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열고 보니

by 안종익


<창문을 열고 보니>

날씨가 흐릿한 것이 무언가 올 것 같은 분위기이다.

겨울이라 눈이 오는 것이 보통이지만, 날씨가 포근한 것을 보니까 비가 올 것 같다. 겨울비는 잘 들어보지 못한 단어이다. 추울 겨울에 비가 온다면 날씨의 변동이 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골의 분위기가 조용하고 차분한 것이 비까지 오면 쓸쓸할 것 같다. 지금은 창문 너머 마당에 나뭇가지가 움직임이 전혀 없는 것을 보니까 바람도 한 점 없는 흐린 날의 수채화 같다.


저 멀리 보이는 도로에는 차들이 많이 오가고 있다. 작은 농사용 화물차가 주로 지나가고 승용차도 자주 지나간다. 멀리 떨어져 있어서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 도로는 원래 우리 집 앞으로 지나갔다. 예전에 도로를 낼 때는 보통 마을을 꼭 거치도록 했다. 그렇게 마을을 거쳐야 마을이 발전되고 편리한 것으로 인식했던 시절이었다. 마을을 거치는 방법은 마을 앞이나 중앙을 관통해서 거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 집 앞의 도로는 마을을 관통해서 만든 도로이고 우리 집은 마을 중간에 있다.


그러던 것이 차량이 많아지고 소음도 심해지니까 마을을 중간을 통하던 도로를 마을 옆으로 길을 만들어서 우회 도로를 내는 것이 대세가 되었다.

대부분 마을은 우회 도로가 만들어지고, 시간도 단축되고 마을에 소음이나 사고의 위험도 줄었다. 그런데 우리 집 앞 도로는 오랫동안 우회 도로가 만들어지지 않아 차량이 많아서 위험했다. 우회 도로의 대상지의 땅 주인이 땅을 팔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그 땅들은 법이 허용하는 최대의 시간을 끌고서 땅이 수용되었고, 수년이 지나서 우회 도로가 생긴 것이다. 저 멀리 보이는 우회 도로에 지나는 차량이 지금 우리 집 앞으로 지난다면, 지금 이 창문을 열어 놓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우회 도로를 봐도 차량이 너무 많이 다닌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것 중에 무쇠솥이 보인다. 엄마가 만들어 놓은 것이다. 큰 무쇠솥을 걸어 놓고 아궁이는 시멘트로 아주 잘 만들어 놓았다. 큰일을 할 때 쓸 수도 있고, 나물도 많이 데칠 때 요긴하게 썼을 것이다. 옛날 같으면 염소나 돼지를 잡아 삼거나 고아서 먹으려고 만들었을 것이다. 모친이 만들고 몇 번이나 사용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앞으로 사용할지 의문이다. 그래도 약초가 되는 나무나 풀을 넣고 다린다든지, 메주를 쑬 일이 있으면 요긴하게 쓸 것이다. 지금은 얼마나 쓰지 않았는지 솥이 온통 녹으로 덮여있다.


옛날에 건조기가 있던 자리에는 지금은 빈 공간이다. 그 건조기 집은 그대로 있는데, 그 슬레이트 지붕 처마 밑에 양미리가 두 두름 달려있다. 지난 읍내장에서 여동생이 내가 좋아한다고 사 온 것이다. 겨울철이라 바깥에 보관하면 될 것 같아서 거기에 매달아 놓았다. 처마 끝이라 고양이들도 입을 대지 못하는 곳이다. 고양이는 나지막한 처마는 점프해서 먹이를 따 먹기도 하니까 상당히 높아야 안전하다.

아마 고양들은 생선 냄새를 맡고 왔다가 높은 곳에 달린 양미리를 보고, 약이 올라서 그 주인을 “고약한 놈”이라 욕했을 것이다. 양미리는 겨울철 별미이다. 숯불에 구워 먹는 양미리는 지금이 제철이다. 그것도 알이 꽉 찬 양미리는 엄청 맛이 있었다.


건조기 집 처마 밑에는 양미리 외에 다른 것도 걸려 있다. 처마 기둥은 사각으로 된 나무이다. 창문 안에서 바라다보이는 처마 기둥 상단부에는 시계가 달려있다. 방 안에서 창문만 열면 보일 수 있도록 달아 놓았다. 방안에서 시간을 볼 수 있는 적당한 장소에 시계가 자리 잡은 것 같다.

처마 기둥의 앞면에는 두 가지가 달려있다.

하나는 엄마의 문패이다. 그 문패는 그 자리에 오래전에 있었다. 엄마가 살아계실 때 달린 것이다. 그 문패는 그대로 계속 달아둘 생각이어서 앞으로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문패 밑에는 방 안에 있던 성경 구절을 쓴 현판이 달려있다. 방안을 정리하면서 이 자리로 밀려난 것이다.

평소에 모친이 좋아하고 바라던 성경 구절이었을 것 같다.

욥기 8장 7절에 나오는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구절이다.

자식들이 객지에 나가서 본인이 도와주지는 못하지만, 자식들이 잘되라고 늘 기도하고 바라던 엄마의 마음과 같은 구절이다. 그런 마음이 통했는지 열심히들 살고 있다.

창문 밖에는 어느새 비가 오기 시작했다. 겨울비가 차분히 내리고 있다. 세상이 고요하다. 아직도 멀리 보이는 도로에는 부지런히 차들이 다니고 있다. 창문 밖 담 너머로 노인들이 몇 분 지나가는 것 외에는 지나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다. 겨울비가 내리니까 멀리 보이던 비봉산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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