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첫 가게, 겨울의 카페

차가운 바람 속 따뜻한 불씨 하나

by jayjay

허리에 보조기를 착용한 채, 조심스레 어수선하기만 한 작은 가게의 문을 열었다. 3개월의 안정 기간은 다 채우지도 못한 채 월세와 생활비에 떠밀리듯 아물었는지도 모르는 몸을 이끌고 내가 그토록 이상적인 공간으로만 그려왔던 곳, 쌓여있는 먼지를 뚫고 현실 속의 장소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사실, 준비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주위 지인들의 도움을 제외한 나머지 노력이라고는 제과제빵학원에서 딴 자격증이 전부였고, 그것만으로는 현실적인 영업의 모든 걸 해결해 줄 리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아야만 했다. 나만의 공간이 주는 안락함은 현실 앞에서 한 없이 작아지기만 했다. 문을 열 수 있다는 것 외엔 모든 것이 다 부족했다. 기본 집기류를 제외하면 채워지지 않은 빈 공간이 주는 공허함의 큰 울림은 매우 강렬했다. 메뉴도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불편한 몸을 이리저리 아무리 움직여 보아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제야 주위의 걱정 어린 말들이 하나, 둘 생각났지만 다음으로 내디딜 발걸음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낯설게만 느껴졌다.

그럼에도 매일 가게 문을 열었고 자리를 지키며 앉아 있었다. 하루 종일, 가게 안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길 반복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위로를 스스로에게 건네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 공간은 막연한 이상적 생각과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빚어진 곳이었다. 솔직히 여러 사람들의 도움이라는 이름 아래 쏟아진 많은 조언과 누구인지 기억나지도 않는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중심을 잃을 정도로 상처를 받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이 무의미한 것만 같은 반복된 행동으로 조금은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모든 진심이 내게 익숙한 모양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는 것을, 그 안에 담긴 걱정과 애정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는 것에 다시 한번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다.

채워지지 않은 공간의 공허한 울림이 있던 시작

하루, 이틀 넋 놓고 있을 수만 없었기에 직접 쿠키를 만들었고,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직접 만든 쿠키 몇 개와 진한 커피 두세 잔이 그날 판매한 전부였을지라도 온 마음으로 감사해하며 하루를 버텼다. 현실은 제대로 된 메뉴판도 없었고, 홍보는커녕 SNS 하나 손대지 못한 채, 참혹하게 그 해의 겨울을 살아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에 손님 한 명, 혹은 아예 없기도 했다. 가게 한구석에서 책을 읽다 말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날이 대부분의 일과였다. 펑펑 내리는 함박눈, 창밖의 골목길이 서서히 하얗게 그리고 무겁게 쌓인 눈들에 묻혀 가고 나의 마음속에도 눈이 쌓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말 없이 차갑고 고요하게, 그렇게 아무 소리 없이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길고 차갑게 느껴졌다. 추위는 좁은 골목길과 움츠러든 마음, 둘 다 꽁꽁 얼려버렸다. 가끔 손님이 들어와 “영업하시나요?”라는 질문을 던질 때면 마치 내가 이 자리에 존재하고 있는 것 자체가 의문처럼 느껴지곤 했다.

그런 의문들에도 괘념치 않고 꾸준히 문을 열고 닫기를 반복했다. 어쩌면 내게 문을 연다는 행위 자체는 가장 절실한 자기 존재의 표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쌓여 있던 눈이 녹기 시작할 때쯤, 통장의 잔고도 함께 녹아내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름 도톰했던 잔고는 공간을 꾸미기 위한 비용으로 병원비로 기타 영업비와 생활비로 얇아졌고, 그 얇아진 숫자들 위로 불안과 두려움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게는 이 차가운 겨울의 끝을 꼭 붙잡고 견뎌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아무도 나에게 이런 상황이 되도록 등 떠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그저 믿고 도움을 준 모든 이에게 그 도움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해 보여야만 했다. 무겁게 쌓여 있던 눈이 녹기 시작해 조용히 어딘가에서 움트고 있을 내 안의 열정을 느끼기엔 아직 꽃샘추위에 봄이 오지 못하는 것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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