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울가에 있는 작은 돌 밑에 양손을 넣으면 무엇인가 손에 만져지는 것이 있다. 물고기였다.
그 물고기의 대가리 부분을 손으로 잡아서 나오면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은 것이다. 이렇게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는 것을 “손재비”로 잡았다고 했다. 물고기가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아서 손으로 잡았다가 빠져나가는 경우도 많았다. 어릴 때 누구나 시골에서 한 번쯤 해 봤을 것이다. 그때는 거의 돌마다 물고기가 들어 있었다. 그만치 물고기가 흔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손재비”를 하다 보면 돌 밑에 붙어 있는 꾹지나 꺽지 알들도 종종 보았다. 그때 그 돌은 다시 있던 그대로 엎어 놓았다. 알에서 물고기 새끼들이 많이 부화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고기를 불러 모으기 위해서 주변의 돌을 날라다가 물속에 돌무더기를 쌓아 놓기도 했다. 물고기 집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면 그 돌무더기에 물고기들이 많이 들어와 살았다.
그러면 반디를 대고 돌을 조금씩 옮기면서 물고기를 잡는 것이다. 나이가 제법 먹은 형들이 주로 했는데 꼬마들에게는 그것도 구경이 되었다. 돌도 같이 들어주고 도망가는 물고기가 어디로 가서 어느 돌에 들어갔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그저 물고기 잡는 것이 구경이었다. 그때는 돌 속에서 물고기가 움직이는 것이 환히 보였다. 어떤 때는 큰 물고기를 보면 난리 난 것처럼 떠들고 어디로 가는지 눈들이 동시에 따라다녔다. 그렇게 흔하고 친했던 물고기가 올해는 잘 보이지 않는다.
좀 더 커서는 낚시를 했다. 낚싯대가 대나무가 아니라 그냥 곧은 나무면 어떤 것이나 낚싯대가 되었다.
주로 야산 어디나 있던 노간주나무가 가늘면서도 길어서 낚싯대로 많이 이용되었다. 낚싯줄과 낚싯바늘만 있으면 낚시를 했는데, 찌는 물에 가라앉지 않는 수수깡이었다.
그 시절에는 집에 파리가 많아서 집집마다 파리약을 놓아두면, 그릇에 죽은 파리가 그득했다. 그 파리를 대충 가져다가 낚싯바늘에 끼우고 물에 던지면 곧바로 피라미가 올라왔다. 그마저도 준비가 안되면 냇가에 가서 다슬기를 주어다가 돌로 깨어서 미끼로 쓰기도 했고, 가장 신경 써서 마련한 미끼는 돌 속에 들어있는 물 벌래였는데, 물벌레는 넣자마자 물고기가 올라올 정도였다. 여름에는 메뚜기나 풀벌 래들도 좋은 미끼였다.
그렇게 흔하던 물고기가 지금은 많지 않다. 여름이 오면 물고기가 지금보다 많아지겠지만 현재는 물고기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돌 속에 숨어 있는지는 모르지만 예전처럼 많이 다니지 않는다.
물고기를 노리는 천적이 많아진 것도 그 원인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천연기념물로 보호하는 수달은 하루에 물고기를 자기 무게의 1/6을 먹는다고 하니까 그 양이 엄청난 것이다. 수달이 먹는 고기는 보통 큰 고기이고 왕성히 알을 놓고 번식이 가능한 물고기만 먹는 것이다. 아무리 민물고기 먹이 사슬의 상위에 있는 물고기도 수달은 사냥감이다. 수달에게 보이면 어떤 큰 물고기도 도망가지 못하면 먹잇감으로 변하는 것이다. 수달은 잠수해서 물고기를 따라가면서 사냥을 하기 때문에 돌 속에 그냥 숨어 있거나 수달과 만나지 말아야 한다.
요즈음은 새로운 물고기의 천적이 등장했다. 원래 큰 강에서 보이던 검은 새 가마우지가 산골에도 등장했다. 물고기 입장에서는 색깔도 검은색으로 저승사자와 같은 새이다. 이 가마우지도 물속으로 잠수를 해서 물고기 사냥을 하기 때문에 너무 큰 고기가 아니고 적당한 물고기나 피라미가 그 대상이다. 가마우지는 잠수도 하지만 날개를 펴서 물고기를 유인도 하는 수법을 쓴다. 검은 날개로 펴서 그늘을 만들어서 그곳으로 물고기가 오면 한 번에 단번에 덮쳐서 잡아먹는 것이다.
가마우지 옆에는 두루미도 물고기를 지켜보고 있다. 두루미는 긴 다리와 긴 목을 이용해서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가 물고기가 사정거리에 들어오면 단번에 낚아채는 방법을 쓰고 있다. 물속으로 잠수를 못하니까 오랫동안 마치 물속에 있는 나무처럼 기다리다가 사냥을 하니까 그렇게 수달이나 가마우지만큼 잘 잡지는 못한다. 주로 잘 돌아다니는 피라미를 사냥한다.
천둥오리들도 물 위를 떠다니다가 밑으로 지나가는 물고기가 있으면 잠수해서 잡는 방법을 쓰고 있다. 이 청둥오리는 그 숫자가 상당히 많다. 많은 오리가 한 번에 내려서 사냥을 하다가 다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 사람이 낚시나 반디로 물고기를 잡지 못하는 곳이 어도이다. 물고기는 보통 위로 올라가는 습성이 있다. 위로 가다가 보면 보가 가로막혀서 이동이 안되는 경우가 많지만, 지금은 대부분 보에다 어도를 만들어 놓았다. 그런 곳에도 새들은 기다리다 힘들게 올라오는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특혜도 누리고 있다. 어떤 분은 과장해서 돌 속에 잘 숨거나 돌 밑에서 사는 물고기만 안녕하고 나머지는 모두 수난이라고 한다.
그래도 물고기가 많이 보이는 곳도 있다.
동네 앞에 있는 개울가에 물고기가 다른 곳보다 많이 보인다. 사람의 왕래가 잦으니까 수달이나 가마우지가 오지 못하는 것이다. 원래 물고기를 가장 많이 잡는 것은 사람이니까 물고기의 천적은 사람이 가장 으뜸이다. 사람이 많이 오가는 곳에는 원래 물고기가 많지 않았다. 물고기는 이제 가장 큰 천적의 보호를 받은 꼴이 되었다. 새들도 마을 앞에 물고기가 많다는 것을 아는 것 같다.
수달이나 가마우지는 아직 사람이 무서워서 마을 앞개울가에 자주 오지는 않지만 천둥 오리나 두루미는 자주 나타난다. 이른 새벽에 보면 한때가 와서 물고기를 사냥하다가 사람이 나타나면 도망을 가는 것을 아침마다 볼 수 있다.
예전에는 솥단지 하나와 고추장만 가지고 냇가에 가면 매운탕을 끓여 먹었다. 물고기는 흔해서 잡을 걱정을 해 본 적이 없다. 일단은 솥을 걸고 흐르는 냇물의 중간쯤의 물을 담아다가 끓이면서, 냇가 옆에 있는 호박도 따고 고추도 따서 넣고, 파나 마늘도 들판에서 조달했다. 깻잎도 야생에서 자란 것을 넣어서 끓였다. 냇가는 큰 물이 내려갈 때 떠내려온 마른 나뭇가지가 많아서 푹 끓일 수가 있지만, 화력이 좋아서 넘치는 경우가 많아 솥뚜껑을 열어 놓고 끓였다. 그러고는 끓는 솥 주변에 둘러앉아서 서로 더 먹으려고 부지런히 숟가락질을 했었다. 그러고는 어느 정도 큰 것을 다 건져 먹고는 남은 매운탕에다가 라면이나 국수를 넣어서 다시 한번 끓여 먹었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특히 더운 여름에는 멱도 감으면서 먹으니까 그 맛이 일품이었다.
그렇게 흔하고 많던 물고기가 잘 보이지 않는다.
사람보다 물고기를 더 필요한 동물이 많아지니까 그런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사람은 안 되지만, 수달이나 새들은 물고기를 안 먹으면 살 수 없기 때문에 오늘도 물고기를 찾아다니는 것이다. 새들이나 수달은 물고기가 어디 많은지 알면서 잡는 기술도 뛰어나다. 그래도 물고기를 잡아서 비축하지 않기 때문에 매일 바쁘게 물속을 헤집고 다니는 것이다.
어느 것보다 오래 보아 왔고 늘 같이 보던 물고기가 잘 보이지 않으니까 크게 변한 것 같은 기분이다. 원인이야 있겠지만 예전처럼 물고기가 많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물고기를 꼭 잡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추억과 옛 생각이 나게 하는 낯익은 것들이니까 소중하다. 안 보이니까 더 소중한 것을 느낀다.
개울가에 아이들이 모여서 물고기를 잡으면서 떠들던 것은 추억의 풍경이다.
또래들이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는 진지한 표정과 놓친 고기를 아쉬워했던 것이 추억의 모습으로 기억된다. 그때는 먹기 위해서 물고기를 잡은 것이 아니라 잡는 재미로 잡았던 것이다. 큰 물고기를 잡다가 놓친 것은 몇 달간 아쉬워하면서 엄청나게 부풀려서 이야기하기도 했다. 나이 들어서도 그때에 물고기 잡던 이야기를 하면 동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가끔은 그때의 물고기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아서 한참을 생각하기도 한다. 지금은 물고기 잡던 추억보다는 잡아서 끓여 먹던 매운탕이 더 생각나기도 한다.
이른 봄에는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들판에 옹기 종이 모여 앉아서 나물 뜯는 아낙들의 모습과 여름에 냇가에 멱 감으면서 장난치면서 떠들고 손으로 물싸움하는 아이들 광경이나 가을에 황금으로 변한 들판에 메뚜기 따라 뛰어다니는 오누이들의 웃음과 더불어서 눈 내리는 겨울날에 분주히 꼬리 치면 뛰어다니는 강아지와 아이들 그림은 정답고 아늑한 기분이 든다. 그런 풍경과 어울리는 것이 냇가에서 물고기 잡던 추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