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강요한 정답의 길 위에서
삶이 무너진 자리에서, 나는 스스로를 다시 세우기 위해 어떤 이름이든 붙들어야만 했다. 누군가의 선택이 아닌, 오롯이 나의 선택으로 불안정한 삶의 모서리를 다듬고 싶었다. 그 갈피 없는 삶에 ‘안정’이라는 이름을 억지로라도 덧씌워야 했다. 그리고 그 이름은 “공무원 시험 준비생”이었다. ‘공시생’. 만약 어머니가 살아 계셨다면, 조금은 자랑스러워하셨을지도 모를 선택이었다.
세상의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고, 삶의 기반을 조금은 단단하게 다져줄 것 같은 길. 나는 그렇게 스스로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했다.
‘공시생’이라는 옷을 입고, 그 이름에 걸맞은 사람이 되려 애썼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건 안정이 아니라, 도피였다. 슬픔과 공허를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기 위한 회피. 무너진 감정을 숫자와 계획표로 가둬두기 위한 자기 방어. 그 선택의 본심이 무엇이 되었든, 나는 또다시 하나의 틀 속에 나를 밀어 넣고 있었다. 그러나, 그 여정은 결과적으로 또 다른 좌절과 성장, 그리고 아주 작은 재발견으로 나를 데려다줄 초석이 되어 주었다.
“안정된 직업”, “불확실한 미래로부터의 도피처”. 그게 당시의 나에겐 유일한 희망처럼 보였다. 어머니를 잃고 난 뒤의 공허함을 메우기 위한 수단이자, 어머니께 부끄럽지 않은 아들이 되기 위한 고백 같기도 했다. 그 일념 하나로 나는 책상 앞에 앉았고, 계획표를 짰으며 하루 10시간씩 문제들을 풀고, 암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실은 책 한 권을 덮는 것보다 훨씬 더 거칠고 냉혹했다. 무거운 외로움, 스스로에 대한 끝없는 압박감, 보이지 않는 경쟁 속에서 무너지는 자존감.
가장 힘들었던 건 공부가 아니라,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하루하루를 견디는 일이었다. 늘 같은 자리, 같은 문제, 같은 공기 속에서 조금도 자라지 않는 나를 바라보는 일이었다. 목표는 있었지만, 그 끝이 보이지 않았고 하루는 성취가 아닌 자책으로 채워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감은 점점 줄어들었고, 나 자신에 대한 믿음도 흔들렸다.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 걸까?” 그 질문은 공부보다 더 끈질기게 내 옆에 머물렀다. 가족들의 시선도 처음엔 격려였지만, 시간이 흐르며 조용한 침묵이 되었고 그 침묵은 말 없는 걱정이 되어 나를 조여왔다.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건 단 하나, 어머니였다. 내 곁에 계시지 않았지만, 그 빈자리를 채우고 싶다는 막연한 책임감 하나가 나를 지탱했다. 그 일념 하나로, 나는 내가 선택한 길의 끝까지 가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