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자리

by 안종익


모내기가 한창이다. 넓은 논이 몇 번 이양기가 왔다 갔다를 하니까 갈아엎어서 평탄 작업이 된 흙바닥이 푸른 벼로 심어졌다.

예전에 모내기할 때 이 논 크기면 열 사람은 족히 한 줄로 서서 못 줄을 치고 반나절 이상은 심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종종걸음으로 바쁘게 점심을 머리에 이고 손에는 국 담은 주전자를 들고 왔을 것이다.

농사일 중에 가장 바쁘고 중요한 일이 모내기였다. 그랬던 모내기가 이제 이양기가 몇 번 왔다가 가니까 거의 심어지고 있다.

어머니는 이제 점심을 가지고 와서 모내기하는 것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냥 누워서 지켜보고 계신다.

오랫동안 밭을 하던 곳이 이제 경지정리가 되어서 논으로 변했고, 모친은 오래 병상에 계시다가 돌아가셔서 이 논 위 산 밑에 누워 계신다. 앞으로 여기 계속 계실 것이고 모친의 자리가 되었다.


지난 한식날에는 산소 주변이 허전한 것 같아서 회양목을 심었다. 회양목은 가뭄이나 척박한 땅에도 잘 자라는 나무이고 키가 작아서 묘를 가리지 않기 때문에 묘지에 심기에는 적당한 나무라는 것이다.

측백나무처럼 너무 크면 묘지에 그늘이 지고 모양을 내려면 손질도 해야 하지만, 회양목은 그렇게 조경할 필요 없고 자기들끼리 잘 어우러져 모양이 나는 나무라고 한다.

회양목은 나무 파는 집에 가도 있지만, 야생 회양목이 더 생명력이 있을 것 같아서 현동 뒷산의 서식지에서 많이 구해 왔다. 그래도 회양목이 부족할 것 같아서 일부는 나무 파는 집에서 구하기도 했다. 회양목만 심기보다는 시작하는 양쪽에는 큰 사철나무 두 그루를 균형 맞게 심어 놓았다. 그래도 자식들이 모친의 계신 곳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모양새를 낸 것이다. 그렇게 심어 놓은 나무들은 그동안에 비가 여러 번 오고 날씨가 더워지니까 주변에 잡초가 더 무성하게 자랐다. 심어 놓은 회양목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이 논으로 변한 밭에서 평생을 일하신 곳이다. 고추를 가장 많이 심었는데, 심을 때 힘들었고, 그 고추밭에 줄을 치는 것이나 말뚝을 박는 것은 거의 모친의 몫이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마도 고추를 따는 것이었다.

농사일 중에 고추 따는 것이 가장 힘든 일중에 하나다. 온종일 따도 끝이 없는 고추 따기는 허리를 숙여서 반복적으로 하기 때문에 허리가 끊어질 정도로 아픈 작업이다. 고추를 따고 난 다음에는 고추를 담은 포대를 건조하는 기계가 있은 곳까지 옮겨야 하는 일도 어머니에게는 힘든 일이었다.

힘들에 옮긴 고추는 다시 말리기 위해서 기계가 있는 집으로 가서 넣는 작업도 쉽지 않았다. 말린 고추는 병든 것과 성한 것을 구분해서 보관하지만, 이때도 가격이 좋아야 힘들게 일한 보람이 있고, 가격이 형편없으면 허리 아프게 일한 것이 모두 생고생만 한 것이다. 그렇게 해만 뜨면 와서 일하던 밭 옆에 조용히 누워 계신다. 이곳은 어머니의 자리인 것 같다.


고개를 들어서 건너 보이는 산도 어머니가 자주 올라갔던 곳이다.

산을 개간해서 산전을 만들었던 곳이다. 올라가면서 좌측과 우측에 계단식으로 산전을 할아버지가 만든 것이다. 어머니는 시아버지와 같이 밭을 매기도 하고 시아버지 점심을 갖고 자주 올라오던 곳이다. 시아버지는 부지런해서 하루 종일 일만 했던 분이다. 어머니는 지금 누워 계셔도 멀리 보이는 산전에 올라가던 일도 생각날 것이고 그곳에서 힘들게 밭매던 일과 부지런한 시아버지 밑에서 고생하던 것도 떠오를 것이다.

그때는 작은 공간만 있어도 산을 개간해서 밭을 만들었다. 그곳의 경사가 심해서 계단식으로 여러 개의 밭을 만들었지만, 한참이나 더 올라가면 위 산전이 있었다. 이곳에서도 여러 계단으로 밭을 만들어서 작물을 심었다. 여기서 일하다가 호랑이도 보았다는 소문이 나기도 했지만, 아마도 당황을 해서 큰 살쾡이를 보고 놀랐을 것 같은 추측이 든다. 어머니는 그 위 산전을 올라 다니면서도 힘든다는 마음보다 늘 바쁘게 살았었다. 그렇게 바쁘게 일하던 산전들은 이제 산이 되어서 흔적도 찾을 수가 없고 기억 속에 어느 위치라는 느낌만 있다.


어머니는 아침에 해가 뜨면 위 산전으로부터 아래 산전으로 햇볕이 내려오는 것이 보이는 곳이며 뒷산인 밤 시골에 완전히 해가 올라오면 온종일 햇볕이 드는 양지바른 곳이다. 뒷산이 바람을 막아주어서 아늑한 곳이기도 하다. 온종일 비추던 해는 건너 보이는 위 산전으로 넘어갈 때까지 평소에 일하던 곳을 바라보면서 누워계신다.

그때는 자식들도 학교에 갔다가 오면, 작은 일손이라고 더 하려고 밭으로 오라고 신신당부하고 윽박지르기도 했지만 그렇게 마음같이 말 잘 듣는 자식이 없었다. 그래도 기절이 고운 자식이 빨리 오고 고집이 있는 자식은 일 덜 하려고 늦게 오거나 아예 오지 않아도 어떻게 할 수 없어서 화를 내기도 했었다.

그렇게 숙여서 허리를 펴지 못하고 일 만하다가 늙어서는 허리가 아파 수술까지 받았지만 죽을 때까지 허리는 아팠다. 허리도 아팠지만 무릎은 너무 많이 써서 관절이 달아서 걷기가 불편하고, 나이 들어서 무릎이 아프지 않으면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늘 머릿속에 있었다.


죽으면 요즈음 대세라는 화장을 할 것 같아서 자식들에게 화장은 하지 말라고 부탁도 했다.

나이 들어서 믿기 시작한 종교에서 부활하면 아무래도 화장을 하지 않아야 부활할 것 같은 마음도 들어서 그렇게 부탁을 했다. 그래도 이곳에 묻힐 것이라고 생각은 못 했다. 막상 이곳에 누워 있으니까 옛날 일하던 밭이랑 산전이 보이는 곳이니 내 자리인 것 같기는 하다.

어머니는 이곳이 자기 자리라고 생각하면서 매일 주변에 농사하는 사람을 지켜보시고 있다. 바로 밑에는 부선 노인의 밭이다. 평생 일만 하지만 아직도 생생하게 걸어 다닌다. 허리는 굽기는 했어도 걸음걸이는 아직도 씩씩하다. 지금도 보통 사람보다도 더 농사일을 많이 하고 있다고 하니까 아마도 너무 움직여서 허리나 다리가 아플 시간을 안 주는 것 같다. 그 밑은 유명한 목사님의 밭으로 지금은 사과 과수원으로 다른 사람이 대신 키우고 있는데 목사님은 일 년에 한 번도 안 올 때가 많다. 위에는 평생을 같이 경쟁하면서 일하던 텃골댁의 논인데, 요즈음은 논에 오는 것을 못 봤다. 아마도 다를 사람에게 논을 빌려준 것 같다. 여기까지 농사하러 오기가 힘들 정도로 텃골댁도 아픈 곳이 많을 것이다. 내가 여기에 누워 있으나 집에서 아직 누워 있는 친구들과 지금 생각하면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산소를 쓸 자리를 여러 곳을 생각했다.

가까운 친척이 가지고 있는 밭이 거의 산이 되어가고 있으니까 이곳에 모시려고 허락을 구했다. 허락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다른 구실을 대면서 안 된다고 했다. 밭주인이 안된다고 하니까 어쩔 수가 없었다.

다음에 물색한 곳이 역시 친척의 땅이지만 다른 사람이 산소를 쓸려고 부탁을 했지만 거절한 적이 있는 땅이 있었다. 이곳도 거절당할 것이라는 생각 했지만, 급하니까 부탁을 했다. 의외로 허락을 받았다.

그런 과정에서 이곳도 예비로 생각한 곳이었다. 옛날 어머니가 일을 하던 밭둑이었는데 산 쪽으로 터를 넓히면 산소 한자리가 날 것 같아서 지관에게 물어보니까 가능하다는 하다고 했다. 그래서 두 곳을 놓고 고심하다가 이곳을 택했다. 그러니 원래 이곳은 우연히 찾았지만 어머니의 자리였던 것이다.


오늘은 모내기하는 날이다. 논에 모가 심기는 것도 보았지만, 누워 계신 어머니 산소도 여러 번 보았다.

아마도 누워 계시지만 “오늘 모내기하는구나” 하면서 한 해 농사 가장 힘든 일을 한다고 바라보면서 웃으시는 것 같다. 내년에도 모내기하는 것을 어머니의 자리에서 보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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