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파도키아가 열기구를 타는 곳으로 유명하다는 것을 터키에 인터넷을 보고 알았다.
이틀 전에 가는 방법을 알아보니까, 터기 국내 항공이나 버스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는 것 같은데, 말이 통하지 않아 버스는 터미널 위치를 찾기도 어려울 것 같고, 항공기를 이용하기로 했다.
스카이스캐너를 이용해서 예약을 보니까 터키 항공이 가장 가격이 저렴했다.
터키항공으로 예약을 시도했지만 예약이 되지 않아, 국내 여행사인 하나투어를 통해서 예약을 하려고 하니까 여섯 배나 비싼 가격이었다.
가격이 너무 차이가 나니까 하나투어 예약은 포기했다. 다른 방법을 찾으려고 탁심 광장 주변에 가니까 터기 항공을 취급하는 여행사가 여럿 있었다. 그곳에서 내가 원하는 날짜와 시간을 표시해 주니까 예매가 가능했다.
다음은 숙소인데 에어비엔비나 부킹닷컴으로 예약을 시도했지만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 가 보기로 했다.
토착 시간이 오후 7시이니까 숙소를 잡을 수 있을까 하는 것과 카파도키아의 네브쉐히르공항에서 카파도키아의 중심인 괴뢰메 마을까지 어떻게 가느냐 하는 문제는 남은 상태였다.
아침에 일어나니까 다음 여행지에 무사히 들어가 숙소를 잡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불안한 생각을 하다가, 여행을 즐겁게 하려고 온 것이지, 걱정하려고 온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니까 좋은 쪽으로 마음을 먹었다.
결국은 어떻게 될 것이라는 생각과 문제가 생기면 그때 가서 고민하자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어떤 일이든지 해결책은 있고, 시간과 돈이 더 필요할 뿐이라는 마음이 들자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일단 부딪쳐서 해결하는 것이다.
이스탄불에 묵었던 숙소를 떠나면서 주인과는 인사만 했을 뿐 아무런 인연도 가지지 못했다. 이곳에서는 누구도 나를 기억하지 못하고 내가 머물렀던 곳에도 흔적이 거의 남지 않았다.
이렇게 최소한의 흔적으로 다니고 싶은 마음 이이지만 적응이 잘되지 않는다.
그래도 좋은 인연을 만들 수도 있고 흔적이 남을 곳도 있을 수 있겠지만 억지로 만들거나 의도적으로 무관심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계속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유목민의 생활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너무 오랫동안 머물러 있던 습관이 있어서 이동하는 것이 귀찮아지고 새로운 것에 대해 호기심보다는 익숙한 것을 더 좋아한다. 아직은 내일이 기다려지는 것이 아니라 불안함이 앞선다.
내 몸속에 있는 유목민의 인자가 제대로 발현될 날이 올지 확신이 안 선다.
의사소통이 잘 안 되니까 더 그런 것 같고, 그러면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것으로 간주하고, 나만의 방식으로 다닐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카파도키아를 가기 위해서 사비한 공항에 도착했다.
어떻게 항공기를 탈까 걱정을 했는데 여행사에서 받은 예약한 종이 한 장을 보여주니까 곧바로 항공권과 교환해 주었다. 그리고 탑승한 게이트로 쉽게 찾을 수가 있었다. 공항에는 정확히 항공료만 지불했다는 증명서만 있으면 문제 될 것이 없는 것 같다.
불과 한 시간 만에 도착한 네브쉐히르공항은 황량한 들판에 홀로 있는 작은 공항이었다. 공항 주위는 아무것도 없고 이곳에서 다시 숙소가 있는 괴뢰메 마을로 이동해야 하는 것이다.
괴뢰메 마을 가는 차편은 여러 종류가 있었지만 가격이 차이가 많았다.
보통은 숙소를 정하고 그 숙소에 요청해서 셔틀버스로 가는 것이다. 그런 셔틀버스는 공항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숙소도 예약하지 않았으니 셔틀도 예약이 되지 않은 상태이다.
택시에 요금을 물어보니까 엄청나게 비쌌다. 승합 차가 호객행위를 하는 것에 응해 가격을 물으니 50유로를 달라고 해서, 30유로에 가자고 하니까 절대로 안 된다고 한다.
어떻게 할 방법은 없고 날은 저물어 가는데, 잘못되는 터키의 황량한 들판 외딴 공항에 남는다는 상상을 하니까 돈이 문제가 아니라 일단 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말없이 호객행위를 하는 운전자들을 구경했다. 마지막에 탈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어떤 운전자 눈치가 이상해서 괴뢰메 마을까지 얼마냐고 물었다. 그때도 영어는 “괴뢰메 하우 머치”였다. 운전자가 무엇이라고 대답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수첩과 펜을 내미니까 10을 적는다. 다시 “테 유로” 하니까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오케이하고 그 차를 타고 괴뢰메 마을에 왔다.
괴뢰메 마을에 도착했지만 예약한 숙소가 없으니까 직접 다니면서 숙소를 찾아야 하기 때문에 사람 많은 곳에 내렸다.
날은 저물어 어두운 밤에 위치도 전혀 몰라서, HOTEL 라고 써 놓은 곳을 차례로 들어가 “원 나이트 슬립 룸 하우 머치”를 하니까 방이 없다고 하는 곳이 많았다. 이날이 토요일이라 거의 예약이 된 것 같았다. 10집 이상 돌아다니다 보니까 갔던 집에 또 간 것이다. 그 집 주인이 불쌍하게 보였는지 여기저기 전화하더니 한 사람이 차를 가져와서 데려갔다.
아침에 일어나서 본 카파도키아의 괴뢰메 마을은 기암괴석이 있는 개구쟁이 스머프들이 살던 마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갖가지 모양의 기암괴석들이 자연의 신비와 그 사이에 삶의 터전을 마련한 인간들이 신기해 보이는 곳이었다.
이곳은 원래 박해를 받은 기독교인들이 들어와서 돌 속에 교회와 집을 짓고 살았던 곳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이슬람 사원 탑이 하나 보이고 있다.
벌룬이 유명한 곳인데 그것이 뜨는 때는 아침 일찍 한번 뜨지만 일어났을 때는 벌써 벌룬이 떠서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시간이었다.
ATV(산악 오토바이) 투어를 해 보기 위해서 신청을 하니까 숙소로 와서 픽업해 탈 수 있은 곳까지 데리고 갔다. ATV 투어 하는 장소와 사람들이 엄청 많았고 같이 투어 하는 행렬이 가히 장관이었다.
처음 해보는 것이었지만 시동을 걸어서 따라가니까 상당히 재미있었다. 포장되지 않은 도로를 먼지가 너무 많아서 잘 보이지 않지만, 앞사람만 따라가면 되는 투어이다. 세 번 휴식하는 곳에서 잠깐 쉬면서 기념사진도 촬영하고 간단한 음료도 있었다.
그중 한 곳인 러브 밸리는 작은 도자기를 팔면서 그 도자기에 본인들 이름을 넣어서 나무에 걸어 놓은 곳이 있었다.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이름을 써서 걸어 놓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하는 것 같았다.
그 도자기에는 세계의 젊은이들이 자기 나라 글로 적어 놓아 모든 나라의 글씨가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한글도 쉽게 찾을 수가 있었고, 그런데 각 나라 글씨는 다르지만 중간에 있는 하트 모양의 사랑 표시는 동일한 것이 눈에 띈다. 러브 밸리를 구경하는 젊은 남녀의 모습에서 희망과 사랑 그리고 행복이 보이는 것 같다. 그 젊은이들이 하나같이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지 얼굴엔 환한 웃음과 끊임없이 제 잘 거리고 있다.
아침에 본 괴뢰메 마을을 저녁에 다시 보니까 불빛이 너무 아름다운 야경이 되어 있었다. 이곳에서는 저녁에 지는 노을이 아름답다고 하는데 날씨가 좋지 않아서 볼 수 없었다.
다음날에는 레드 투어를 신청해서 승합차로 출발했다.
안내하는 가이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아듣지 못해서 풍광만 보는 입장이다. 처음에 간 곳은 우치 히사르 성채였다. 괴뢰메 마을에서도 올려다 보이면서 부근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큰 바위를 중심으로 작은 바위들이 많이 있었고 그 바위 속에는 아직도 사람이 사는 듯한 곳도 있었다.
여행은 날씨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오늘은 날씨가 여행하기에 적당치 않았다. 미리 예약을 했으니까 그냥 투어 업체에서는 관광객을 몰고 다니는 것이다.
바람이 너무 불어서 눈을 뜰 수가 없을 정도이고, 그 바람 속에는 모래와 먼지가 섞어 있어서 눈에 들어가면 한참을 고생했다. 사막의 바람이 이렇게 심한 줄은 상상을 못 했다. 온통 먼지바람이 부니까 시야도 가려서 멀리 있는 풍광은 전혀 보이지 않고 가까이 있는 것만 보였다.
스머프 마을에는 버섯 모양의 바위들이 다른 곳보다 더 예쁘고 바위 안에서 바깥을 바라본 풍광이 멋진 곳이 있었다. 이곳이 연인들이나 단체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장소였다. 아마도 성수기나 오늘같이 바람이 불지 않은 좋은 날에는 이 장소에서 사진 촬영 때문에 시간을 많이 필요할 것 같다.
야외 박물관이라고 소개하는 곳은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받아서 들어와서 숨어 살 곳과 예배할 장소를 만든 곳이 것 같다. 이런 바위산을 어떻게 파고 만들었는지
데브란트 계곡의 낙타 바위는 그 모양이 낙타와 비슷한 것 같이 보였다. 여기서도 바위들이 머리에 모자를 쓴 것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이것은 모자에 해당하는 부분의 바위는 조금 단단해서 풍화작용이 덜 일어났고 아랫부분의 바위는 바람과 세월이 함께 많이 깎아서 이렇게 버섯 모양의 바위를 많이 만든 것이다. 모양도 갖가지로 만들어 놓았다.
마지막에 간 곳은 어제 ATV 투어 때 온 러브 밸리였다. 같은 곳을 투어 방식이 다르니까 두 번씩이나 온 것이다.
어제 본 바위들이 오늘 다시 보니까 계곡 아래 보이는 바위가 버섯 모양 같지만 남근석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러브 밸리라고 이름했을 것 같다.
모래바람이 온종일 너무 불어서 구경보다는 눈에 모래가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데 온종일 신경을 쓴 날이었다. 카파도키아는 환상의 여행지라고 기대했지만, 모래바람이 험하게 불고 먼지가 시계를 가려 오늘은 전혀 환상이 아니었다.
그린 투어는 먼저 지하 동굴로 안내했다.
지하 동굴은 미로처럼 만들어져 있는데, 박해받은 기독교인들이 살기 위해서 만든 지하세계였다. 앞에 사람을 따라가지 않으면 위치를 잃어버리기 십상이고, 몸이 뚱뚱한 사람은 처음부터 출입을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장소이다. 날씬한 사람도 작은 통로를 지나자면 허리를 숙여서 앞사람의 엉덩이만 보고 가는 길이 많았다. 이렇게 답답한 장소도 살기 위해서, 신앙을 위해서 동굴을 파고 살았던 것이다. 박해받은 기독교인들이 만든 거대한 지하 도시가 이슬람 국가인 터기의 관광수입원이 되고 있다.
그린 투어의 이름에 걸맞게 계곡 투어가 있었다. 아흘라라 계곡은 바위가 절벽을 이루어서 그 규모가 웅장했다. 이보다 더 큰 계곡도 있겠지만 아직 내가 본 계곡 중에 가장 큰 계곡이다. 계곡이 깊으니까 그 밑에 흐르는 물도 강이 되어서 흐르고 있었다. 그 강을 따라서 트레킹 하는 코스이다. 어제는 바람이 많이 불어서 시야도 흐리고 좋지 않았는데, 오늘은 날씨가 쾌청했다.
그린투어의 마지막은 셀리메 수도원이다. 우뚝 쏟은 바위산을 파고 예배당과 수도하는 방들을 많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 옛날에는 아무런 표시도 없이 바위산만 깎아서 공간을 만들고 비밀스럽게 운영되던 수도원이었을 것이다. 수도원에서 내려다보면 사람들이 접근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 장소였다.
카파도키아의 바위는 보통 머리에 단단한 암석을 이고 있어야 관심을 받을 수 있다. 그냥 쏟아 오른 바위는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할 정도로 기암괴석이 많다.
머리에 기이한 형태의 바위를 이고 있어도, 혼자 서 있으면 주목을 받지 못하고, 여러 개 바위가 모양새 있게 서 있어야 주목을 받을 정도로 갖가지 모양을 한 바위들이 즐비한 곳이다.
며칠 동안 카파도키아에서 가장 유명한 벌룬 투어를 하려고 했지만 날씨가 맞지 않아서 하지 못했다. 마지막 날에는 현장까지 가서 취소가 되기도 했다. 카파도키아의 여행은 운이 따르지 않았다. 다음에 벌룬을 타러 다시 오라는 뜻인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