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던 시작과 마주한 현실
호주에서의 삶은 내 인생에서 가장 치열하면서도 순도 높은 시간이었다. 고된 노동 속에서 삶의 본질을 배웠고, 스스로를 다시 사랑하게 될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할 수 있다”는 단단한 믿음을 가슴 깊이 새길 수 있었다. 이제는 흘러간 시간을 뒤로하고 돌아가야 할 순간이 되었음을 직감했다. 그렇게 다시 시작할 새로운 삶에 대한 부푼 꿈을 안고 드디어 한국 땅을 밟았다.
하지만 현실은 내가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더 차갑고 낯설었다. 친구들은 이미 사회의 한복판에서 치열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나보다 한참 어린 친구들 마저도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비하면 어떠한 경력도, 사회적 위치에 어울리는 자격도 없었다. 이름 대신 번호로 불리던 시험장에서의 시간만이 내 손에 남은 전부였기 때문이다. 불안은 다시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내게 말을 걸어왔다. “너는 이제 무엇을 할 수 있니?”라는 스스로의 물음에 예전 같았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겠지만 이번엔 달랐다. 스스로의 삶을 위해 피어오르는 불안을 회피하지 않고 당당히 마주 볼 수 있는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용기의 결과는 “창업”이라는 이름 아래 나만의 공간을 만들기 위한 집약체가 되기 시작했다. 여전히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확신은 없었지만, 그저 이제껏 경험해 온 시간들에 스스로의 삶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만들어가고 싶었다. 막연함을 뒤로하고 시골, 고향의 작은 공간, 낡은 점포 하나를 얻었다. 사업성이 아니라, 의미와 관계가 피어날 수 있는 곳. 그게 나에게는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므로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지만 그저 이상의 그림자만을 쫓았다. 결국 허세 가득한 포부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어 친구와 지인들의 도움에 의지해야만 했다. 직접 인테리어를 하겠다는 야심은 언제부터인가 주위 사람들에게 민폐로 돌아갔고, 내가 받은 호의는 누군가에겐 피로였을지도 몰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야만 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드디어 2015년 8월 1일, 사업자 등록을 마쳤다. 이제 정말 시작이었다. 남은 건 간판 하나. 그 간판 하나를 달기 위해, 나는 낡은 알루미늄 사다리에 올랐다. 어쩌면 너무 무리했는지도 모른다. 설레는 마음에, 무모함이 섞인 손길로 위태롭게 유지하고 있는 균형을 무시했을지도 몰랐다. 그 순간, 모든 기대는 한순간의 실수로 무너졌다. 두 눈이 감겼고, 바닥은 생각보다 훨씬 더 가까웠다. 극심한 고통이 몸을 감쌌고, 나는 바닥에 엎드린 채 신음을 삼켰다. 누군가의 알 수 없는 발 빠른 신고에 얼마가지 않아 119의 사이렌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고, 병원 응급실 침대 위에서 나의 첫 사업이 시작하기도 전에 무너지고 있음을 실감했다.
검사 결과는 요추 1번과 2번 압박 골절. 수술은 필요 없었다. 최소 3개월간의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말을 그저 멍하니 듣고만 있었다. 그러나 "3개월"이라는 숫자는 내게 도저히 손에 잡히지 않는 막막한 시간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람마다 회복 속도는 다르다고 했다. 언제 다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지, 언제 다시 제대로 간판을 달 수 있을지,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다. 모든 걸 준비한 듯 보였던 그 순간, 나는 또다시 좌절 앞에 무릎 꿇고 말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외면했던 "안전"이라는 감각이 얼마나 중요한 말인지. 처음 창업을 결심했을 때, 내가 마주하리라 생각했던 어려움은 자금이나 경영, 아이템 혹은 마케팅이었지만, 삶은 예고 없이 고통을 주고 제대로 움직일 수 도 없는 시간을 내게 던져주었다. 새로운 출발 선상의 앞에서 잠시 멈춰 서게 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 멈춤의 시간조차도 내 삶의 한 과정임을 받아들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더 멀리 가기 위한, 도약을 위한 숨 고르기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