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을 알리는 사이렌처럼
그날은, 아직도 여전히 잊을 수가 없다. 이른 아침, 평소라면 울리지 않았을 시간에 낯설게 울려 퍼진 전화벨 소리. 그 소리는 마치 어떤 세계의 끝을 알리는 사이렌처럼, 내 일상의 평온을 단숨에 무너뜨렸다. 무심코 받은 그 전화는 내 인생의 중심을 산산이 깨뜨리는 신호였다.
아버지의 떨리는 목소리.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그 한마디 한마디는 나를 그대로 얼어붙게 만들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어머니의 죽음은 너무나도 갑작스러웠기 때문이다. 병원에 다니신다는 말도, 아프시다는 기척조차 없었던 분. 항상 내 곁에 있을 줄 알았던, 항상 내 편이 되어줄 줄 알았던, 그런 어머니가 이렇게 갑자기, 아무런 예고 없이 세상으로부터 떠나셨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상주로서 장례식장에 서 있는 내내 모든 것이 낯설고 비현실적이었다. 조문객들의 위로, 친척들의 울음, 꽃 향기와 향 냄새가 뒤섞인 장례식장의 공기조차 나에겐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멍하니 어머니의 영정사진 앞에 서 있었지만, 그 사진 속 웃음조차 믿을 수 없었다.
나에게 이토록 큰 존재가, 이토록 따뜻했던 분이, 이렇게 한순간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내 머리는, 내 마음은 도무지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내 삶의 중심이었고 말을 많이 하시지 않았지만, 언제나 나를 든든하게 바라봐 주던 분이었다. 군 복무 중에도, 제대 후에도, 늘 미안하다고만 말하시던 분. 더 잘해주지 못해 늘 안타까워하시던 모습이, 그런 어머니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단순한 ‘상실’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었다. 그건 나라는 존재의 정체성을 송두리째 흔드는 깊고도 치명적인 균열이었다.
며칠 뒤, 장례식을 마치고 나는 일상으로 돌아가려 애썼지만 삶의 어디 한 구석이 찢긴 듯한 고통은 쉽게 사라지는 생채기의 쓰라림이 아니었다. 내 안에 어렴풋이 남아 있던 정체성과 방향성, 그리고 뿌리가 송두리째 뽑혀나간 듯한 공허함만이 부재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묻기 시작했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어머니는 내 유일한 버팀목으로 내가 무엇을 하든, 어떤 선택을 하든 묵묵히 바라봐 주던 분으로 한 번도 나에게 기대를 강요한 적 없지만, 그 존재만으로 나를 붙들어주던 분.
그런 어머니에게, 나는 아직 아무것도 보여드리지 못했다는 지독한 죄책감만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공허하고 무기력한 날들이 이어졌고, 나는 점점 더 작아져만 갔다. 그렇게 작아지다 종국에 아무런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나날들의 연속을 보내고 있었다.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라는 말은 나에게 쉽게 이해되지 않았고, 해결해 줄 거라는 시간은 그리 친절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어머니의 빈자리는 더욱더 선명해졌고, 무심한 누군가의 일상적인 말 한마디, 가족관계를 묻는 아무렇지 않은 질문들이 내 안의 슬픔을 깊은 우울로 바꾸어 놓을 뿐이었다. 어떤 일도 의미 없어졌고,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나는 나의 삶 안에서 길을 잃고,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떠돌고만 있었다.
어머니의 부재는 단지 한 사람의 죽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건 나를 지탱하던 이유와 존재의 축이 통째로 무너지는 일이었다. 세상은 더욱더 낯설어져만 갔고, 나는 내가 어디에 서야 할지 몰랐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시간은 여전히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고, 나는 그 자리에서, 한없이 무너져 내려 배경처럼 존재했지만 사라져만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