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이 그렇겠지만, 나 또한 모순적이다.
그중 유난히 특기할 만한 것이 있다면 바로 어느 때고 휙휙 바뀌는 온도 차이다. 세상을 대하는 내 시선에는 불같은 뜨거움과 얼음 같은 차가움이 공존한다.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생을 그만두고 싶기도 하다. 세팅된 에너지값은 현저히 적은데 하고 싶은 것은 넘쳐난다. 그렇게 나는 언제나 내 안의 두 가지 힘에 의해 휩쓸리듯 살아왔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은 나를 차가운 사람으로 생각해 다가오기 어려워한다. 잘못된 것은 가차 없이 버리며 이성의 힘으로만 살아가는 것 같아 보인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한다. 무미건조한 경상도 사투리에 늘 무표정한 탓에 한층 더 그래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세상에 어떤 인간이 이성적이기만 할 수 있으랴. 이런 사람이 감정에 휩쓸리면 몇 배로 큰 폭풍이 일어난단 말이다!
좀 더 가까이서 나를 두고 본 사람들은 다른 평가를 내린다. '의외로 세심하고 사려 깊네'(의외로가 꼭 들어간다)라던가 '제일 힘없는데 제일 열심히 살아'라던가.
얼마 전, 한 주변인이 내게 ‘뜨겁고 날카롭고 다정한 사람’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은 듯 아!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원인도 모르고 앓다가 비로소 병명을 알게 된 기분이었다. 조금이라도 달라지거나 나아지진 않았지만 비로소 '유난히 모순적인 사람'으로 카테고라이징 되고 나니 편안해졌다.
비슷한 시기 상담센터를 찾게 되었는데 나의 궤적을 따라가 보는 여정을 통해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다. 나는 냉소적이고 회의적이지만 세상에 호기심이 지대하고, 예민하고, 애정을 갈구하지만 애착관계가 힘들고, 누군가 내 깊숙이 들어오는 것이 싫어 사람과의 거리를 두고 뭐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그 탓에 삶의 순간순간 남들보다 힘든 감정들을 자주 마주하는데, 입 밖으로 꺼내면 '그래?...(공감 안 되는 표정)'라던가 '그 정도로 화낼 일은 아닌 것 같은데'라던가 '네가 되게 예민하네' 등등의 반응을 겪기 십상이다. 그래서 글로라도 마구 풀어 본다. 나와 비슷한 누군가는 공감해줄 거라 믿으며.
<어느 뜨거운 회의주의자의 고백>은 이런 특성을 가진 사람의 단상들을 공유하는 코너다. 뼛속 깊은 냉소와 그럼에도 계속해서 기대하고 살아가게 만드는 모순에 관한 솔직한 이야기. 치열한 고민의 과정 속에서 깨달아가는 적나라한 이야기. 인간관계, 사랑, 일, 실존적 문제 등 부딪히는 모든 것들의 이야기를 담을 예정이다.
상당히 냉소적이었던 (?) 나의 아홉 살 적 일기로 소개를 마친다. 선생님이 읽어보고 적잖이 당황했을 것 같다...
2021년 3월부터 잡지 비평에 연재 중인 코너 <어느 뜨거운 회의주의자의 고백>을 다소 수정하여 업로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