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급 인턴은 계속된다 / 영국은 이미 크리스마스/ 속 터지는 영국 택배
같이 살고 있는 플랫 메이트만 7명인 영국에서의 나의 첫 번째 집.
나는 이 집의 유일한 동양인으로 어느덧 이사를 온 지 3주가 넘어간다.
다행히 오랜만에 만나면 서로 낯을 가릴지언정 서로에게 (생김새나 외모에서 오는) 편견도 없고, 성격도 크게 모나지 않은 좋은 플랫 친구들을 만나서 이 낯선 땅과 낯선 집에서 살아가는데 그렇게 큰 불편이 없다는 것이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 물론 안 그렇게 생겨가지고 (굉장한) 낯가림쟁이에 영어로 말을 붙여야 하는 매일매일의 환경은 은근히 생활하는 것이 쉽지 않은 기분에 내몰고는 하지만 -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일이니 넘어가고 있다. 여기서 어디의 집을 살은들 안 그랬을까.
극 E가 외국에서 살기 좋은 성격이라는 것에 조금 동의가 된다. 나는 이 사회 안에서 가장 소수의 생김새를 가지고 있는 동양인이기에, 당연히 나에게 말을 먼저 거는 사람들은 드물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점은, 여기는 기본적으로 '너는 잘 지내?'라고 묻는 게 예의인 민족이니까 은근히 말을 시작하기가 어렵지는 않다는 점이라고 해야 할까. 근데 문제는 그렇게 다른 플랫 메이트들과 마주쳤을 때 이미 하루 종일 체력과 정신력이 깎인 나로서는 내가 그럴 여분의 에너지가 안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는 게 예외라면 예외.
아직 12월도 안되었거늘 벌써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가득하다
오늘은 아침에 일어났는데 하나둘씩 나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비로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즉, 아주 오랜만에 나 혼자 있는(듯한) 기분이 드는 하루. 하지만 오늘은 택배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꼼짝없이 집 안에 있는 중이다.
방음이 취약한 영국 집의 특성상 소리가 여기저기 잘 들리기 때문에 소리에 굉장히 예민한 나는 초반에는 행동하기가 조심스러워서 요리조차 잘 하지 못했다. 말도 통하지 완벽하게는 통하기 어려운 이곳에서 산다는 건, 어쩌면 오로지 혼자일 때 찾아오는 휴식이라는 것이 종종 없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해가 지지 않는 백야 같기도 하고, 때로는 멈추는 방법을 모르는 전차 같기도 하다. 일단은 움직이게 되고, 우선은 달리고 본다. 어쩌면 그것 역시도 당연하다. 내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새롭게 맞닥뜨린 이 사회 안에서는 더 많기 때문에. 쉽게 부딪히게 되는 당황스러운 낯선 상황 안에서 안정을 찾기가 쉽지는 않다.
택배를 기다리다가 이렇게 집에 혼자 있는 경우는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일단은 죽어가는 야채를 소분하여 냉동고에 넣어두었다. 가끔 야채를 썰다 보면 스트레스가 풀리는 듯한 기분이 들고는 하는데, 오늘이 딱 적격인 날. 양파를 열심히 썰면서 또 열심히 울었다. 아주 강한 놈을 만난 탓이다. 이렇게 얼려두면 또 편하게 잘 쓸 수 있겠지. 손톱 밑에 양파 냄새가 어느새 물들었다. 왼쪽 중지 손톱은 또 언제 깨졌을까.
기회가 될 때마다 영상도 찍어서 기록을 남기고 싶었는데, 매일매일을 이것에서 적응하여 살아내고 있는 나는 아직은 거기까지 도달할 힘이 없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일단 찍는 것을 잃어버리기가 쉽다는 게 문제. 그래도 조금만 안정이 되면 다시 시작해 봐야지.
최근에 무급 인턴 일을 시작하면서 일주일에 주 2-3일 정도를 출근하고 있다. 작고 소중한 기회이므로 일하는 기분이 들기는 하지만, 돈이 들어오는 것은 아니니 조금 불안전한 느낌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 외의 다른 요일에는 약속을 가거나 이렇게는 살 수 있다며 런던 여행을 떠나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이력서를 쓰고 지원서를 제출하는 것만으로도 기가 아주 쪽쪽 빠져서 최대한 집에 붙어있으려고 하는 요즘. 일다는 그게 굉장히 돈을 아끼는 일이기도 하다. 어디 나가기만 하면 외식비로만 5만 원이 우습다.
사실 인턴 일은 내가 그동안 하고 있었던 프리랜서 무대의상 디자이너의 일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나름 재미가 있다.
라텍스 원단을 처음으로 다뤄봐서 이번 한 달은 그것을 적응하는데 조금 애를 먹었다. 게다가 인턴이라면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일들인데 여기서 하려니 처음 해봐서 당황스러운 것들을 종종 만날 때마다, 예방주사 같은 거라고 생각하자며 나를 다독이는 요즘. 특히 진짜 말도 안 되는 것들이 아주 당황스럽고는 하는데, 처음으로 붙여보는 우편 같은 것들이다. 당황스러울수록 영어는 더 안 나온다, 정말! 가끔은 내가 영어로 잘 말하고 있는 건가도 헷갈리는 요즘. 그래도 이러나저러나 매일 같이, 아주 조금이라도 한다. 입이 간질간질, 이가 나오려고 하는 신생아 같다. 나도 말하고 싶어!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다가, 이제야 약간 정신이 들었는지 처음으로 감정적인 불편함을 느낀 어제. 약간 외노자의 서러움 같은 느낌이었다.
회사 일이니 어찌 된 영문인지 자세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약간 뭔가를 홍보해야 하는 일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아주 은근하게 쫓겨나게 된 경험을 하게 된 탓이다. 영국 놈들은 정중하게 말하는 척하는데 자세히 생각해 보면 아주 완곡한 "꺼짐"이라는 걸 깨닫게 돼서 은근히 서러웠던 퇴근길.
위에 사진은 2층 버스에서 찍은 것이다. 사실 처음에 영국에 왔을 때는 버스에서 뭔가를 먹는 것이 위생상 진짜 별로라고 생각했었는데 (다들 자주 흘리고는 치우지도 않는다), 이제는 조금 사랑하게 된 기분이. 조금 서러운 마음을 안고 사무실로 돌아가면서 무엇인가를 먹을 수 있는 퇴근길이라니. 꽤나 낭만적이 아닌가.
복귀하는 길에 출출했고, 오늘도 한 2만 보쯤 걸었고, 그냥 쉽게 기분이 좋아지고 싶은 마음으로 크림빵을 먹었다.
그런, 일하면서 느끼는 감정의 생채기 같은 것들에 조금은 단련이 된 서른의 나는 고정도 서러움으로는 끄덕은 없었지만, 저 피스타치오 크루아상을 파삭파삭 먹으면서 처음으로 이곳이 사람 사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돈 버는 게 이렇게 어려웠지. 저렇게 턱수염이 수북한 사람들도, 피부색이 어두워 저녁에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도, 독특한 전통의상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도. 그저 오늘의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것. 삶의 무게는 문화도, 인종도, 성별도, 나이조차도 가리지 않는다. 모두들 어려운 삶을 최선을 다해서 살아간다. 그래도 그 안에서 마음 놓을 구석들이 보석 상자처럼 모아놓으면서. 나 역시도 조금은, 그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한국이랑 다를 바는 뭘까. 지금의 나는 알 길이 없으니 우선은 찾아보는 수밖에.
어디론가 취직을 하게 된다면 영국에서도 이게 삶이 될 터였다.
아 오늘도 돈 버는 거 쉽지 않았다, 하면서.
어디에 있든 그건 참 다를 것이 없구나.
그래도 영국에서 만나게 된 좋은 사람들과 가끔씩 보내는 시간들에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 들고는 하다. 물론 한국말이라고 할지언정 나는 늘 내 마음을 설명할 수 있는 정확한 단어를 찾는 것이 어려웠지만, 그래도 영어보다는 숨이 트인다. 걱정 없고, 속 시원한 나의 모국어.
그나저나 이놈의 택배는 도대체 언제 오는가 싶다. 이럴 때가 가장 한국이 그리운 순간 중 하나가 아닐까. 도무지 택배 기사님이 어디를 지나고 계신지 알 수 없는 영국 택배 시스템. 문을 세 번은 두드려 주시고, 5분만 더 기다려주셨으면 좋겠다. 나는 주택 3층이라는 꽤 고층에 산단 말이오. 문을 두드리면 헐레벌떡 뛰어나가야 한다.
한국에 있던, 영국에 있던
오늘의 삶을 열심히 살아 내고 있는 우리 모두,
오늘도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