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슬기 줍는 할머니>
한여름 햇볕은 열기가 너무 심해서 걸어가면 지열이 얼굴로 올라와서 뜨거울 정도이다. 이런 날은 시골길도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다.
지열이 올라오는 길을 따라서 윗마을을 가다 보니까 냇가에 사람이 보였다. 한낮 더위에도 물에 들어가 허리 숙여서 다슬기를 줍는 것 같았다. 머리에는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고무줄이 헐렁한 바지가 엉덩이에 걸쳐 있는 것이 늘 굽은 허리로 유모차를 밀고 다니는 할머니이다.
그 할머니는 아침 일찍 들에 가기 위해서 유모차를 밀고 가는 모습이나 냇가에 들어가 다슬기를 줍기 위해 허리 굽힌 모습은 비슷했다.
할머니는 집에서 가만히 쉬는 것보다 다른 할머니들이 주워가기 전에 하나라도 더 주워서 냉장고에 넣고 싶은 마음이 있어 땡볕에 다슬기를 주우러 나온 것이다. 다슬기를 작년에 많이 줍던 곳에서 올해는 많을 것으로 기대하고 나온 것이다.
이 계골에서 할머니보다 다슬기를 많이 줍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다슬기가 많이 나오는 곳과 때를 알고 있다. 이 할머니는 농사일이 한창 바쁠 때도 다슬기가 나올 시기가 되면 일을 하지 않는 한낮이나 저녁때 주우러 나왔다.
할머니가 주로 가는 곳은 교회 밑이나 한 절보 밑인데, 교회 밑 냇가는 지난주 여러 날 내려가서 주었다. 거기도 벌써 사람들이 많이 주워서 작년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주워서 냉장고에 넣었다. 한 절보 밑은 수로 작업으로 물이 넘치지 않아 이제 다슬기를 보 위로 올라가서 주워야 할 것 같다.
다슬기를 주우면 시간이 언제 가는 줄도 모르고 물속에 다리를 담그고 있으니까 더운 것도 잊고 줍는 것이다. 그래서 한낮에도 등허리는 뜨겁지만 물 안이라 견딜만하다. 할머니 오랫동안 이곳에 다슬기를 주워 왔기 때문에 어디는 어느 때 가면 많은지 훤히 알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할머니가 다슬기를 주우면 그곳이 많은 곳으로 생각한다.
냉장고에 가득 들어 있는 다슬기는 아직도 할머니가 살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다슬기를 주워서 일단 삶아 그 알을 바늘로 빼내어 냉동실에 넣어 놓으면 필요할 때에 녹여서 국도 끓이고 귀한 손님이 오면 묻혀서 내놓기도 한다. 그 옛날에는 그냥 삶아서 그 자리에서 알을 까먹었지만, 냉장고가 나오고부터는 알은 냉동실에 오래 보관할 수 있어서 시간이 나면 주우러 가는 것이다. 다슬기 알도 좋지만 삶은 다슬기 물이 좋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물도 버리지 않고 같이 냉동실에 들어간다.
이렇게 들어간 다슬기 삶은 물과 알은 할머니 냉장고 냉동실을 거의 차지한다. 자식들이 많아서 다슬기 물 한 병과 알을 하나씩 주어도 다섯 개씩 넣어야 한다. 명절에 집에 오는 자식들에게 주는 것이 할머니의 즐거움이고 보람이다. 이 다슬기는 어디서도 구하지 못하는 고향의 맛이고 할머니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자식들은 모두가 할머니 다슬깃국 맛에 길들려 져 있어서, 고향 와서 다슬기국 먹고 가지 않으면 섭섭해할 정도로 그 맛을 그리워한다.
다슬기국을 먹으면서 자식들 입에서 “이 맛이냐”라는 말을 할 때 할머니는 사는 보람도 느끼는 것이다.
할머니는 나이가 들면서 다슬기를 주우러 가면 위험하니까 자식들은 냇가에 가지 말라고 하지만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내가 가지 않으면 누가 주워 갈 것이고 그럴 때면 공연히 손해 보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남들이 오지 않는 한낮에 물 위에 허리 숙여 있는 것이다. 할머니가 할 수 있는 가장 자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오늘도 점심을 한술 뜨자마자 다슬기 있는 곳을 찾아 유모차를 앞세우고 한낮의 지열을 받아 가면서 걸어간다.
집에서 나와 골목을 빠져나왔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한참을 밀고 가니까 옛날 할머니 논이었던 칠성바위 논이 나왔다. 벼가 유난히도 푸른 것을 보니까 아마 비료를 많이 준 것 같다.
옛날에는 한걸음에 갈 수 있는 곳이지만 지금은 유모차를 밀고 허리는 낫처럼 휘어져 지면에 가까우니까 빨리 갈 수가 없다. 그래서 보이는 거리지만 무척이나 멀어 보인다. 그래도 이렇게 걸을 수 있으니까 다행이라는 생각도 한다.
할머니보다 여섯 살 아래였던 종 동서는 지난해 마지막 날 이 세상을 떠났다. 같이 사는 동안 서로 의지하면 살았지만, 다슬기 줍는 것은 경쟁자였다. 서로 많이 있는 곳을 알기 때문에 먼저 갈려고 매년 눈치 보기도 했다.
그래도 종 동서는 할머니 어장인 교회 밑에는 할머니 때문에 다슬기 주우러 잘 오지 않았다. 그러던 종 동서가 떠나고 나니까 다른 사람들이 더 극성으로 줍는다.
할머니가 생각한 곳에 가니까 내려갔던 길은 풀이 너무 우거져서 들어가지는 못하고, 다른 곳으로 내려갈 길이 있는지 잘 펴지지 않는 허리를 들어서 살펴보았다. 양수기로 물 푸기 위해서 냇가로 내려가는 길을 만들어 놓은 곳이 보였다. 그쪽으로 가서 유모차는 입구에 놓아두고 다리를 먼저 내리고 손으로는 땅을 짚으면서 굽은 허리는 땅을 보면서 한발씩 내려갔다. 자식들이 보았으면 다시는 다슬기를 못 줍게 할 모양새로 기어 내려가지만 그래도 물가에 도착했다. 한낮이라 돌 위에 나와 있는 다슬기는 거의 없었다. 돌을 들고서 그 밑에 있는 것을 주어 보니까 이곳도 벌써 누가 다녀간 것 같다. 옛날 같으면 많이 주어겠지만 오늘은 양파 자루 밑만 채울 정도밖에 줍지 못했다. 이제 들고서 유모차가 기다리는 곳으로 올라가야 한다. 올라갈 때는 손을 먼저 올라갈 곳을 짚고서 기듯이 한발 한발 올라왔다. 다시 유모차를 앞세우고 집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할머니가 다슬기를 못 줍게 하는 것이 늘어만 간다. 냇가의 축대가 나날이 높아만 가니까 내려가기가 쉽지 않고, 다슬기 철에는 풀이 우거져 한 키가 넘으니까 들어가기 힘들고, 특히 할머니가 걱정되어서 자식들이 안부 전화 올 때마다 물에 들어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대답은 알았다고 하지만 수화기를 놓으면 잊어버린다. 그래도 자식들의 눈치가 늘 보인다.
다섯 살이나 아래인 옆집 할머니는 집에서 나와 유모차를 밀고도 겨우 다니는 것을 보면, 할머니는 아직은 다슬기를 주울 수 있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한다. 다슬기 못 줍는 날이 오겠지만 할머니는 그날을 생각하기 싫다. 한여름의 땡볕은 다슬기 할머니에게 별로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