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슬기는 이름도 순하고 부르기도 좋다.
골뱅이나 고디라고 하면 이 지역에서는 무엇을 말하는지 쉽게 알아듣는다. 시골에서 말할 때는 다슬기란 말은 거의 쓰지 않는다. 다슬기라고 하면 나이 든 어른들은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는 분들도 있다. 골뱅이는 사투리이고 다슬기는 표준말이다.
민물에 사는 다슬기는 잡기가 쉽다. 움직임이 거의 없어서 눈으로 보이는 것을 줍는다고 해야 맞을 정도이다. 물이 있는 곳에는 거의 산다고 보아야 한다. 단 다슬기의 량의 차이와 크기가 다를 뿐이다.
비가 예보되어 있다. 하늘도 구름으로 잔뜩 찌푸리고 있으니까 곧 비가 올 모양이다.
이렇게 흐리고 비가 올 것이 예상되는 날에는 다슬기가 돌 속에 있다가 밖으로 나온다. 큰 물이 나기 전에 먹이를 찾으려는 나오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서 움직이는 것일 것이다.
앞 개울가를 가로질러서 보가 설치되어 있다. 비가 곧 내릴 것 같으니까 다슬기들이 일제히 보를 타고 위로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움직임이 느려서 가만히 붙어 있는 것 같다.
밖에서 보니까 제법 많이 붙어서 올라가고 있는 중이다. 자기 몸에 비해서 수십 배가 높은 보를 타고 올라가는 다슬기는 제법 굵은 것들이다. 일단은 가만히 접근해서 손으로 쓸어 담았다. 손이 닿기만 하면 다슬기는 본능적으로 빨판에 힘을 빼어서 밑으로 굴러 떨어진다. 놓치지 않으려면 한 번에 손으로 담아야 한다. 다슬기가 밑으로 굴러 떨어지는 것은 위험을 감지하고 잡히지 않기 위함이다. 보에서 건진 다슬기는 많았다.
보를 타고 올라가는 다슬기만 신경을 섰는데 올라가려고 준비하는 다슬기도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의 밑부분에 다슬기가 모여 있을 거라는 추측을 한 것이다. 다슬기는 위로 전진하는 습성이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생각하고 보가 시작되는 지점에 손을 넣어 보았다. 보이지는 않지만 무엇인가 한주먹씩 잡히었다. 손을 들어보니까 모두가 다슬기이었다. 다슬기를 줍는 것이 아니라 퍼 담는 격이다. 다슬기가 한 곳에 모여 있었다. 더 높은 곳을 가기 위해 준비하는 중인 것이다. 손으로 한주먹씩 망태기에 넣으니까 금세 불어 났다. 처음에는 가볕던 망태기가 갈수록 무거워지니까 시간이 가는 줄 모를 정도였다.
고향에 다슬기 주우러 자주 오는 자식들이 있다.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에 어디 가면 다슬기가 많고 비가 오기 직전에 많이 몰린다는 것까지 알려준 것이다. 주로 보 밑에 다슬기가 많지만, 특히 이 지역에서는 한절보 밑에 많다는 것이다. 한절보 밑에는 비가 오려고 날씨가 흐린 저녁 무렵이나 아침부터 비가 내리는 날에는 골뱅이가 몰리는 때이다. 많을 때는 줍는 것이 아니라 쓸어 담는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많이 줍는다. 이런 날은 부지런한 할머니들이 경쟁적으로 먼저 가서 줍니다. 일이 바빠서 못 가는 경우는 무척 아쉬워하는 것이다.
다슬기를 주어서 다슬기 삶은 물과 다슬기를 냉장고에 냉동시켜서 보관하다가 자식들이 오면 끓여 주는 것도 여기 사는 할머니들의 일상적인 일이다.
큰비 오기 전에 다슬기들이 몰리는 날과 시간만 잘 맞추면 대박을 만나는 것이다.
다슬기도 아프지 않은 할머니들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허리나 다리가 아파서 줍지 못하는 할머니들은 옛날에 자식들에게 보낼 수 있을 때가 좋았다고 회상하시며 아픈 것을 안타까워하신다.
여러 번 다슬기를 주어서 집으로 들어가니까 앞집에 사는 할머니가 “골뱅이가 많더냐”? 고 물었다. 궁금하기도 하고 다슬기를 줍고 싶은데 못하니까 아쉬움의 표현인 것이다. 그래서 한번 잡은 다슬기를 할머니를 드리니까 너무 고마워했다.
어느 지역에서는 다슬기 채취를 못하게 하기도 한다. 다슬기는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 도구를 이용하지 않고 손으로 잡으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다슬기 체취를 금한다는 팻말을 붙여 놓고 다슬기를 못 줍게 한다. 이유는 자기들이 다슬기 종패를 뿌렸다는 것이다. 종패를 뿌린 사실 여부는 알지 못하지만 권한 밖의 처사인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외지 사람들이 와서 다슬기도 다 주어 가고, 쓰레기만 버려서 환경을 오염시킨다는 것이다. 사실 지역주민들에게는 아무런 이익도 없다. 바쁜 농사철에 와서 놀다가 가는 것이다. 또 자기들이 주어야 하는 다슬기를 외지 사람이 주워가는 꼴도 보기 싫은 것이다.
주민들은 다슬기가 많은 곳을 안다. 그리고 다슬기가 나오는 시기도 알고 있다. 주민들은 야간에 가기도 한다. 다슬기는 야행성이기 때문에 야간에 많이 나온다. 외지 사람들은 야간에 가지는 못한다.
외지인들은 다슬기가 돌 속에 꼭꼭 숨어있는 한여름에 낮에 줍기 때문에 그렇게 많이는 줍지 못한다. 실제로 그 지역주민들이 다슬기를 대부분 줍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때문에 외지인이 오는 것을 그렇게 신경 쓸 일이 아니다. 그래도 외지 사람이 냇가에 붙어 있는 것이 기분 나뿐 것이다. 일종의 텃새라고 할 수도 있다.
외지에서 오는 사람들도 알고 보면 그 지역에 친척이 살고 있거나 연관이 있는 사람들이 온다. 아니면 예전에 살았던 고향이거나 부모님의 고향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와도 생태계가 파괴되거나 환경이 오염되지 않는다. 자기들이 사는 곳에 허락 없이 줍는다는 것이 기분 나쁜 것이다. 대체로 목소리 큰 몇 사람이 주도하는 것이다.
다슬기를 보호하지 않아도 다슬기의 번식력은 고갈까지 가지 않는다. 시골 인심만 사나운 곳이 되는 것이다.
매미소리가 들리고 물도 천천히 흐르는 냇가에서 아이들과 같이 다슬기를 주우면서 보내는 한가로운 오후는 생각만 해도 즐거운 일이다. 시골에 가서 다슬기 잡던 추억을 간직하는 것은 값진 추억이다. 이런 추억을 많이 가질 수 있게 자기 지역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반갑게 맞이해야 한다.
지역에서 다슬기를 주어서 먹고사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생계를 위한 것이지만 놀러 와서 몇 개 주어 가는 사람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이 줍는다. 오히려 이런 사람들이 도구를 이용해서 다슬기를 채취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다슬기를 줍는 새로운 방법을 알았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여름날에 깊은 물에 들어가서 손으로 더듬어서 다슬기를 줍는 맛을 아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까? 얕은 냇가에 돌 위에 붙어 있는 다슬기를 줍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묘미가 있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줍는 것이 아니라 손의 느낌으로 다슬기를 줍는 방법이다.
한낮에 햇볕은 뜨겁지만 물속에 몸을 담그니까 시원하고, 손으로 더듬어서 만져지는 다슬기는 보통 씨알이 굵은 것이다. 올여름에는 손으로 줍는 재미를 많이 느끼면서 이웃에도 다슬기를 나누어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