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마션>에서 말하는 화성 생존비법
<책 '마션'에서 말하는 화성 생존비법>
영화관 문을 나서며 아무래도 원작을 읽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책 <마션>은 다소 민망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아무래도 × 됐다.” 이 자조 섞인 주인공의 독백과 ‘어느 괴짜 과학자의 화성판 어드벤처 생존기’라는 부제가 이 책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
세 번째 유인 우주 탐사인 ‘아레스 3’ 탐사대원들은 화성 표면에 성공적으로 착륙한 후 본격적인 탐사에 나선다. 하지만 6일 만에 시속 175km의 예상하지 못한 거대한 모래폭풍이 불면서 임무는 중단되고 NASA의 복귀 명령이 떨어진다. 한치 앞도 안 보이는 모래폭풍을 뚫고 대원들은 MAV(화성상승선)에 탑승하고 화성 탈출에 성공한다. 식물학자이자 기계공학자인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 한 명만 빼고.
◇화성 착륙 6일 만에 악몽이 시작되다
화성에서 사망한 최초의 인간(혹은 유일한 인간)으로 기록될 위기에 처한 마크의 생존 분투기가 시작된다. 믿을 것은 화성 곳곳에 심어져 있는 NASA의 기술력과 마크의 식물학적, 기계공학적 지식, 그리고 어떤 위기의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유머뿐이다(정말 마크는 끈질기게 유머를 구사한다).
“내 인생 최고의 시간이 될 줄 알았던 한 달이 겨우 엿새 만에 악몽으로 바뀌어 버렸다. (…) 나는 6화성일째에 죽지 않았다. 다른 대원들은 분명히 내가 6화성일째 죽은 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 잘못이 아니다. 아마 조만간 나의 국장이 치러질 것이고 위키피디아에서 내 이름을 검색하면 이렇게 나올 것이다. ‘마크 와트니는 화성에서 사망한 유일한 인간이다.”
인간의 생존에 가장 필요한 것은 공기와 물과 식량이다. 마크의 말처럼 “산소 발생기가 고장 나면 질식사할 것이다. 물 환원기가 고장 나면 갈증으로 죽을 것이다. 막사가 과열되면 그냥 터져버릴 것이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다 해도 결국 식량이 떨어져 굶어 죽을 것이다.” 결국 마크 스스로 공기와 물을 만들고 감자까지 생산한다.
영화에서는 세밀하게 묘사되지 않았지만 화성에서의 생존은 정확한 계산과의 싸움이다. 모든 것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계산하고 그것에 따라 대비해야 한다. 지구에서야 계산이 틀리면 다시 계산하고 오차를 바로잡으면 그만이겠지만 화성에서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나는 하루에 1,500kcal를 섭취해야 한다. 그리고 이미 400일분의 식량을 갖고 있다. 대략 1,425일 동안 살려면 하루에 얼마만큼의 칼로리를 만들어내야 하는가? 답은 약 1,100kcal이다. 아레스 4가 도착할 때까지 살려면 농사로 하루 1,100kcal를 만들어 내야 한다.”
◇화성의 교훈 "일해야 산다"
그리고 노동이다(화성에 가서도 결국 할 일이 노동이라니!). 마크는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막사 안팎을 오가며 일을 한다. 지구에서야 주말도 있고 휴일도 있지만 화성에서는 언감생심이다. 만들고 부수고, 고치고 이동하고, 싣고 내리고. 일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 그것 역시 죽음을 의미한다. 적어도 혼자 남은 화성에서는.
“나는 한시적으로나마 생존하는 법을 알아냈고, 이곳의 섭리에 익숙해졌다. 살아남기 위한 필사의 투쟁이 어느새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하고, 농작물을 돌보고, 고장 난 물건을 고치고, 점심을 먹고, 이메일에 답장하고, 저녁을 먹고, 잠을 자고. 어떤 면에서는 현대 농부의 삶과 다르지 않았다.”
화성이라는 극한의 환경에서 산소 발생기, 동력 추진기, 물, 통신, 탐사, 이동, 심지어 마지막 랑데부까지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크는 자신이 알고 있는 과학적 지식과 기술을 총동원한다. 마크의 귀환을 돕기 위해 나서는 지구의 NASA 역시 마찬가지다. 몇 가지 과학적 오류도 있지만 대부분 실제 과학적 지식과 기술을 바탕으로 했다. 그래서 이 책(영화도)은 SF 소설이 아니라 과학교양서로 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궁극적으로 687일(549화성일) 동안 화성에서 혼자 남아 죽음보다 더 공포스러운 외로움을 견딜 수 있게 한 힘은 포기하지 않는 희망과 유머다. 영화처럼 책도 시종일관 유머로 넘친다. 아무래도 작가는 생존의 필수조건으로 산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과학적 지식보다는 어떤 상황에서도 낙관적인 희망을 놓지 않는 유머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누군가를 도우려는 인간의 본능. 무사히 화성에서 탈출한 마크는 이렇게 묻는다.
“괴상한 식물학자 한 명을 구하기 위해 그렇게 많은 것을 쏟아 붓다니, 대체 왜 그랬을까? 그렇다. 나는 답을 알고 있다. 어느 정도는 내가 진보와 과학, 그리고 우리가 수 세기 동안 꿈꾼 행성 간 교류의 미래를 표상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모든 인간이 기본적으로 타인을 도우려는 본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그렇지 않은 듯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렇다.”
괴짜 과학자는 주인공 마크가 아니라 이 책의 저자 저자 앤디 위어인 것 같다. 그의 아버지는 입자물리학자, 어머니는 전기기술자였다. 어렸을 때부터 아서 C. 클라크, 아이작 아시모프 등의 작품을 탐독했다고.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컴퓨터공학을 공부했다.
블리자드이 ‘워크래프트 2’ 개발에 참여하기도 했던 이 천재 프로그래머는 어느 날 취미 삼아, 재미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지난 2009년 개인 블로그에 <마션>을 연재하기 시작하다가 독자들의 요청으로 전자책을 출판했다. 책 <마션>은 이렇게 탄생했다.
◇노벨과학상보다 부러운 <마션>
영화가 개봉할 무렵 노벨상 수상자 발표가 있었다. 이맘때면 일본(올해도 두 명이나 수상자를 배출했다. 그것도 노벨 물리학상은 2년 연속 수상!)과 늘 비교한다. 나는 솔직히 안 부럽다. 왜냐하면 부러워할 상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 국가 과학기술의 뿌리는 메이지유신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는 과학다운 과학을 한 것이 반세기도 되지 않는다(이전까지 과학은 산업화를 위한 수단이었다. 창조경제를 강조하는 요즘도 다시 그때로 회귀하려고 한다. 그러면서 노벨상 타령이다.)
솔직히 노벨 과학상을 벌써 스물 몇 개나 받은 일본보다 과학자가 이런 책을 쓰고, 그 책이 영화로 만들어지고, 국가 연구개발기관이 홍보에 열을 올리는 이런 문화가 더 부럽다. 화성 탐사에는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다. 전 국민적 관심이 있어야 중단 없이 추진할 수 있다. 어쩌면 미국 혼자로는 버거울지도 모른다. 책, 그리고 영화로 만들어진 <마션>은 미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화성 탐사에 대한 공감대를 불러오는데 적지 않은 기여를 했을 것이다.
책 맨 앞에는 화성 지도가 있다. 아레스 3 탐사대가 착륙했던 아시달리아 평원을 출발해 마우르스 협곡을 거쳐 최종 목적지인 스키아페렐리에 도착하기까지 3,200km의 대장정. 주인공 마크가 걸었던 길을 선으로 표시하며 책을 읽었다. 화성은 고사하고 아직 달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내가 화성 지도를 수시로 확인하고 경로에 선을 그어가며 우주인의 화성 탈출을 숨죽여 지켜본 것이다. 언젠가 화성에도 사람의 발을 딛게 될 것이다. 그때도 이렇게 그 우주인의 경로를 표시하며 화성에 발을 딛는 순간을 숨죽여 지켜보게 될 것이다.
이런 분들께 이 책을 권한다. 나처럼 영화가 기대에 못 미쳤다고 실망하고 있는 분들. 그 실망감을 책으로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다고 있다. 그리고 영화를 보지 못한 분들. 책으로 읽었다면 영화 본 사람들과 얘기해도 전혀 꿀릴 게 없다. 끝으로 지구의 삶이 너무 지겹다고 느끼는 분들께도 일독을 권한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지구에 살고 있지만 가끔 혼자라고 느끼는 사람들에겐 특히.
(결국 책을 읽고 영화를 한 번 더 봤다)
by 책방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