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휴가, 퇴사 절.대.불.가"
나는 신혼의 달콤함은 꿈도 못 꾼 채 팔자에도 없는 ‘쌍둥이 엄마’가 되었다. ‘뭣도 모를 때 결혼하고, 애 낳아야 한다’는 옛말은 내게 틀림없이 적용된 듯싶다. ‘육아는 한 명도 힘든데, 두 명을 동시에 품고, 돌봐야 하니 힘들겠지’라는 생각은 했지만, 막상 내 일이 되고 보니 이제껏 듣도 보도 못한 상상초월의 힘듦이 휘몰아쳤다.
누가 내 입덧 좀 끝내줘요!
시작은 ‘입덧 지옥.’ 음식 냄새를 맡으면 화장실로 달려가는 드라마 속 한 장면을 임신 12주 차까지 내가 그대로 재현했다. 전기밥솥이 밥을 하며 내뿜는 하얀 연기, 그 냄새만 맡으면 죽을 것 같았다. 남편이 창문을 열고 밥을 하고, 나는 안방에 있어야 할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수원역에서 시청역까지 기차와 지하철을 타고 1시간 30분씩 출퇴근할 때도 죽음의 문턱을 오갔다. 내가 출근 시간에 탈 수 있었던 기차는 딱 1대, 순식간에 마감된 기차에 꾸역꾸역 타기 위해 입석표를 끊었고, 돈 주고 산 좌석을 만석인 기차 안에서 양보해 주는 이는 당연히 없었다.
1분이 1시간 같았던 그때의 나는 누가 보든 말든 기차 바닥에 앉아 ‘곧 도착한다, 내린다’ 주문을 외며 그 시간을 버텼다. 서울역에 도착해 열차 밖으로 나서면 차가운 공기 덕에 살만했다. 천국에 온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아, 나는 서울역에서 시청역까지 지옥의 한 정거장을 꾸역꾸역 타야 회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입덧은 다행히 12주 차에 끝났지만, 하루도 맘 편할 날이 없었다.
아직도 갈길 먼 임신, 출산, 육아제도
‘~임신 12주 차, 단축근무 2시간’이라는 제도를 쓰기까지도 서러웠다. 사례가 없는 제도다 보니 담당자도 이를 제대로 알지 못했던 때였다. 유산율이 높은 쌍둥이 임신이다 보니 조심스러워 회사에 이 제도에 대해 얘기를 했는데, ‘단축근무 2시간을 쓰면, 일 안 한 시간만큼 급여가 깎이는데 괜찮냐’는 답변을 받아 마음의 상처를 받은 일이 있었다. 다행히 나보다 먼저 이 제도를 이용한 단 한 명의 동기가 있어서 나도 쓰게 되었지만, 내게 그 과정만큼은 그 누구보다 힘들었다.
육아휴직도 쉽지 않았다. 우리 업계는 출산휴가 3개월, 육아휴직 1년을 다 쓰면 ‘좋은 회사’ 취급을 받는다. 출산휴가에 들어가기 전, 내 상사도 육아휴직을 9-10개월만 써도 많이 쓰는 편이니 그 정도만 쓰고 오라고 회유했다. -법적으로 쌍둥이 육아는 출산휴가 4개월, 육아휴직 2년(한 아이당 1년씩 총 2년)이다.- 남편과의 충분한 대화 끝에 나는 최소 1년 4개월은 써야 한다고 결정했고, 이를 상사에게 말했다. 물론, 대화가 잘 안 풀리면 퇴사를 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속에 어렵게 꺼낸 얘기였다. 다행히 1년 4개월을 쉬게 됐고, 나는 현재 남은 1년의 육아휴직도 쓰겠노라 회사에 얘기하고 육아에 전념 중이다.
휴일, 휴가, 퇴사 절.대.불.가
사실 나도 미혼일 때는 육아휴직 후 복귀하는 선배들이 부러웠다. 1년 3개월의 시간 동안 집에서 아이를 돌보며 남는 시간에 휴식과 자기 계발이 충분히 가능한 줄로만 알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을 안 해도 고용보험에서 소정의 돈도 주고, 쉬다 와도(쉬는 게 쉬는 게 아니지만) 제 자리가 있는 게 좋아 보였다.
선배들처럼 1년 4개월을 보내보니 하루가 1분 1초 단위로 쪼개져 너무도 괴롭고, 외로웠다. 일할 때는 일하는 게 제일 힘들었는데, 임신부터 육아까지 쭉 하고 있자니 내 생애 이런 힘듦은 처음 겪는 듯했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너무 힘들었다.
세상엔 많고 많은 힘든 일들이 있는데, 육아야말로 경험하지 않고서는 절대 알 수 없는 힘듦의 절대 영역이었다. 휴일도, 휴가도 적용 안 되는, 퇴사도 결코 적용될 수 없는 ‘기약 없는 기다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