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전화인터뷰를 봤다/ 그럼에도 한국으로 돌아가는 선택지가 보이는 요즘
작고도 큰, 한 방에 200은 다달이 들어가야 하는 런던의 스위트 리틀 홈은 휴식기를 맞았다.
일곱인지 여덟인지 하는 플랫 메이트 들 중 몇몇이 크리스마스 휴가를 위해 각자 자기의 고향이나 집으로 돌아가고 나와 다른 두 친구뿐만이 남은 것.
이성적인 머릿속 셈에서는 당연히 "인원이 줄었으니 비교적 조용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밑에서 간간이 올라오는 담배 냄새와 밤새 음악을 틀어 놓는 핫걸 덕분에 아주 조금, 고통스러운 저녁을 보내고 있는 요즘이다. 독자분 중에서 눈치채신 분들도 계실 것이다. 나는 사실 굉장히 할머니 같은 성격이라는걸.
솔직히 소음 공해인 핫 걸 친구까지는 "밤이지만 신날 수 있지" 하며 이해하겠는데, 밑에 집 청년의 담배 냄새는 눈이 시려서 정말 답지 않은 분노가 슬금슬금 치민다. 나는 평화주의자, 이렇게 분노가 치미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다. 그래도 문을 두드리기보다는 참을 인자로 우선은 버텨내고 있는 중이다. 여기는 담배에 관해서는 굉장히 관대한 나라니까.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공공장소나 건물이나 주택 안에서의 담배에 대한 강력한 규제는 유럽권에서는 찾아보기가 조금 어렵지 않나 싶다. 길빵조차 왜 문제가 되냐,라는 공공연한 사회적인 허용이 있는 느낌이고 또 성별이나 남녀노를 (소는 제외라고 하면) 아울러서 굉장히 피는 사람도 많다. 길에서도, 심지어 오붓하게 사무실을 같이 쓰는 사장님도, 유모차를 끌고 가는 어머니마저도 담배를 피우는 것이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왜 이렇게 다들 열심히 담배를 피우는 걸까. 심지어 내가 사는 플랫은 비흡연자들의 건물인데.
개인의 기호는 존중받아야 하고 담배를 피우는 것은 개인의 선호니 전혀 문제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렇게 공공연하게 길빵을 하거나, 가뜩이나 이 방음조차 잘되지 않는, 겉모습만 멀쩡한 낡은 건물에서의 실내 흡연은 정말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여기에 오니 예의라는 명사도 어쩌면 각자 다른 문화와 교육의 산물이 아닌가 싶은 요즘. 문 안 잡아준다고 한국 문화를 뭐라 할 게 아니다. 우린 모두 사회마다 저마다의 약속이 존재한다. 그것이 우리의 약속이 아니었을 뿐이다.
좋은 소식이 있다면 어제는 처음으로 전화 인터뷰를 봤다.
도합 총 103개의 이력서를 낸 후의 쾌거였다. 내가 지금까지 받은 유의미한 답신은 이제 딱 3개. 하나는 무급 인턴 (현재 직장), 다른 하나는 이력서가 마음에 드니 풀에 넣어두고 싶다는 메일, 그리고 인터뷰를 보고 싶다는 지금 이 기회.
혹시 모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전화 인터뷰 후기나 질문을 간략하게 적어보자면 아래와 같다.
1. 간단하게 스몰 톡
-하루 잘 지내는지
-크리스마스 계획 있는지
2. 회사나 업무에 대한 설명 듣기
3. 포트폴리오 칭찬
4. 입사하면 불편할 점
- 회사가 멀다고 말해주심
- 주 5일 출근인데 괜찮은지
5. 마무리로 개인적인 질문도 나눴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얼굴이 너무나도 빨개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엄청 떨었구나. 그래도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영화로 통화를 주고받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다. 참 다행이다, 아등바등 그래도 열심히 공부해왔던 것이 쓰이는 순간이 와서.
인터뷰를 마치고 2차 팀장님을 대동한 팀즈 인터뷰 일정도 다 잡고 나니 그냥 큰 짐을 하나 덜어 기쁜 마음뿐이었는데, 인터뷰가 지나고 전화로 주고받았던 업무를 다시 머릿속으로 복기해 보기 시작하니 마음이 조금 복잡해졌다.
사실 나는 "이전과는 다른 업무를 해보고 싶다"라는 것이 영국에 온 이유 중에 하나였는데, 정말 정확하게 똑같은 업무의 기회를 이번에도 또 만났다. 물론 막상 이메일을 받고 기회가 주어졌을 때는 무척이나 좋은 선택지처럼 보이고 또 모든 것을 감내하여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천천히 생각해 보니 내가 그곳에 감사하게도 취직하게 된다면 한국에서 일했던 하루들과 영국에서 일하는 지금이 과연 얼마나 다른 것일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외국 생활에서 나오는 도파민이 적은 타입인지도. 공부와 작업이 빠졌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영국이라는 나라가 무미건조하게 느껴질지 몰라서 스스로도 굉장히 당황스럽다.
최근 과거와 현재, 또 미래의 시간들을 복기해 보면서 19년도에 내가 영국 생활이 나름 즐겁게 느껴졌던 이유를 갑작스럽게 깨달은 순간이 있었다.
사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때의 영국에서의 기억들이 나름 힘들었으나 동시에 꽤나 아주 좋은 기억으로 남았고, 그렇기에 어쩌면 내가 원하지 않은 순간에 돌아오게 되었던 것에 아쉬움을 느껴 언젠가 한번은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결국 원더랜드나 이상향처럼 마음속 한편에 저장해 둔, 먼지가 소복이 묻은 이 영국이라는 장소에 먼 시간을 돌아 (큰돈을 주고) 자리를 잡았는데,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아주 오랜만에 올린 유튜브 작업 영상들을 편집하면서 깨달았다.
내가 행복했던 이유는,
나의 최고의 도파민은,
내가 이 영국을 사랑했던 이유는 바로
'공부를 하며 작업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
편집을 하면서 내 지난 작업들을 다시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행복해하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최고의 도파민은 작업이라는 것을 동시에 깨달은 순간이었다. 왜 하라는 연애는 안 하고 맨날 일과 사랑에 빠져 있는지 모르겠다 정말. 그리고 어쩌면, (여기까지 내 모든 소박한 짐들을 바리바리 들고 온 이후라 인정하는 것에 두 달이 좀 넘게 걸렸지만) 이 영국이라는 나라는 나에게 작업을 빼고서는 —
할머니같이 조용한 장소와 친한 몇몇의 깊은 인연을 만나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것을 좀 더 선호하는,
작업 빼고는 자잘하게 돈 쓰는 걸 그렇게 좋아하지 않고, 작업 얘기 빼고는 오늘 처음 만난 낯선 사람과 말하는 것을 (티는 안 나지만) 굉장히 부끄러워하는 나에게는 행복하기가 쉽지가 않다는 것을.
나에게는 그리 행복한 선택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이제서야 깨달았다.
게다가 고백하건대 나는 부끄러움도 많은데 심지어 영어로 대화해야 한다. 즉, 부끄러움이 두 배.
새로운 자극과 새로운 사람들은 언제나 나에게 에너지를 주고, 또 모두 어디서 어떻게 마주치던지 이 넓은 세상에서 만난 것만으로도 아주 소중한 인연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것이 나에게 영국이라는 단어 자체로의 행복이 되기 위해서는 어쩌면 작업이나 예술, 영감이라는 공통분모에 한 해 존재한다는 걸 알았다. 낯선 장소라는 명사 하나만으로는 채워지지 못하는 행복 같은. 아, 나라는 사람을 또 알게 되었구나.
이런저런 아직은 단편적인 이유만으로 슬그머니 초기의 결론을 내볼 뿐이지만 어쩌면, 내가 영국에서 살며 행복할 구석을 찾는 것에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거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던 이번 주. 그리고 사실 이것은 어쩌면 일종에 직감 같은 마음이었다.
분명 시간이 더 지나면 나 역시도 언젠가는 나만이 정의 내릴 정붙일만한 구석 또한 찾을 수 있겠지만, 그 과정은 내가 지금보다 돈을 좀 더 넉넉하게 쓰거나 시간이 충분히 들어 익히는 묵은지처럼 마음을 깊게 나눌 사람이 필요할 테니 한동안은 생각만큼 쉽지는 않겠지. 그 모든 것들도 분명 그 나름의 가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무엇인가 비어있는 마음의 공간의 존재를 지울 수가 없었다.
이것은 단지 외로움에서 오는 마음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