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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방아저씨 Mar 01. 2016

종말 후, 당신이 읽어야 할 단 한 권의 책

인류 최후 생존자를 위한 리부팅 안내서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끝났다(고 가정하자). 어느 날 눈을 떠보니 SF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이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약간의 음식과 물은 있지만,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불은 켜지지 않고 자동차도 멈췄다. 인터넷도 휴대전화도 먹통이다. 거대한 적막과 폐허. 지구에 나만(<마션>에서 마크 와트니가 화성에서 그랬던 것처럼), 혹은 소수만 살아남았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최상의 방법을 떠올리기에 앞서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실제 경험은 없지만, 우리는 이미 많은 영화와 소설을 통해 종말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목격했다. 그것은 소행성과의 충돌일 수도 있고, 변종 바이러스의 습격일 수도 있다. 물론 외계인의 침공도 배제할 수 없다. 지구의 흔적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종말은 역시 핵전쟁이다. 원인이 무엇이든 종말의 순간은 참혹하다.   


분명한 것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사실. 어떻게 할 것인가?

  

문명이 파괴된 이후에는 물이나 기름이 가장 중요해진다. <사진=영화 ‘매드 맥스:분노의 도로’ 중에서>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다. 우리의 일상에서 우리가 직접 만들어서 쓰는 물건은 거의 찾기 어렵다. 우리는 간단해 보이는 연필조차 만들 수 없다. 집을 짓는 데 사용하는 벽돌 만드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다. 전기를 어떻게 끌어와야 하는지, 오염된 물을 정화해서 사용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도 잘 모른다. 사실 알 필요가 없었다.


60여 년 전인 1958년, 레너드 리드라는 사람이 이런 상황을 세부적으로 묘사했다. 그는 <나는 연필입니다>라는 논문을 통해 “연필이라는 단순한 도구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과 자원을 동시에 보유한 사람은 지상에 단 한 명도 없다”는 충격적인 결론을 도출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원료를 제공하는 곳과 생산 수단이 따로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전문화와 분업화가 우리의 생존 능력을 오히려 저하시킨 셈이다.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책은 이런 전제로 시작한다. “생존자들에게 닥칠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인간이 지금까지 축적한 지식이 집단적인 성질을 지녀 많은 사람에게 골고루 분산되어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 책에서 주목하는 것은 새로운 문명의 탄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리부팅이다.


인류 생존에 유용한 간단한 과학지식을 설명하고 있는 저자 루이스 다트넬. <사진=유투브>


안내자를 자처하고 나선 사람은 영국 우주국에서 우주생물학을 연구하는 루이스 다트넬이다. 그는 핵전쟁이나 천재지변으로 대재앙을 맞이한 인류를 가정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리했다. 문명이 붕괴된 이후에도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생존 지식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동안 인류의 문명을 지탱해온 지식(The Knowledge)을 접할 수 있다.


리부팅을 위한 매뉴얼의 전제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최대한 신속하게 편안한 삶의 방식과 기본적인 수준의 역량을 회복하려면 생존자들에게 ‘실질적인’ 지식이 쉽게 전달되어야 한다. 둘째, 생존자들이 과학적 연구 능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가장 ‘핵심적인’ 지식도 전달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대재앙 이후 문명이 남긴 쓰레기 더미에서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것들을 찾아내 재사용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을 살핀다.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서 시작해 의약품, 전력, 운송, 커뮤니케이션 등 생존과 문명 리부팅을 위해 필요한 핵심 지식과 과학기술을 압축적이고 실용적으로 설명한다.


실질적이면서도 핵심적인 지식. 어쩌면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과학기술이 추구해야 기본적인 전제와 방향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과학은 사실 확인이나 수식이 아니다. 과학은 세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확실하게 알아내기 위해서 적용해야 하는 방법론”이다.


변종 바이러스의 습격으로 인류가 멸망한 도시. <사진=영화 ‘나는 전설이다’ 중에서>


종말 직후의 모습부터 살펴보자. 대재앙을 맞아 인류 가운데 1만여 명 정도만 살아남았다. 다행히 문명의 물질적 기반시설도 완전히 파괴되지는 않았다(이 대목에서 저자가 종말의 모습을 너무 낙관적으로 묘사하지 않았나 하는 의심도 든다). 그때의 모습은 이렇다.


“종말 후 생존자들에게 가장 가슴 아픈 장면이라면, 정든 도시가 화염에 휩싸이고 매캐한 연기가 굵은 기둥처럼 치솟아 밤마다 하늘을 핏빛으로 물들이는 모습일 것이다. (…) 썰렁하게 변한 도시의 곳곳을 불길이 휩쓸며 이곳저곳 파괴하겠지만, 우리가 정성스레 건설한 건물을 완벽하게 파괴하는 것은 물이다.”


불과 물이 아니더라도 모든 인공적인 건물들은 허물어질 것이다. 대부분 다리도 무너져 물속에 잠긴다. 유령선들이 표류하다가 바람과 해류에 떠밀려 종종 해안가에 올라선다. 국제우주정거장(ISS)은 매달 약 2km씩 추락하다가 끝내는 가느다란 빛줄기를 토하며 대기권에서 사라질 것이다.  


뉴저지 캠던 공공도서관 2층 열람실. 건물이 무너지고 자연이 도시 공간을 차지하기 시작하면 이런 지식 도서관도 예외일 수 없다. <사진=책 본문 중에서>


종말 이후 지구 생존 매뉴얼 


결코 아름다운 장면은 아니지만, 이런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면 당신은 생존자임이 분명하다. 당신에게 가장 시급한 과제는 비바람을 피할 피신처를 구하는 일이다. 그다음으로는 깨끗한 음용수를 확보하는 일. 이어 식량과 연료, 비상약을 구하고 비축해야 한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과학적) 지식이 필요하다. 만약 대재앙에서 살아남은 당신이, 운 좋게도 이 책까지 손에 들고 있다면, 저자의 이런 설명에서 눈을 떼지 못할 것이다.


“플라스틱 양동이나 드럼통 혹은 깨끗한 쓰레기통처럼 길쭉한 용기에 기초적이지만 적절한 방법을 사용하면, 탁한 호숫물이나 강물에 섞인 유해한 입자들을 거의 완벽하게 걸러낼 수 있다. 바닥에 작은 구멍을 뚫고 그 위에 숯을 일정하게 깔아라. 숯 위에 고운 모래와 자갈을 차례로 깔아라. 이렇게 완성된 용기에 물을 부으면, 물이 자갈층과 모래층, 숯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유해한 입자가 걸러진다.”


음용수를 위해서는 이런 여과와 함께 살균도 필요하다. 5% 액상 표백제 몇 방울이면 한 시간 내에 1리터(ℓ)의 물을 살균할 수 있다. 부엌 싱크대 아래에서 한 병의 표백제를 찾아낸다면, 약 2,000ℓ의 물을 정수할 수 있다. 이 정도면 한 사람이 거의 2년 동안 섭취할 수 있는 양이다.


비상약도 뜻밖에 쉽게 구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초강력 접착제. 베트남 전쟁 기간에 미군들이 상처를 신속하게 봉합하는 데 이미 사용한 적이 있다. 종말적 재앙이 닥친 다음의 세상에서 상처를 봉합할 만한 바늘과 실을 구할 수 없다면, 생명을 위협하는 감염을 예방하기 위한 수단으로 초강력 접착제가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기계로 움직이는 운송 수단이 사라지면 이런 마차도 유용하게 사용될 것이다. <사진=픽사베이>


전기의 자급자족도 가능하다. 식량이나 연료와 달리 전기는 저장되지 않는다. 가장 간단한 해결책은 공사장에서 이동식 디젤 발전기를 찾아내는 것이다. 자동차에 장착된 교류 발전기도 전기 생산에 유용하다. 이처럼 전기를 생산하고 저장하는 장치들은 요즘에도 인류의 종말을 대비해 살아가는 이른바 ‘프레퍼(prepper)’들이 사용하고 있다. 1990년대 보스니아 전쟁 당시 세르비아군이 고라즈데를 포위하자 이 도시의 주민들은 모든 것을 자체적으로 해결했다. 다리에 연결한 기초적인 수력발전기로 전기를 생산했다. 세르비아군의 봉쇄는 무려 3년 동안 지속됐다.


심지어는 자동차를 움직일 수도 있다. 1962년 미국의 금수조치로 쿠바는 테크놀로지와 부품을 수입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모든 것을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했다. 당시 자급자족하던 기술로 지금도 쿠바의 거리에는 50년 넘은 자동차들이 달리고 있다.


리부팅 지침서이자 과학 입문서


책을 읽는 동안 여러 영화가 글 위로 포개졌다. 핵전쟁 이후의 모습은 <매드 맥스>를 통해 엿볼 수 있다. 변종 바이러스의 습격으로 인한 인류 멸망의 을씨년스러운 풍경은 <나는 전설이다>에서 생생하게 그려졌다. 외계인 침공에 따른 대재앙은 <우주 전쟁>에서 발견할 수 있다.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서의 생존기는 <마션>에서 적나라하게 목격했다.


책 <지식> 표지.


영화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피난처를 구축하고 음식과 물, 심지어 전기까지 자급자족한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절대 그럴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우리도 그들처럼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결말은 어쩌면 영화처럼 해피엔딩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고 포기하진 말자.


종말 이후의 모습과 생존을 위해 우리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설명하는 대목은 흥미진진하다. 그렇다고 이 책이 흥밋거리만 모아놓은 것은 아니다. 종말 이후 리부팅의 과정을 통해 정작 말하려고 하는 것은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첨단 테크놀로지를 이해하는 수단이다. 그 수단은 당연히 과학기술이다. 결국 이 책은 ‘인류 최후 생존자를 위한 리부팅 안내서’이자 흥미진진한 과학 입문서다.


화성에서 <마션>이 필요하다면, 지구에서는 이 책 <지식>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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