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뿐인 자유와 무게
2005년 2월. 겨울은 끝나지 않은 채 아직 매서웠고, 봄이 오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위로가 되지 않은 채 제대를 했다.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던 군복을 벗고, 다시 ‘사회’라는 낯선 땅으로 돌아왔다. 손꼽아 기다렸던 순간이었다. 제대를 하면 나의 세상이 열릴 줄 알았고, 새로운 나를 마주할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그 문을 열었을 때, 내 앞에 펼쳐진 것은 눈부신 가능성도, 반가운 자유도 아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한 공허였다. 세상은 생각보다 멀리 나아가 있었고,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 나는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한 채로 머물러 있었다. “이제 뭘 해야 하지?” 스무 살 초반의 나는 삶의 방향을 묻기엔 너무 나약했고, 묻지 않기엔 너무 늦은 그런 나이였다.
그래서 복학을 준비했고, 취업을 고민하며, 또다시 “남들처럼” 살아갈 준비를 했다. 꿈은 여전히 없었다. 목표는 희미했고, 단지 ‘해야 할 일들’만이 내 앞에 무겁게 쌓여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차례차례 밟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척했다. 텅 빈 마음을 숨기기 위해, 겉으로는 바쁜 사람인 척, 열심히 사는 사람인 척, 나 자신까지 속이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 무렵, 부모님의 세대에서 당연하던 질서와 신념들은 점차 희미해지고 있었고 새로운 문화, 새로운 가치들이 세상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 변화의 흐름 속에서 나는 점점 나라는 사람의 모양을 잃어가고 있었다. 분명한 건,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불안이 마음 한구석에서 조용히 자라고 있다는 것.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누군가는 “열심히 하면 된다”라고 말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스펙을 쌓아야 한다”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몰랐다. 무엇을 향해 열심히 해야 하는지, 어떤 스펙이 내 삶을 바꿔줄 수 있는지조차. 그때의 나는 ‘순응하는 중’이었지만 그저 버티고 있다는 표현의 말이 정확할 것이다. 군대라는 질서도, 대학이라는 틀도 이제는 나를 더 이상 가둘 수 없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한 번도 그 안에서 진짜 자유로움을 느낀 적이 없었다. 그리고, 자유라는 이름 아래 놓인 이 막막한 삶에서 나는 길을 잃어 가고 있었다.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고, 나는 여전히 제자리에서 발을 떼지 못한 채, 사라지지 않는 불안의 그림자 속에 앉아 있었다. 그렇게 제대 후 첫 번째 봄이 다가오던 어느 날,
나는 하나의 거대한 상실과 마주하게 된다. 그 상실은 내 삶을 뿌리부터 흔들었고, 그 후로 나는 다시는 예전의 내가 아니게 되었다. 삶은, 그 순간부터 진정한 나를 찾아 다시 쓰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