지는 이유는 어쩌면 매우 단순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터져 나오는 여유 있는 유머, 심지어 술 마실 때 나오는 습관이나 버릇이 매력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랑에 빠지게 했던 이러한 이유는 이별의 결정적인 이유가 되기도 한다.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재치 있는 유머가 그렇게 나를 즐겁게 하고, 술 취했을 때 나오는 습관이 그렇게 귀엽게 보였건만 어느 순간 가장 짜증 나는 일이 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과학은 사람들의 짜증에 대해 할 말이 많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의 펨리 교수는 실험을 통해 그 이유를 입증했다. 어떤 사람이 특정한 특징을 더욱 강력하게 드러낼수록 해당 특징이 짜증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여기서 관건은 '빈도'다. 가끔씩 재치 있는 말을 하는 사람보다 항상 재미있고 농담을  즐겨하는 사람이 연인에게 짜증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해트필드라는 심리학자는 이것을 '공정성 이론'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만약 관계에서의 힘이 본인이게 기울어져 있거나 관계에서 상당한 이득을 얻고 있다면 상대방의 짜증 나는 습관도 기꺼이 눈 감아준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심리적으로 변화를 원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누군가 당신에게 "너의 이런 모습이 좋았는데 지금은 그게 가끔 짜증 나"라고 말하면 헤어지자는 신호로 받아들이면 된다. 사랑이 식은 거다.


우리는 짜증나는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지나치게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낸다. 무슨 이유일까?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 NPR의 과학전문 기자인 조 팰카와 플로라 리히트만이 쓴 <우리는 왜 짜증나는가>의 부제는 '우리의 신경을 긁는 것들에 대한 과학적 분석'이다. 저자들은 심리학, 사회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 광범위한 분야를 아우르며 '짜증'의 근원을 찾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짜증 나는 소리, 짜증 나는 냄새, 그리고 짜증 나는 친구나 연인, 배우자 등 우리는 상시적으로 짜증에 노출되어 있다. 하지만 정작 왜 짜증이 나는지 이유는 모른다. 어느 정도 느껴야 짜증이라고 할 수 있는지 기준도 없다. 

저자들은 이런 전제로 여정을 시작한다. "과학은 짜증에 대해 할 말이 많다. 짜증이라는 감정에 대한 여정에서 우리는 무엇이 인간을 짜증 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몇 가지 유형을 찾아냈다. 모든 것을 망라하는 짜증의 대통일 이론을 기대하지는 마라. 짜증에 관한 과학적 연구는 아직 걸음마 단계일 뿐이다. 다만 우리가 찾아낸 사실들을 그 시작점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과학적으로 볼 때 짜증은 '감각'과 관련이 깊다. 하지만 같은 감각이 자극을 받아도 짜증을 유발하는 '작동 기제'는 제각각이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의 전화통화 소리에 짜증이 나는 것은 두뇌가 불확실성에 불안해하기 때문이지만,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소리에 대한 짜증의 원인은 사뭇 다르다.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소리는 인간의 비명과 주파수가 비슷하다. 청력의 합리적 보호를 위해, 혹은 진화적으로 우리의 두뇌에 각인된 원시적 공포를 일깨우기 때문에 짜증이 난다는 것이다. 


영화 <미쓰 홍당무>의 한 장면.  안면홍조까지 있는 주인공은 되는 일 없이 사사건건 짜증만 난다. 


우리를 더 짜증 나게 하는 것은 '인간관계'


정작 우리를 더 짜증 나게 하는 것은 인간관계에서의 짜증이다. 그것은 일종의 '사회적 알레르기'다. 다른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큰 소리로 음악을 듣는 사람, 금연 구역에서 보란 듯이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람 등이 알레르기원(源)이다. '사회적 짜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문화적으로도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예를 들어 서양에서는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권이 제한될 때 짜증을 내지만, 동양에서는 개인이 집단이나 공동체에서 두드러지게 행동할 때 짜증을 유발한다. 우리가 '튀는 사람'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감각에서 오는 신체적 짜증이든 인간관계에서 오는 사회적 짜증이든, 짜증은 삶의 일부분이다. 피할 수도 없고, 어디에나 존재한다. 대부분 우리가 최선을 다하지만 짜증은 우리를 약 올리고,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집중력을 흐트러뜨린다. 더 '짜증 나는' 일은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묘책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사회적 짜증의 경우 특히 그렇다. 상대방에게 짜증 나는 행동을 멈춰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겠지만 어떤 '알레르기원'은 고의가 아닌데다 통제하기도 어렵다. 오히려 그들은 이렇게 묻는다. "내가 당신을 짜증 나게 했나요?


결국 짜증을 이겨내는 방법은 극단적이지만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전력을 다해 맞서 싸우는 것, 즉 햄릿의 말처럼 "셀 수 없이 많은 세상의 고통과 맞서 싸워 그것들을 끝장내버리는 것"이다. 또 한 가지 방법은 짜증을 유발하는 요소에 조금도 개의치 않는, 짜증에 초월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결국 가장 큰 짜증은 인간관계에서 오는 짜증이다.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이런 모든 방법이 크게 소용없다는 사실을. 그래서 책의 이러한 결론이 조금 짜증스럽지만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달리 대안이 없다.

"어떤 것도 (짜증에 대해) 그리 큰 효과를 발휘하지는 못한다. 일시적으로는 기분이 나아질지 모르지만 우리를 짜증 나게 하는 요소는 이유 여하를 초월하여 짜증을 유발하기 마련이다.(중략) 따라서 부정적인 느낌은 전반적으로 그다지 나쁘지 않다는 점을 최후의 위안으로 삼아보자. 부정적인 느낌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신호이며, 그 덕분에 평소에는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이 더욱 확연하게 드러난다."


그냥 있어도 짜증 나는 세상이다. 그렇다고 너무 많이 짜증 내지는 말자.

by 책방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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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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