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의 삶을 살아보다
호주에서의 삶은 처음엔 두려움이, 다음엔 설렘이었으며, 끝내 나를 새롭게 빚어낸 자유의 시간이 되어 주었다. 처음엔 잠시였고, 곧 돌아올 거라 생각했지만,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일을 하고, 돈을 벌었으며, 그 돈으로 또 다른 땅을 밟으며 삶이 조금씩 확장되는 감각을 알아가게 되었다. 그런 생활은 어느 순간부터인가 공부라는 명분으로부터 시작된 "도피"의 여정이 “돈”이라는 새로운 여정의 길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보웬의 바닷가 시골 마을에서는 토마토를 땄고, 수도 캔버라에서는 낮에 건물 외벽을, 밤에는 아무도 없는 사무실 계단을 조용히 쓸며 청소를 했다. 호주 내륙의 에메랄드에선 포도밭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일하다 저녁엔 맥도널드 주방에서 패티를 구웠다. 브리즈번 인근 스탠소프에서는 딸기 모종을 일일이 분류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남들은 고된 노동이라 부르겠지만, 그 속에서 나는 자유를 배웠다. 억눌린 공시생 시절의 나에게 이 정도의 고단함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었다. 땀 흘려 얻은 노동의 대가이었기에, 그 보상은 단순한 임금을 넘어 존재의 가치에 대한 증명이었다.
한때는 모서리에 쭈그리고 앉아 “나는 누구인가?”를 되뇌던 내가 이제는 비행기 표와 숙소를 예약하고, 스스로의 노동에 대가로 여행을 떠나는 주체적인 인간이 되어 있었다. 지역을 옮겨가며 일했고, 자동차를 몰고 호주의 지평선을 따라 여행했다. 호주의 대지는 나에게 쉼과 확신을 동시에 주었다. 캐언즈의 에메랄드빛 바다는 마음을 적셨고, 울루루의 거대한 붉은 바위는 내 안의 오래된 두려움을 말없이 품어주었다. 골드코스트의 해변은 끝없이 열려 있었고, 멜버른의 그레이트 오션 로드는 굽이굽이 내 인생의 길과 닮아 있는 듯했다.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 아래에서는 언젠가 다시 돌아올 것만 같은 예감에 젖었고, 태즈메이니아의 폐쇄된 수용소 앞에서는 침묵 속의 역사를 바라보며, 내 안의 수많은 감정들이 정리되어 갔다. 나는 더 이상 과거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멈췄던 시계는 이제 다시 움직이고 있었고, 과거의 상처는 삶의 결로 남아 내 인생의 궤도를 부드럽게 이끌어주고 있었다. 그렇게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누군가에겐 긴 시간일 수 있었고, 누군가에겐 단지 "방황의 여정"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내겐 재탄생의 시간이었다.
노동의 여정에서 통장에 쌓인 돈은 생각보다 많았고, 그보다 더 많은 건, 내 안에 쌓인 경험과 자신감이었다. 그렇다고 영원히 이렇게 떠돌며 살 수만은 없었고 어느덧, 돌아갈 시간이 왔음을 알 수 있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나는 다시 예전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공시생의 이름도, 타인의 기준도, 이젠 나의 삶에 불필요한 그림자일 뿐이었다.
비록 친구들처럼 커리어가 쌓여 있진 않았지만 나는 내 삶을 스스로 설계할 수 있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나는 그동안의 노동으로 얻은 경험과 노동으로 작은 사업을 해보고자 마음먹었다. 무엇을 할지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예전처럼 목표 없이 떠난 여정이 결국 나를 찾아 주었듯, 호주 여정의 답으로 뚜렷한 목표 없이 돌아가는 것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중요한 건, 이제는 스스로의 진짜 주인이 되는 삶을 살겠다는 의지였다. 누군가의 인정이 필요한 삶이 아니라, 내가 나를 인정하는 삶. 누구를 탓하지도, 누구의 기준에 스스로를 맞추지 않으며, 내가 원하고 선택한 길을 따라가겠다는 결심.
그 결심 하나면, 앞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도망자가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호주라는 광활한 대륙이 내게 가르쳐 준 가장 큰 자유의 감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