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조끼>
담장 너머로 노란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하나둘 지나간다. 담장은 대문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적당한 높이로 둘러쳐져 있다. 키가 큰 사람은 지나가면 담장 너머에서 집안이 보이지만, 키가 작은 사람은 겨우 보일 정도이다. 그래서 지나가면서 간혹 담장 너머로 집안을 들여다보면서 가는 사람도 있다.
오늘도 노인들이 일자리가 있는 날인 것이다. 노란 색깔을 보기만 해도 노인들이 무엇을 하러 가는지 연상이 될 정도로 노란 조끼의 의미를 누구나 안다. 노란색으로 통일해서 입은 조끼는 천천히 뒤뚱뒤뚱 걸어가는 노인들의 모습이 멀리서 보면 한 무리의 병아리 떼 같기도 하다.
노란 조끼는 나라에서 노인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 마련한 사업으로 일정한 나이가 된 노인들이 일하러 나올 때 지급한 조끼이다. 일하러 나오는 날 그 노란 조끼를 입고 나오니까 노인 일자리라는 말보다 노란 조끼라고 더 쉽게 불린다.
한 달에 10일을 일하러 나오고, 보통 오전 9시부터 정오까지 하루 세 시간을 일한다. 일의 내용도 자기 마을 청소를 하거나 환경 정비가 주로 하는 일이다. 그러면 한 달에 3십만 원 가까이 수입이 들어온다. 노인들로서 힘든 일 하지 않고 일하러 나오는 시간 대비해서 수입이 좋은 편이다.
노인을 위해서 정부가 마련한 혜택이라 할 수 있고, 정부는 이러한 세금으로 만든 일자리도 고용 창출의 지표로 잡을 수가 있어서 일자리 더 만든 치적이 될 수 있다.
차라리 그냥 돈을 노인들에게 나누어 주면 더 솔직하지만, 그래도 명분을 찾아서 일자리도 만들고 생색을 내는 방법이 노란 조끼 일자리이다. 그래서 출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고 나와서 하는 일은 어정거리는 일이다.
노란 조끼 어른들이 나오는 장소는 마을마다 정해져 있다. 더위나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장소이고, 이곳에 모여 있으면 담당하는 사람이 와서 출석 여부를 확인하고 작업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 처음에는 마을 청소도 하고 환경도 정비했지만, 지금은 정오가 될 때까지 앉아서 잡담이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지만, 모든 노란 조끼가 그런 것은 아니고 끝날 때까지 열심히 하는 곳도 있을 것이다. 노란 조끼들이 거리를 청소하는 모습보다는 여름이면 그늘에서, 겨울이면 바람 막아주는 주는 담 밑에 모여 앉아 잡담하는 모습이 훨씬 익숙하다.
대신에 노인들의 정보교환 장소도 되고 서로 건강 상태를 살피는 기회도 된다. 자랑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자랑도 하고 억울하다고 생각되는 일이 있으면 하소연하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아직도 농사일을 많이 하는 노인은 노란 조끼 입는 날이 쉬는 날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출석 장소에 나오면 매번 친한 사람들과 붙어 있어서 노인들의 친소관계가 구분되기도 하지만, 주로 친척이나 사는 집이 서로 가까운 집 노인들끼리 모인다. 다른 사람의 뒤 담화를 하더라도 그 사람과 친한 사람이 있으면 조심하기도 하고, 그런 뒤 담화도 같은 친척이나 친하면 편을 들어서 언성을 높이고 다투는 일도 흔하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뒤 담화를 하면 그 사람 귀에 들어간다는 것을 잘 아는 나이를 지난 노인들이니까 뒤 담화는 안 하는 편이다. 그래도 낯선 이방인에 대해서 말할 때는 이구동성으로 성토하는 경향이고, 동네에 일어나는 일들은 거의 이곳에서 전파된다.
노란 조끼를 입고 출근하는 노인들의 걸음걸이도 제각각이다. 칠십쯤 되는 노인들은 아직도 허리가 약간 굽기는 하지만 지팡이 없이 걸어가고, 물론 건강관리를 잘한 분은 허리가 굽지 않았지만 그런 노인은 거의 없다.
팔십이 넘는 노인들은 유모차를 앞세우고 밀고 출근하기 때문에 걸음걸이가 느리다. 이렇게 노란 조끼가 출근을 완료하면 동네는 거의 빈집이 된다. 집안에 사람이 있으면 거동이 불편한 환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올해 구십 두 살인 노인도 열심히 노란 조끼를 입고 출근한다. 아직도 지팡이조차도 짚지 않고 출근하는 것을 보면 무척 건강한 사람이다. 이십 년이나 젊은 사람도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데 이 노인은 아직도 지팡이가 없는 것 같다.
다른 구십인 노인은 걸어 다니기에 지장이 없지만 노란 조끼를 입지 않는다. 자식들이 못 나가게 하고 본인도 나이가 구십이 넘어서 나가는 것은 체면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이가 많아도 노란 조끼를 입고 출근하는 것은 건강하기 때문에 자랑스럽지만, 그 나이에 돈이 그렇게 욕심을 낸다는 흉이 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 할머니 자식들은 노란 조끼를 입지 않도록 권할 필요는 있다. 그래도 돈보다 노인이 젊은 사람과 어울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그 나이는 집에서 소일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대체로 노란 조끼를 못 입으면 환자이거나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이다. 노란 조끼를 입는 것이 아직도 살아있다는 증거가 되고 그래도 건강하다는 말이 된다.
노란 조끼만 입고 갔다가 놀다 오면 돈 준다고 말하던 엄마가 생각난다.
한평생 같이 살아온 사람들과 같이 노란 조끼를 입고 싶었지만, 엄마는 몸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노란 조끼를 입고 출근하는 노인들을 볼 때마다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엄마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제는 출근하는 노란 조끼도 볼 수 없는 곳으로 가셨다.
오늘도 노란 조끼를 입고 출근하는 노인들이 담장 너머로 지나간다. 키가 커서 보이는 노인도 있고 키가 담장 위로 머리만 약간 보이는 노인도 있고 겨우 모자 끝만 보이는 노인들도 지나간다. 노란 조끼를 그렇게 입고 싶어 했지만 입어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분도 있다. 지금 지나가는 노인들은 그래도 축복받은 노란 조끼 입은 노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