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타인의 시선, 나를 짓누르다

나보다 남이 중요했던 시간

by jayjay

어머니의 부재는 내 삶에 깊고도 조용한 균열을 남겼다. 그 균열을 메우기 위해 붙잡은 ‘공시생’이라는 이름은 처음엔 나를 지켜주는 보호막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이름은 나를 옭아매는 족쇄가 되어 있었다. 반복되는 일상, 끝이 보이지 않는 수험생의 시간 속에서 나는 오로지 ‘합격’이라는 단 한 단어로만 존재를 증명해야 했다. 합격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버리는 구조 속에서, 나는 점점 고립되어 갔다.

노량진의 텅 빈 학원

하루가 멀다 하고 내 안의 감정은 말라붙었고, 생각은 무뎌졌고, 나는 마치 조작된 기계처럼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앉아 공부하고, 끼니를 때우고, 압박감에 짓눌려 겨우 잠드는 사람으로 바뀌어갔다. 그렇게 점점 지쳐갔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았고,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조차 버거웠다. 의욕은 바닥을 쳤고, 무력감은 일상이 되었다.

친구들은 취업을 하고, 회사를 다니며, ‘사회인’이라는 이름으로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앉아, 색 바랜 수험서 속에서 제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무엇보다 외로웠다. 공시생의 하루는 철저히 혼자여야만 했기 때문이다. 말없이 공부하고, 말없이 식사하고, 말없이 잠들었다. 하루를 통째로 쓰고도, “오늘 나는 무엇을 했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입을 다물 수밖에 없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문득, 더 깊은 질문이 찾아왔다. “나는 누구를 위해 이 삶을 살고 있는가?” “이대로 가다간, 나라는 존재는 완전히 사라지고 마는 건 아닐까?” 그 질문은 나를 멈춰 세웠다.

어머니의 죽음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 채, 회피하듯 공부에 몰두했던 시간들. 그것이 과연 나를 위한 길이었을까? 나는 조금씩, 아니 이미 오래전부터 나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나는, 또 하나의 선택 앞에 서게 되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 ‘포기’라는 단어가 ‘실패’처럼 들려 마음 한편을 찔렀지만, 그 실패라는 낙인이 두려워 나를 더 이상 갉아먹을 수는 없었다. 루저라는 말을 들어도 괜찮았다. 더는 나를 속이고 싶지 않았다. 더는 죽어 있는 듯 살아 있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떠나자. 익숙한 공간을 벗어나 내 안의 공기를 스스로 바꾸고, 무너진 나를 처음부터 다시 세워보자. 누군가에겐 도피처럼 보일 수도 있는 그 선택이 나에게는 생존의 길이었다. 지켜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 그렇게 나는, 나의 파편들을 모아 다시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이름의 첫 페이지를 써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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