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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홀 D+76-81] 나 다시 간다, 한국

- 이번에는 다른 무엇 때문이 아닌, 내가 선택한 "나의 돌아감"으로

by 소마



속이 안 좋은 저녁이다.


위장병이 도진 저녁. 오늘의 내 배 상태는 어째선지 예전 19년도의 나를 떠올리게 했다. 그날도 이런 비슷한 느낌이 들었는데.


스트레스성 폭식이 잠깐 있었던 시기였다. 그날도 아침 점심 저녁을 한 번에 모두 삼켜 넣은 채로 방안에 있다가 아픈 배를 움켜잡으며 책상에 앉아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도망치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잠깐 자고, 잠깐 먹고, 잠깐 쉬다가 공부하고 작업하고.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으나 그 당시에는 나는 어렸고, 영어는 아주 못했으며, 동시에 또 요령이 없었다. 무엇을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는지도 빨리할 수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그냥 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영국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떻게든 잘 해내고 싶었을 뿐.


그러나 나는 이번에는 누군가 때문이 아니라, 코로나 때문도 아니라, 그저 내 스스로 영국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렇게 글을 쓰면서도 저 문장 자체가 이해가 안 되기는 하지만 (하하). 나름 4-5년의 목표였고, 꿈이었는데 막상 와보니까 깨달았다니. 나의 행복은 이곳에 없다는 것을.


결정을 내린 까닭에 대해 말하자면 끝도 없이 길어질 것 같다. 그러기에 간단하게 요약을 해본다면, 나는 여기서 지내는 것에 가슴 뛰지 않았고 그렇게 행복하지 않았다. 결국 2년 후에는 돌아올 것 같다는 것을 깨달았고 더 끌지 않고 바로 오기로 마음을 먹은 셈이다. 개인적으로 나에게는 여기서 살며 경험하는 모든 색다른 경험들이 "작업을 할 수 없다면", "가족처럼 마음을 터놓을 사람이 없다면", 그렇게 큰 기쁨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19년도에 좋았던 건 공부를 했기 때문이었고, 내가 사랑하는 작업을 늘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걸. 나를 행복하게 하기 위한 수식어가 그리 많지 않은 한 인간으로서, 사회인으로서 마주한 영국은 나에게 있어 그리 좋은 선택지가 아니라는 것을 결국 인정했다. 너무 많은 시간과 돈과 또 내 마음을 기꺼이 써서 이곳에 다시 돌아왔기에,


받아들이기 까지가 조금 오래 걸렸지만.


스튜디오에서 크리스마스 휴가를 받고 20대에 이렇게 긴 시간 동안 혼자 지낼 수 있던 것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생각해 봤다. 나는 어떨 때 행복한 사람인지. 나는 어떤 앞으로의 30대를 살고 싶은지. 생각해 보니 나는 굉장히 재미없게 사는 사람이었다. 그저 가족, 친구, 작업만 하면 행복한. 내가 여유가 있고, 마음이 열려 있어 누군가를 만날 수 있고, 작업도 할 수 있다면 여기는 나에게 있어 큰 기회가 되겠지만, 플랫 메이트에게 말하나 붙일 여유가 없는 지금 내 마음의 형편으로는 그렇지 못할 것임이 자명했다. 여기의 물가와, 나의 월급과, 나의 작업은 모두 공존할 수 없다. 살아야 했기에 나는 아마 이곳에서 먹고살기 급급할 것이다. 매일 같이 혼자서, 일만 하면서.


그것 역시 가치 있고 나를 키워 낼 수 있는 큰 경험이겠지만, 나는 그런 내 미래를 그려보면서 그런 미래 안에서는 나는 행복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내 행복이 모두 그곳에서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것은 내가 바랬던나의 30대가 아니었다.





마음을 먹고 나니 결정을 내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가장 먼저 한 일은 비행기표를 끊은 일. 이번에도 돌아오는 티켓은 없다.


그래도 이제 더는 두렵지 않았다. 마음속 깊숙한 곳에 나에게 계속 물었다. 진짜 후회하지 않을 것 같냐고.

정답이 어디에 있겠어. 그저 지금의 나는 "그렇다"라고 말했다.



그러니 간다, 다시

나의 나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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