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이불처럼 숨 막히지만 편안한
꿈이 없다는 것은 단지 무기력한 상태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나라는 사람의 실루엣이 점점 희미해진다는 뜻이다. 나는 그렇게 살아갔다.
무언가가 되기를 바라지도 않았고, 아무것도 되지 못한 채 살아가도 괜찮다고 믿었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그 한마디로 내 가능성을 스스로 깎아내렸고, “남들도 다 그렇다.”는 이유로 마음속 깊은 질문들을 조용히 눌러 두었다. 나는 점점 배경처럼 사라졌다. 풍경의 일부가 되듯, 내 존재도 풍경처럼 조용히 스며들었다. 그렇게 자아 없는 삶에 익숙해졌고, 그 익숙함은 마치 오래된 이불처럼 나를 덮었다. 답답하지만 따뜻했고, 숨 막히지만 편안했다.
하고 싶은 일이 없어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하고 싶은 일이 생겨날까 봐 겁났는지도 모른다. 현실에 타협하며, 틀에 나를 맞춰가며 살아가는 법을 익혔다. 남들처럼 살기 위해 애쓰며, 남들처럼 살아간다면 실패는 없을 것이라 믿었다. 특별히 잘하고 싶은 것도 없었고, 다른 방식으로 살고 싶은 욕망도 없었다. 사회의 기준, 부모의 기대, 친구들이 가는 길. 나는 그 안에 나를 조심스레 끼워 넣었고, 그 틀 안에 들어갔다는 이유 하나로 안도했다.
하지만 그 안도감은 깊은 곳에서 천천히 썩어가던 공허함이었고, 그 공허함은 무거운 침묵이 되어 나를 짓눌렀다. 아무것도 스스로 선택해 본 적 없는 삶. 그건 실패하지 않는 인생일 수는 있어도, 행복한 인생은 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변 친구들이 하나, 둘 군에 입대하기 시작했고 나는 그 흐름에 몸을 실었다. 그 또한 나 스스로 선택한 길이 아니라 시간에 떠밀려 갈 뿐이었다. 군대라는 세계는 명확했다. 규율은 분명했고,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고, 고민은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훈련을 받고, 작업을 하고, 행정 업무를 익혔다. 주어진 일에 묵묵히 최선을 다했다.
삶이란 원래 스스로를 ‘주어’로 삼는 문장의 연속이어야 했지만, 나는 언제나 누군가의 ‘목적어’ 혹은 ‘보어’로 살아가고 있었다. 누군가의 기대 속에서, 누군가의 기준 안에서, 누군가의 결정 아래에서. 나는 그렇게 존재했고, 그렇게 살아갔다. 그 안에서 무너지면서도,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 설명할 수 없는 쓸쓸함이 늘 자리하고 있었다. 그 허전함이 어디서 왔는지도 모른 채,
나는 오늘도 또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그 허전함은 언젠가 반드시 마주하게 될 깊고 조용한 상실의 서막임을 알지 못한 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