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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마 Feb 19. 2024

내가 있는 곳이 그냥, 나 이기를

퇴사여행 5일 차에 기록, 3코스 해안길을 걸으며


“엄마, 생각 많이 하고 올게.”


어떻게 돈 벌어먹고 살 건지도!


 엄마에게 그렇게 말하고 왔는데. 지난 오일의 퇴사여행을 돌이켜보니 내가 정말 '생각을 잘' 하며 하루들을 지나왔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상하지. 내일 집에 간다고 생각하니 아직 결론 내리지 못한 생각들이, 정의 내리지 못한 말들이 너무나 많은 것 같다. 막상 첫날, 둘째 날에는 이미 이런 저러한 일들로 너무 지쳐서 이제 그만 돌아가고 싶었는데. 끝이라고 생각하면 어째선지 그 단어만으로도 아쉬움이 남는다.


 오늘은 원 없이 바다를 보고 싶은 날.


 하루 만에 보는 태양에 기분이 아주 좋았다. 아침에는 흐렸지만 열 시에 가까워지니 언제 그랬냐는 듯 하늘은 새파랗게 변한다. 섬은 참 신기하구나,라고 생각했다. 아침에는 자주 흐리다가도 정오에 가까워지면 순식간에 새파란 하늘을 드러내고는 했다. 후천적 노력파 J인 나는 본성이 그러하듯 별 계획 없이 올레책자를 보고 있다가 3코스를 선택했다. 바로 해안길이 무척이나 아름답다는 설명한 줄 때문에.


 여행길 내내 함께 했던 (사실은 조금 싫어하는, 그러나 정말 제주도에 너무 많았던) 셀러리 냄새와, 햇빛에 빛나는 윤슬, 부서질 듯 넘실대는 파도, 일상을 살아가는 주민들의 모습들. 3코스 해안길의 평화로운 모습들을 보고 있자니 문득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걸어온 길과,

 이제 앞으로 내가 걸어 나아가야 할 길.


 나는 어디로 가고 싶은 걸까.

 일단은 내 눈앞에 있는 이 올레길 3코스를 완주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아 보였다. 나는 멍하니 앞을 보다 살짝 한숨을 내쉰 뒤 뒤를 돌아봤다. 걸어 다니는 사람 하나 없는 이 외진 동네길을 어느새 참 많이도 걸어왔구나. 시선을 끌어당겨 저 해안선 끝에 다 달으니 그제야 겨우 마을이 보였다. 내가 가야 하는 작은 포구. 어느새 뻐근해진 종아리를 애써 들어 올리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지도상에는 아주 가까워 보였는데. 길이 이렇게나 멀었던가.


 이제야 생각해 보니 나는 내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잊지 않으려 늘 스스로에게 되새겼지만, 지난 오 년의 시간들을 모두 내려놓고 다시 시작점으로 되돌아오는 것이 정말로 내가 원했던 것이었나라는 물음조차 답을 쉽게 내릴 수 없었다. 지난 모든 일들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고, 이 한 줄에 문장보다는 제법 긴 시간처럼 느껴진 탓이었다. 디즈니의 라푼젤이 기다란 머리카락을 성안에서 흩뿌리며 내 삶이 언제 시작되는지 궁금해하는 것처럼. 나는 이제 서른이었지만 아주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그런 기분을 느끼곤 했다.


 어쩌면 애쓴 탓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당연했다. 진작에 내 발에 맞지 않는 신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으면서, 나는 그냥 내 눈앞에 있는 안락함과 현실 앞에 눈을 감은 것인지도 몰랐다. 이제 나는 먹고살아야 한다는 것에 무게를 아는 나이가 된 거다. 그러기에 안 맞는 옷이라도 구겨 넣고 싶었다. 막상 무엇인가 다른 길을 가려니 무서웠다. 사실은 ‘어른'이라고 불리기에는 아직도 미숙하고, 미성숙하면서. 졸업을 하고, 직장을 가지고. 어느새부턴가 나는 손해보지 않았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어른처럼 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제는 어쩌면 미숙할지언정 그래 보여야 하는 나이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버릇처럼 애썼다. 바보 같게도 나는, 내가 두려운 만큼 늘 최선을 다해 애를 쓰곤 했다.


 한 참을 그저 걷다 보니 어느새 신천 목장길에 다 달았다. 평일이었고, 오전이었기에 정신 차려보니 길에는 아무도 없이 오로지 나 혼자 뿐이었다. 나는 휘몰아치는 바람 안에서 에어팟으로 듣고 있던 노래를 스피커로 바꿔 틀었다. 사실 여행의 기쁨이나 낭만 보다도 노동요처럼 듣고 있던 노래에 귀가 아팠던 탓이다. 그래도 이것도 어쩌면, 아무도 없는 곳에 자유였다. 그리고 들리는 한때 소리였던 것, 비로소 모여서 음악이 된 것.


'화려해 보이는 거리에 빛나는 추억들을 놓고

바람이 부르는 곳으로 갔지 난

다시 돌아온 이 거리엔 남은 건 다 추억뿐이고

빛나는 불빛들 사이로 걷네 난 걷네 난

나는 누군가

어디에서 왔는가

빛나는 곳인가

바람이 부는 곳인가

나는 어디로

흘러가야 하는가

내가 있는 곳이

그냥 나이기를'


[체크인 - 선우정아]



 나는 언제부터 불안해진 걸까.


 몇 년 전 제주도에서의 나는 분명 자유로웠다. 그때 나는 맛집도 명소도, 핸드폰을 열어 찾아본 적이 없었다. 그저 올레길의 루트 안에서 지도 속 나만의 별을 만들어 걷고, 또 걸었을 뿐이다. 아무것도 없는 여행길이었으나 나는 부족한 줄 몰랐다. 그저 풍경과 다름없이, 새로 만나는 모든 것들에게 인사하며 반갑게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조금 달랐다. 현명한 결정과 손해 사이에서 나는 늘 손이 바빴다. 핸드폰만 붙잡고 내내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런 성격도 아니면서, 나는 나의 일정을 다른 사람들의 후기와 비교하며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도록, 손해를 최소화하고 이익을 더 얻기 위해 애썼다. 그게 맞는 길인 줄 알았다. ‘어느 쪽이 더 손해일까’ — 그 문장에 메여서 저울로 재다가 나답지 않게 여행 왔다는 이 낯선 곳에 즐거움을 잠깐 잃어버린 것이다.


 누군가의 평가와 기대에 맞춰 사느라 잠시 나를 잊었다.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던 것은 언제나 나 자신이었다. 나는 나 자신으로서 행복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이 추천해 주는 맛집에 가는 것이 아니라, 나는 나에게 편안함과 만족을 주는 여정 안에서 행복을 느끼곤 했다. 바로 어제의 작은 섬 같았던 그 카페에서 처럼. 나는 왜 그동안 잊고 있었을까. 내가 불안한 까닭 중에 하나는 어쩌면 남과 나를 비교해서 일지도 모른다는 것. 그런 적이 없었는데 어른이 되고, 직장을 가지면서 못된 버릇이 생겼다. 그게 정답인 줄 알았다. 한 번도 정답은 찾아본 적도 없으면서.


 가만히 듣고 있는 이 노랫소리에 내가 찾고 있는 답이 있다는 생각은 어쩌면 일종의 직감 같은 것이었다.


 그림 같은 풍경을 등에 지고 걸어왔지만 어째서인지 내 눈앞에 점점 다가오는 저 마을이 아직도 너무나 멀게만 느껴졌다. 그래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가다 보면, 도대체 언제 도착하는지 몰라 발을 굴렀던, 뛰고 또 뛰어도 닿을 것 같지 않았던 그곳이 언젠가는 닿는다는 것을. 포기하지만 않으면 반드시 우리는 갈 수 있다는 것을.


 눈이 부실 만큼 새파란 바다와 하늘이 넘실 거렸다. 황금색 들판이 춤을 추고, 빛나는 윤슬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제주도의 오후. 나는 걷고 또 걸었지만, 이제야 비로소 더는 힘들지 않았다.


 어쩌면 이 여행에 주제곡이 될 노래를 띄어보내며—


 [체크인 - 선우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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