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방아저씨 Oct 16. 2015

물리학으로 보면 세상물정이 보인다

세상 물정 좀 아는 한 물리학자의 충고 <세상물정의  물리학> 


“당신의 삶은 세계의 사건 중 한 조각이 아니라 세계의 사건 전체”라는 물리학자 슈뢰딩거의 말로 시작되는 노명우 교수의 <세상물정의 사회학>을 읽은 것은 작년이었다. 세상 이치는 다 깨우치지 못했으나 세속의 물정이야 남들만큼 안다고 큰소리를 치며 살았는데 눈앞에 닥치는 소소한 일조차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는 힘이 부쳤다. 작은 실마리라도 찾고 싶어 열심히 밑줄을 그었다. 

김범준 교수의 <세상물정의 물리학>. <사진=동아시아>


노명우 교수가 <세상물정의 물리학>에 추천사를 쓴 것은 <세상물정의 사회학>으로는 세속의 이치를 파악하기에는 부족하니 그 빈자리의 허전함을 이 책으로 채우라는 인심으로 읽힌다. 사회학을 씨줄로, 물리학을 날줄로 삼아 촘촘히 엮은 옷이라면 갈수록 혼돈스럽고 각박한 세속의 삶을 조금이나마 지혜롭게 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넉넉한 인심이다. 그 ‘인심’이 바로 융합, 혹은 통섭의 근본일 터. 노 교수는 추천사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회학적 질문의 대상이 되는 인간과 물리학의 질문의 대상이 되는 인간은 서로 다르지 않다. 인간은 동일하다. 단지 각 분과학문이 동일한 대상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방법과 그 질문을 풀어가는 과정만이 서로 다를 뿐이다. (…) 세상 물정이 어찌 사회학자의 관심 분야이겠는가. 세상 물정이라는 질문이 놓여 있는 테이블엔 물리학자도 앉을 수 있다. 세상 물정에 대해 공통적으로 던지는 질문의 귀중함에 주목한다면, 분과학문 사이의 경계를 따져 묻는 일은 부질없다.”


지금여기서 를 찾는 물리학


사회학으로도 충분한 답을 주기 어려운 세속의 삶을 어찌 물리학이라고 쉽게 답을 주겠는가. 저자인 김범준 성균관대 교수의 말처럼 오히려 “표준적이고 전통적인 물리학에는 ‘지금, 여기’란 없고, 물리학 논문에는 ‘나’가 없다.” 그래서 “물리학자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속으로는 세상 물정을 모르는 이상한 괴짜를 떠올린다.” 

<세상물정의 물리학>은 그러한 통념에 대한 반전을 시도한다. 물리학을 통해 ‘지금’, ‘여기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현상을 분석하고, 그 현상에 둘러싸여 갈 곳 모르는 ‘나’와 ‘우리’를 발견한다. 이 책은 세상 물정을 모르는 이상한 괴짜가 들려주는 속 시원한 세상 이야기다.  

저자 김범준 교수. <사진=동아시아>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영화 <인터스텔라>와 과자 허니버터칩의 성공 비결, 명절 연휴 고속도로 교통 체증의 원인, 합리적 의사결정을 위한 조직 구조, 프로야구팀들의 이동 거리를 최소화하는 경기 일정 짜기. 메르스 같은 전염병의 확산을 막는 골든 타임, 혈액형과 성격의 상관관계…. 저자는 이처럼 다양한 세상 물정의 소재들을 통계물리학으로 분석해 그 현상들의 사회적 함의를 찾아낸다. 


또 저자는 복잡계 네트워크 과학을 통해 정확한 실험과 통계로 추출한 과학적 결과를 소개하면서도, 이 결과물들이 과학이라는 틀에 묶여있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과학적 도구로 현상을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비판적이며 지혜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그것은 가끔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을 ‘물리적’으로 뛰어넘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뒷담화’다. 우리는 통념상 뒷담화를 싫어할 뿐 아니라 사회적 관계망을 저해하는 요소로도 취급된다. 하지만 저자는 뒷담화를 권한다. 잘못된 의사결정과 일방통행식 의사결정 구조가 고착화되어 있는 조직에서는 뒷담화가 매우 유용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의사소통 구조와 ‘때맞음(말 그대로 때가 맞음을 의미한다.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행위와 결과가 도출된다는 뜻으로 보면 될 것 같다)’의 상관관계를 통계물리학으로 분석하는 실험을 실시했다.

저자는 사람들의 관계망, 의사결정 구조에서 '뒷담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실험 결과 상명하복 구조에서 다양한 의사소통이 가능해지면 한동안은 ‘때맞음’ 정도가 약해진다. 하지만 계층을 넘나드는 의사소통이 훨씬 더 활발해지면 이러한 상명하복 구조보다 더 강한 때맞음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결국 다양한 의사소통 구조가 존재하면 최상위자의 일방적인 명령을 전체 집단의 다른 올바른 의견으로 수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대학을 빗대어 뒷담화의 필요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한국 대학에서 나 같은 지도교수가 연구와 관련해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해도, 그룹에 속한 대학원생이 그것을 지적하기란 여간해서는 어렵다. 지도교수의 헛소리를 극복하는 길은 무엇일까. 그 답은 ‘뒷담화’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뒷담화로 바로잡은 나의 헛소리를 대학원생들이 알려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뒷담화를 활성화하라


프로야구팀들의 이동거리에 대한 흥미로운 분석도 내놓았다. 2012년 프로야구팀들의 이동거리를 분석해보니 롯데가 총 9200km로 가장 길었고, LG는 5500km로 가장 짧았다. KBO에서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만큼 롯데를 위해 원정 9연전의 예외를 뒀지만 이동거리의 불평등을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어떻게 하면 각 팀에 공평한 최적화된 경기 일정표를 만들 수 있을까?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저자는 통계물리학을 전공하는 우수한 대학원생들에게 몬테카를로 방법을 적용해 공평한 경기 일정표를 만들라는 모둠과제를 냈다. 학생들은 단 며칠 안에 이에 필요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고 그 결과를 도출했다. 그렇게 얻어진 경기 일정표에 따라 각 팀의 이동거리를 다시 계산해보니 각 팀의 이동거리 차이가 상당히 줄었다. 이 실험 결과는 논문으로 출간됐고, 논문의 결과는 과학면이 아니라 스포츠 면에 실렸다. 

고속도로 정체현상도 물리학에서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사진=쿠키뉴스>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명절 연휴 고속도로 교통 체증의 원인도 복잡계 네트워크 과학으로 설명한다. 원인은 단순하다. 무엇보다 차가 많아지면서 교통 흐름이 느려지는 이유는 운전자의 반응시간이 보통 1초 정도 되기 때문이다. 차 100대를 한 줄로 연결하면 시속 60km에 도달할 때까지의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앞 차가 움직여야 나도 가속페달을 밟는다. 이런 방식으로 100대가 시속 60km로 움직이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또 다른 이유는 운전자의 반응시간과 운전습관의 차이다. 차가 많아도 모든 차가 같은 거리와 같은 속도로 달리면 정체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런데 앞 차가 살짝 브레이크를 밟아도 뒤 차는 급브레이크를 밟게 된다. 차가 별로 없을 때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차가 많으면 앞 차의 작은 교란도 바로 뒤차로 전달된다. 이처럼 사고가 난 것도 아니고 야생동물이 도로에 뛰어든 것도 아닌데 차가 많기 때문에 이유 없이 생기는 현상을 ‘유령 정체(phantom traffic jam)’라고 부른다. 


목표는 하나제대로 된 눈을 갖자


통계물리학자들이 감염, 혹은 전파를 보는 관점은 단순하다. 그것이 SNS를 통해 떠돌아다니는 소문이든, 병원균이든, 컴퓨터 바이러스든, 심지어 옷차림의 유행이든 ‘지수함수’를 적용하면 전파의 위력을 미리 짐작할 수 있다. 지수함수는 엄청나게 빨리 증가하는 함수다. 병원균을 예로 들어보자. 1차 감염자 100명 모두가 100%의 확률로 다른 사람을 감염시킨다는 극단적인 가정을 하면 6차 감염만 돼도 전 국민이 감염된다. 

프로야구 구단의 이동거리를 분석한 결과. <사진=책 본문 중에서>


물론 이런 일은 수학적으로만 가능하다. 하지만 올해 한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메르스는 지수함수의 꼴로 감염자가 발생하는 병원균 전파에서는 초기 대응과 투명한 정보 공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줬다. 처음 전염이 일어난 병동을 완벽히 고립시키고, 정확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했다면 발생하지 않을 일이었다는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대중은 쉽게 공황상태에 빠지지 않는다. 믿을 수 있는 정보를 제공받지 못해 귓속말로 전해지는 괴담만이 정보의 원천이 될 때 대중도 공황 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물리학을 통해 세상 물정을 파악하는 일은 한계가 없다. 저자는 ‘남산에서 돌을 던지면 누가 맞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한국인의 성씨 분포를 분석해낸다. 영화 <인터스텔라>와 허니버터칩의 성공 비결을 통해 ‘문턱값’이 좌우하는 유행의 비밀을 포착하고,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지역감정은 득표율의 거리상관함수로 설명한다. 거대한 사회현상뿐 아니라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지 없는지, 왜 예술작품은 아름다움을 갖고 있는지 등과 같은 질문에도 물리학은 명쾌한 답을 내린다. 


따지고 보면 사회학이든, 물리학이든 목표는 같다. 제대로 볼 수 있는 눈을 갖자는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집단지성’과 ‘우매한 대중’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이성적인 지성과 합리적인 판단은 결국 ‘앎’에서 시작된다. 세상 물정은 갈수록 복잡하고 변화무쌍해 쉽게 접근을 허락하지 않지만 그럴수록 그것을 분석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벌써부터 <세상물정의 사회학>과 <세상물정의 물리학>, 그다음이 기다려진다. 


by 책방아저씨
https://www.facebook.com/booksbooster

저자는 우매한 대중과 집단지성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말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 물건이 그렇게 생긴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