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칩거를 / 베이글 사놓은 거 해치우기 / 이력서/ 몬조 현금 입금
어제, 저녁 청승을 떨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잠깐만 근데 왜 이렇게 어두운 면만 보고 있지? 나는 원래 그런 캐릭터가 아닌데.
생각해 보면 지난 19년도의 나는 그냥 모든 것이 바보처럼 즐거웠더랬다. 마트에서 장 보는 것도 웃기고, 영어 못해서 원래 사 오려던 것을 잘 못 사 온 것도 웃기고, 다른 나라의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웃기고, 중국 친구들이 나는 테이블 중간에 달랑 두고 중국어로만 말하고 있을 때에도 그냥 그러려니- 타격감이 별로 없었다. 그저 저 나라 애들은 저렇구나라고 생각하며 존중했을 뿐. 그리고 이런 영국에 다문화적인 환경 자체가 너무나 즐겁기도 했다. 특히 나는 디자인을 하니까 저 친구가 내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주제의 다른 디자인들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보면 얼마나 학구열에 불타면서도 또 그 작업물을 보는 것이 얼마나 재밌던지.
사실 지금의 나보다 훨씬 더 미숙하고 어리숙했던, 제대로 주문 하나도 잘 하지 못했던 과거의 나는, 어쩌면 지금보다 아는 것이 훨씬 없었지만 늘 모든 도전들이 흥미로웠다. 그때의 나의 목표는 그저 열심히 공부하고, 디자인하는 것, 좋은 경험들을 쌓는 것, 가능하다면 좋은 우정을 나눈 것. 그렇다면 그것이 지금은 다를까?
아니,
지금도 그것은 똑같다.
오히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보다 훨씬 괜찮은 상황일지도 몰랐다. 그때의 비하면 영어로 주문도 할 줄 알고, 훨씬 더 많은 말들을 알아들을 수 있고, 유려하지는 않아도 내 생각을 말할 수 있고. 모든 것을 아는 건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해야 할 것들은 알 고 있다.
영국도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주 조금일지언정 미미하게나마 알고 있고, 나 스스로에 대해서도 그때보다는 훨씬 더 잘 이해하고 있기도 하다. 나를 살살 달래서 하기 싫은 것들을 하도록 유도하는 방법도 이제는 조금은 알고 있고, 어디가 약해서 어디의 건강을 힘들 때마다 조심해야 하는 지도, 혹은 지금 내가 무엇을 확인해야 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도 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일단 반 정도는 온 셈이다.
가족이 보고 싶고, 익숙한 장소가 그리운 것은 어쩌면 당연한 마음 같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러하니까.
그리고 나이가 조금 드니 염세적인 마음에 사로잡혀 부정적인 말들로 어떠한 안전망 같은 것을 만드는지도 모른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어쩌면 사실은 정말 내가 진실로 스스로를 향해 생각하지도 않았던, 살아오면서 누군가에게 나에게 말했던 나를 깎아내리기 위한 어떤 모진 말들에 익숙해진 것일지도 몰랐다)
오늘에서야 조금 깨달았다. 그렇다고 하여 어떠한 안 좋은 감정에만 사로잡혀서 새로운 환경에 대한 설렘 같은 것들을 갉아먹을 필요는 없다는 것을. 돌이켜보면 그것이 영국이든 한국이든, 나에게 있어 위치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오늘의 나는, 이 소중한 하루는 다시는 또 오지 않기에, 나는 오늘의 내 하루를 충만하게 살 의무가 있었다.
그러니 내 워홀의 목표는 크지 않다, 어쩌면 그건 나는
그저 행복하게 사는 것.
나는, 여기서 내 할 직업적인 일을 하면서 소소한 행복들을 가득히 채워 살아보는 것이 목표다.
나 자신을 언어적으로써, 일적으로써 성장시키면서도
보다 단단한 마음으로 나 자신을 잘 돌보면서 우뚝 잘 서내는 법을 알 수 있는 그런 날들이 되기를.
행복해지는 법도 연습이 필요하고, 노력이 필요하니까.
여차하면 돌아가자는 마음보다는 일단은 어떻게든 행복하게 여기서 잘 살아보자는 마음으로 차근차근 해내보자고 생각한 새벽.
조급할 필요가 없어, 시간은 많다.
두려워하지 말고
나아가자.
1. 귀찮아서 안 꺼내다가
오늘에서야 꺼낸 전기담요
청승을 떨면 안 좋은 점이 잠이 안 온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생활하던 것처럼 늘 6시에 일어나고 싶었는데, 아직은 약간 생활패턴이 무너져서 조금씩 늦게 일어나고는 한다. 약속이 있다면 가기 전에 영어 공부를 할 수 있으면 되도록 하는 편이고, 이렇게 집에서 있는 날에는 느긋하게라도 영어 공부를 하고 일을 시작한다.
(단 너무 나를 몰아세우거나 하지 않도록 했다. 느긋하게라도 조금만, 한 문장이라도 새로운 말을 썼으면 됐다는 느낌으로)
아침을 간단하게 9시쯤 먹고,
아주머니랑 수다 떨다 보니까 어느새 10시.
라디에이터가 꺼지니 약간 쌀쌀하게 느껴져서 구석에 고이 모셔두었던 전기담요를 꺼냈다. 비장한 마음으로 콘센트에 꽂았고 최고 단계로 올려놨는데, 음 첫 소감은, 뭐라고 해야 하나
나는 좀 지져지는 걸 좋아하는 (?) 할머니 같은 타입인데 생각보다는 덜 뜨겁다고 해야 하나.
이 온도가 아니야..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이게 어디인가 틀어만 놨는데도 너무 따뜻해서 오히려 방석 위에 올려진 고양이처럼 노곤노곤 잠이 왔다.
전기담요는 좋구나.
이제야 생각해 보니 영국에서 살면 조금 일찍 잠들게 되는 것 같다.
우리나라보다는 밤이 좀 더 긴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2. 건강하게 먹도록 노력하자
사실 안 그렇게 생겨가지고 약간 허약체질인데, 면역력이 약한 느낌보다는 신경 써줘야 하는 건강 스테이터스가 많다. 아무래도 지병이 있는 가족도 있고 나 역시도 좀 그렇다 보니 우리 가족은 늘 건강관리에 진심이었는데, 사실 영양제 쪽으로는 그렇게 큰 신뢰를 못 느끼고 있다가 하도 영국이 날씨에 관해 악명이 높아서 비타민 디는 꼭 먹자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챙겨 먹고 있는 요즘.
비타민 D도, 철분도 자주 부족해지는 타입이라 근처 약국같은 곳에 들려 철분 약이랑 비타민도 하나 사보는 게 좋을지도 하는 생각이.
조만간 집에 오는 길에 하나 사 와야겠다.
아직은 남의 집 같아서 조금 요리하는 게 조심스럽지만, 진짜 내 집... 이 아닌 방을(..) 구하면 좀 더 마음 편하게 해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의외로 요리하는 게 큰 힐링이 되곤 한다. 하나씩 꾸려나가는 재미를 느껴보자.
3. 맞다, 몬조 입금도 했었다
생각해 보니 어제 글을 쓰다가 빼놓은 부분이 있어서 덧붙이는 이야기.
나는 19년도에 돌아올 때 현급을 급하게 인출할 일이 있었는데, 그때의 환율로 1400원대로 뽑아 300파운드 정도가 남은 상태였다. 그렇게 5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 나는 그 현금을 언젠가는 영국에 다시 와서 꼭 쓰리라 하는 마음으로 가지고 있었고, 바로 어제 그 현금을 모조 카드를 실물로 발급한 직후로 입금하러 다녀왔다.
몬조에 입금을 예전에도 했었었는데, 막상 오랜만에 하려니 잘 기억이 안 나서 정보들을 조금 찾아봤다.
혹시 내 정보들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 우선 첫째로 영국에 들어올 때 많은 현금을 환전할 필요가 전혀 없다.
- 트레 블로그 등의 하나카드가 있다면 물건을 사고, 심지어 교통카드를 찍을 때도 쓸 수 있고 바로바로 결제가 되어 계좌에서 나간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치 곤란한 현금이 있다면, 몬조 카드를 실물 카드로 발급받은 후에 쓸 수 있다.
(1) 사용 방법은 우선 몬조를 개설하고 실물 카드를 주문하면 한 3일 내로 우편으로 배달이 온다.
(2) 현금과 실물 카드를 들고 가까운 paypoint 지점으로 가면 되는데, 그 지점은 아래의 사이트를 보면 알 수 있다.
https://consumer.paypoint.com/
- 여기 적혀진 모든 지점이 취급을 하지 않는다는 건, 예전 19년도의 경험으로 얼핏 기억하고 있었는데 어떤 분의 후기를 보니 coop 지점은 보통 다 가능하다고 하여 안전한 선택지로 근처 coop 매장에 방문했다.
(3) 1회 최대 입금 비용은 300파운드, 그리고 얼마를 입금하든 1파운드의 수수료를 받는다. 그러니까 한 번에 많이 입금하는 게 이득.
(4) Can I depost cash in my Monzo account?로 물어보면 된다.
(5) 잠깐 기다리고 완벽하게 임급 됐다는 영수증을 받으면 끝.
금방 끝난다!
이날의 좀 유의미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나의 어떤 부채감 같던 돈이라서 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19년도에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언젠가는 다시 영국으로 오기를 꿈꿨고, 그 어느샌가 숙제같이 변해버렸던 마음이 이제야 정말 이뤄졌다는, 어떤 시원 섭섭한 시작을 앞둔 마음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그러니까,
조금은 다시 와서 기쁘다 영국.
내가 바랬던 것처럼.
나 진짜 이번에야말로 이곳에 다시 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