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방아저씨 Jan 08. 2016

"과학은 반역이다"

독단적 철학과 방법론에 저항하며 반역의 선봉에 섰던 과학자들 이야기

2015년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이 무엇이냐고 누가 물으면 주저 없이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라고 답한다. 2016년 독서 계획이 무엇이냐고 누가 물으면 망설임 없이 <코스모스>를 한 번 더 읽는 것이라고 답한다.

 

여름이 시작되는 6월이었다. 적게는 10페이지, 많게는 50페이지씩 꼬박 한 달이 걸렸다. 아무도 없는 이른 아침의 사무실, <코스모스>를 읽는 시간은 행복했다. 나의 깊지도 길지도 않은 과학책 독서 인생은 <코스모스> 읽기 전과 후로 나뉜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이 책에서 주목한 것은 인류와 생명, 지구와 우주의 탄생에 대한 과학적 사실이 아니다. 그런 위대한 과학적 사실들을 밝혀낸 배경이다. 생각해 보라. 바다 건너에 어떤 나라가 있는지도 모를 때 지구의 모양에 궁금증을 갖는 사람들이 있었다. 자기가 사는 땅과 지구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면서 우주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도 있었다.

심지어 매일 먹는 곡식조차 어떤 성분으로 이루어졌는지 모를 때 세상 모든 물질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과학적 도구가 전무하던 시절, 오로지 사유와 상상력의 힘으로 그렇게 했다. 칼 세이건은 그것을 ‘불순한 사고와 사상’이라고 표현했다.


아무 데서나 그런 사유와 상상력의 힘이 발현되지 않았다. <코스모스>에 따르면 인류 최초의 불순한 사고와 사상이 태동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6세기 에게 해를 중심으로 한 이오니아였다. 중국이나 인도, 메소포타미아가 아니라 이오니아에서 그런 ‘불순한 사상’이 꽃을 피우게 된 것은 ‘다양성’ 때문이라고 칼 세이건은 진단한다.


오펜하이머(오른쪽)와 대화하고 있는 리처드 파인만.


◇"시(詩)처럼 과학도 유일한 관점은 없다"


과학은 반역이고 과학자들은 반역자다. 물리학의 거장이자 92세의 노(老) 학자 프리먼 다이슨은 이런 말로 책을 시작한다.


"시의 관점이 하나가 아닌 것처럼 과학에도 유일한 관점 같은 것은 없다. 과학은 불완전하고 모순적인 관점들의 모자이크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들에도 한 가지 공통 요소가 있으니,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역의 우세한 문화가 가용한 제약들에 맞서는 것, 즉 '반역'이다."


프리먼 다이슨은 삶의 대부분을 미국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의 교수로 지냈다. 영국에서 태어난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민간 과학자로 영국 공군을 위해 일했다. 이후 리처드 파인만 등과 함께 원자와 방사선의 행동을 간편하게 계산할 수 있는 방식을 개발했다. ‘슈뢰딩거-다이슨 방정식’으로 노벨 물리학상 후보에까지 올랐다.

<과학은 반역이다>는 저자가 19~20세기 과학의 패러다임을 바꿨던 과학자들을 통해 반역의 가치를 찾고 21세기 과학의 길을 모색하는 과학에세이다. <뉴욕 리뷰 오브 북스>에 기고했던 논평과 서평을 모은 책이다. <코스모스>를 덮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 7월 여름,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아인슈타인. 저자는 반항하는 10대, 반역하는 과학자의 모습을 발견한다.

멀리 돌아갈 필요도 없다. ‘과학은 반역’이라는 명제를 쉽게 증명할 수 있다. 우선 아인슈타인. 그는 자신의 경험담을 이렇게 고백했다. “뮌헨의 루이 폴트 김나지움 7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나를 불러 학교를 그만뒀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은 아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나의 항변에 이렇게 대답하셨다. ‘네가 우리 반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에 대한 학급의 존경심이 더럽혀진다’.”


선생님은 도대체 10대 아인슈타인의 어떤 모습을 목격했던 것일까? 아인슈타인은 선생님의 뜻을 따라 15세에 학교를 그만두었다. 프리먼 다이슨은 아인슈타인에게서 반항하는 10대를 넘어 반역하는 과학자의 모습을 발견한다.


"우리는 아인슈타인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례에서 과학이 서양의 철학이나 방법론의 규칙에서 반항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젊은 영혼들을 구속하는 모든 문화의 압제에 저항하는 자유로운 영혼들의 동맹, 그것은 과학이다."


◇싸움꾼이자 반체제 인사였던 뉴턴


또 한 명의 대표적인 반역자는 뉴턴이다. 그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다. 그는 늘 승리하는 노련한 싸움꾼이기도 했다. 자신보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먼저 발견했다고 주장한 로버트 훅을 상대로도 승리했고, 미적분의 발견을 둘러싼 라이프니츠와의 표절 시비에서도 이겼다. 조폐국장을 역임했던 그는 자비를 호소하는 화폐 위조범의 청원을 단칼에 거절하고 교수형 판결을 받도록 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에 대한 종교 재판.


뉴턴은 <프린키피아>를 출간한 후 정치에 깊이 관여하기도 했다. 당시 국왕이었던 제임스 2세가 대학의 독립성을 직접 위협하자 그는 국왕에 대해 강경한 노선을 취했다. 대학 비망록에 ‘용기 있는 자만이 법을 지킨다’고 적기도 했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자면 뉴턴은 반체제 인사였던 셈이다.


실제 반체제 인사였던 과학자는 적지 않다. 수학자 챈들러 데이비스는 미국 하원의 반미활동위원회로부터 동료를 공산주의자로 밀고하라는 권유를 받는다. 밀고하지 않으면 유죄 판결을 받아야 하는 ‘야만의 시대’였다. 그는 위원회의 권유를 거절하고 유죄판결을 받는다. 재판 중에도 그는 프리스턴 고등연구소에서 계속 수학을 연구했다. 저자 프리먼 다이슨은 챈들러 데이비스를 연구소 회원으로 임명하던 때를 프리스턴 고등연구소의 역사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으로 꼽는다.


저자가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반역은 이러한 반체제의 의미도 포함되지만, 더 포괄적이다. 과거의 제약과 불평등에서 벗어나려는 합리적 이성의 저항이다. 갈릴레오부터 아인슈타인과 리처드 파인만, 현대의 수많은 아마추어 천문가들까지, 과학자들은 독단적인 철학이나 방법론의 규칙에 저항하며 반역의 선봉에 섰다.   


갈릴레이 초상화.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반역의 레토릭.


◇“과학은 철학적 방법이 아니라 예술의 한 형식”


이렇게 합리적 이성의 저항이 있어 과학은 발전했다. 한 방향만 강요하는 학문은 결코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전체에서 부분으로, 부분에서 전체로, 지식의 폭이 양방향으로 넓어질 때 발전하는 학문이 바로 과학이다. 지식이 한 방향으로만 성장한다고 독단하는 환원주의 철학은 과학에 어울리지 않는다. 실제로 독단적인 철학적 신념들은 과학의 테두리 안에 설 곳이 없다."


그러면서 프리먼 다이슨은 과학이 철학보다 예술과 닮았다고 말한다. 불완전성 정리에 대한 괴델의 증명에서도 철학적 주장은 보이지 않는다. 괴델의 증명은 마치 샤르트르 대성당처럼 아름다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첨탑과 같다. 아인슈타인 방정식 역시 예술작품에 가깝다. 저자는 그것이 독창성과 아름다움, 의외성에서 기인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렇게 결론짓는다.


"과학은 철학적 방법이 아니라 예술의 한 형식이다. 과학의 위대한 도약은 새로운 교리가 아니라 새로운 도구의 발명에서 시작된다. 과학을 환원주의 같은 하나의 철학적 관점 속에 억지로 끼워 맞추면 안 된다. 그것은 나그네의 몸이 침대에 맞지 않는다고 다리를 자른 프로크루스테스의 행동과 다를 바가 없다."


노벨상 시즌이 되면 국내 과학기술계는 한 차례 홍역을 치른다. 일본은 노벨 과학상이 벌써 몇 개인데 우리는 그토록 많은 예산을 쏟아 붓고도 아직 단 한 명의 노벨과학상 수상자도 배출하지 못하느냐는 지청구다. <코스모스>에 이어 <과학은 반역이다>를 읽으면 왜 우리나라에서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다양성이 가로 막힌 사회에서 위대한 과학적 성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by 책방아저씨 https://facebook.com/booksbooster


<과학은 반역이다> 책 표지.


매거진의 이전글 일하고 움직여라, 그리고 웃을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