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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마 May 29. 2024

내가 도피하는 걸까 봐

지난 4월, 5월의 깨달음 — 내가 소화한 나의 영국 워홀에 대하여

 


 내 생각보다 5년이란 시간은 꿈이 희미해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불안해하고 싶지 않고 이왕 결심한 거 당차게 나아가고 싶은데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었던 지난 4월과 5월. 해야 할게 투성이라 초조하고 또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 없어 답답했던 봄이었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날씨가 참 이상했다. 커다란 한아름의 꽃다발 같던 철쭉이 더운 날씨 때문인지 여느 해와 다르게 일찍 고개를 숙였다. 날씨가 꼭 봄이 아니라 초여름 같구나. 시간이 어쩐 일인지 평소보다 빠르게 흐르는 것 같았던, 평범하고 속 시끄러운 나날들의 연속.


 그 당시의 나의 하루는 제법 겁이 났던 재취업 시도에 성공하면서 또다시 아주 바빠진 상태였다. 돌이켜보니 10개월여 만의 회사구나. (그것이 몇 개월의 단기 계약직이라고 해도) 내심 조금은 새로운 시작이 떨렸고, 또 놀라우리만큼 모든 일상들이 빠르게 적응되었다. 일하는 하루하루는 스스로도 낯설을 만큼 이미 아주 익숙한 일상의 한 부분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 익숙한 모든 하루들이 너무나도 지루하고, 사실 또 동시에 무척이나 두렵고는 했다.


 — 다른 나라에서 일을 해본 다는 것.


 꿈은 꾸는 자의 마음이니 쉽게 꾸었지만 그것을 막상 현실로 만들어내는 건 왜 이렇게 늘 어려운지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인생에 참 쉬운 일은 하나 없다. 무엇인가를 빠르고 쉽게 가고자 하는 방법이라고 하는 것들은 하나 같이 다 인간의 욕심이었다. (그러니 절떄 누가 뭔가를 생각보다 아주 쉽게 해 준다고 하는 것에 넘어가지 말자. 그건 대체적으로 다 사기이거나 불리한 계약임이 분명하니까)


 아무튼,


 뭔가를 해야 할 거는 같긴 한데 일단 욕심껏 덜컥 시작해 버린 나 자신은 아직도 너무나 부족해 보이고, 마음은 초조하지만 어디서부터 그걸 시작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는 없는 우중충하고 아름다운 이번 봄.


 그래, 솔직해지자면 나는 덜컥 겁부터 난 거였다. 지난 5년 동안 기껏 열심히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말을 손수 체감하며 대학원을) 졸업했고, 또 취준 했고, 이제는 열심히 회사를 다니고 있던 시간들을 다 버린 채 빽도로 돌아와 다시 처음의 시작점에 온 기분이 들어 덜컥 겁을 먹었다. 내 기분은 마치 개근상이 목표였는데 졸업을 앞두고 지각해 버린 고등학생 같았고, 다른 사람들이 모두 가야 하는 '올바른 길'에 서있지 않는 사람 같았다. (평생 꼭 걸어가야만 하는 올바른 길은 생각도 안 해봤으면서 아무 생각을 하지 않고 나아가도 되는 순간에 꼭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정말) 


 큰일을 앞둘 때면 항상 브레스를 뿜는 용 앞에선 신입 전사 같은 기분이 들고는 했다. 그래도 지금은 쇠칼을 들고 있는 게 분명하지 않을까 (이것은 의문문이다), 왜냐면 한국에서 일도 (조금은) 해봤고 영국도 (조금은) 살아봤다. 아주 조금씩 맛을 본 배스킨라빈스의 한입 같은 것이고, 커다란 바이러스 앞에서 소소히 백신만 맞은 상태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렇게 커다란 대책은 별로 없다는 말이었다.


 나는 사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에서부터 지난 두 달 동안 마치 꿈속에 서있는 사람처럼 희미한 현실감속에 있었다. 어딘가에 몰입하기 시작하면 순간순간 현실감을 잃어버리는 나는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오랜만에 회사에서 일을 했고, 또 사이드 프로젝트를 했고. 그러다 보니 완전히 내가 영국을 가는 것이라는 것도 잊어버릴 것 같을 때쯤 발밑을 내려다봤다. 나는 어디쯤에 있고, 또 어디로 가고 싶은 걸까.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돌아가보기로 했다. 나는 왜 영국에 다시 가고 싶었을까. 무엇이 그리 아쉬워서 사실은 울면서 걸어갔던 길들을 돌아 나와 다시 꼬였던 실타래의 시작점으로 왔을까.


 얼핏 찾아본 바로는 모두들 워홀을 시작하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는 듯보였다. 어떤 사람들은 해외생활이라는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 유럽여행을 자유롭게 다녀오는 게 목표인 사람도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오피스 잡을 잡고 비자를 지원받아 영국에서 아예 터를 잡고 살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크게 두 그룹처럼 보였는데 사실 나는 그중 어느 그룹도 딱 정확하고도 깔끔하게 내가 원하는 답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소소하지만 학교를 다니며 영국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다. 그때 느꼈던 것은 순수하게 해외 생활이 행복할 수 있는 가능성은 대체적으로 여행뿐이구나,라고 생각했었다. 막상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니 영국이고 뭐고 한국과 똑같다는 것을 꺠달았기 때문이다. 공부는 당연하리만치 늘 힘이 들고, 게다가 언어가 다르니 적응하는 것에도 꽤나 큰 공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인종차별과 불안정한 치안에서 오는 신변의 위협 같은 것들. 힘들었던 어느 날 그리운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고 싶어도 바쁜 일상 와중에 서로를 챙기기는 쉽지 않았다. 게다가 시차가 달라 여의치 않을 때가 더 많다. 심지어 많은 돈을 들여 힘겹게 왔으니 실망시키지 않고 잘 해내야 한다는 그 은은하고도 확실한 압박감. 가난한 유학생의 신분으로는 외식 한번 제대로 하기도 쉽지 않았다. 어딘가 아프거나 사소한 문젯거리에도 덜컥 겁부터 나 멘털이 흔들거리기 일 수다.


 환경의 다름과 낯섦에서 오는 설렘은 잠시였다. 그 두근거림이 살아가고 버틸 수 있는 에너지를 주고는 했지만 불안감과 압박감을 다 덮을 만큼은 아니었다. 내가 연애를 했거나 한국에 있는 가족과 같이 갔다면 정의가 또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느꼈던 감정은 한국에서의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가끔은 더 나쁠 때도 있었다. 혼자 살며 또 공부하며 그 모든 것들을 감당해야 했기에.


  나는 멍하니 책상에 앉아있다 볼펜과 수첩을 꺼내어 하나둘 씩 적어 내려갔다. 내가 얻고 싶은 것들. 내가 찾고 싶은 것들. 끊어지고 꼬였던 그 길의 끝점에서 내가 이어나가고 싶은 것들.



첫 번째. 나는 일할 수 있을 만큼의 영어실력을 쌓고 싶다.
두 번째. 나는 영국 패션 회사에서 패션 디자이너로 일하는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다.
세 번째.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나 사람들을 만나서 진실되게 소통하고, 또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사이드 프로젝트를 같이 해보고 싶다. 
(3개월에 1번, 1년에 4번을 목표로)
네 번째. 가본 나라라고는 일본과 영국뿐. 영국은 공부하러 간 거라 맨날 골방에 박혀 작업만 하다가 런던 미술관/원단집 밖에 못 갔다.
- 이번에는 런던 명소 제대로 가보기
- 영국 내 다른 곳도 가보기
- 돈을 모아서 유럽에 다른 나라에도 가보기 (3개월에 1번, 1년에 4번을 목표로)
다섯 번째. 비자 2년이 만료가 되어 연장이 되지 않아 한국에 돌아오게 되어도 두려워하지 말자.
 나는 한국에서도 똑같은 선택을 내릴 것이므로. 일하면서 꾸준히 사이드 프로젝트를 할 거다.


  — 막상 저렇게 적어놓으니 그저 속이 다 시원했다.


 그리고 동시에 다행이었다. 나는 사실 이번 워홀을 결심하면서 가장 두려웠던 부분이 내가 도망치는 건 아닐까, 였다. 물론 우린 모두 도망쳐도 괜찮다. 그게 나와 내 마음이 사는 길일 때가 종종 찾아오고는 하니까. 그렇지만 내가 단순히 이 상황이 불만족스럽다는 이유만으로 그저 겉으로 좋아 보이는 무엇인가를 쫓는 것일까 봐, 나는 워홀을 저질러 버린 이후로도 내내 두려웠다. 왜냐면 나는 알고 있지 않은가. 공부하기 시작하니 한국과 영국이 똑같아진 것처럼, 일하기 시작하면 영국도 한국도 다르지 않을 터였다. 삶의 무게와 여행의 무게는 같을 수 없으니까.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영국과 한국에서가 그렇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나에게는 오히려 큰 위안을 주었다. 나의 한 70프로 부족한 영어 실력도 마저 (아마 매일 이불을 차고 울면서) 채워 오고, 이번에는 골방에 틀어박혀 공부만 하거나 일만 하지 말고 많은 사람들과 만나 다양한 프로젝트를 해보자. 내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늘 원했던 것처럼.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만나서 진실되게 소통하고, 또 너무나도 멋진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얼마나 가슴이 뛰는 일인지! 게다가 5월에는 너무나도 좋은 사람들과 좋은 기회를 만나 영국을 가기 전에 같이 프로젝트를 할 수 있어서 참 감사했고, 참 감사하다. 


 사실 매일 잠을 설치고 소소하게 악몽을 꿀만큼 예민한 요즘이지만, 그래도 그 모든 마음을 크게 덮고 있는 것은 감사한 마음이라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길을 가던, 어느 길 위에 있던. 자만하지 말고 늘 겸손하고 배우려는 마음으로 내 사람들과 소소하고 행복한 나날들을 충만히 살아가기를. 


 오늘도 충실하게 삶을 살아가는 

 꿈꾸는 우리 모두,


 파이팅!



아름다운 5월의 어느 하늘





♥ ദ്ദി◍•ᴗ•◍)↓ [IG]

◡̎ 놀러오세요, 소마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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