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구이

by 안종익

<고등어구이>

고등어를 국민 생선이라고 한다.

고등어는 값이 싸고 누구나 쉽게 먹을 수 있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국민이라 붙여진 이름은 우리 대다수가 좋아하는 대표적인 것에 붙인다. 그 대상이 사람이나 물건 무엇이든지 붙을 수 있다. 바닷고기 중에서는 고등어가 국민이란 이름을 차지했다.

고등어는 모두가 좋아하는 생선이고 누구나 먹어 본 생선이다.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생선이다. 어릴 때부터 먹어온 생선으로 그 맛이 담백하기도 하고 씹히는 식감이 부드럽지만, 비린내도 나는 생선이다.


가요에도 나오는 고등어는 엄마를 생각나게 하는 생선이다.

김창완의 “어머니와 고등어” 노랫말에 “고등어가 소금에 절여져 있네” “어머니는 고등어를 구워주려 하셨나 보다”와 “나는 내일 아침에는 고등어 구일 먹을 수 있네”라는 말에서 친숙한 생선이라는 느낌과 엄마의 정이 생각난다.

젊은 시절에 이 노래를 들었을 때는 별로 친숙하다는 느낌보다는 고등어도 노래의 소재가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지만, 지금은 어머니는 고등어를 구워주려 하셨나가 떠오르니까 아련한 추억의 생선이 된다. 엄마가 찬 바람 불 때 부엌 아궁이에 장작을 때고 난 뒤에, 빨간 숯불에 구워낸 고등어는 기름이 흐르고 그 맛이 최고였다. 고등어 굽는 냄새는 집 앞에까지 펴졌다. 그때 구워 먹는 고등어는 얼간을 한 고등어였다. 또 엄마가 만든 가을 무에 고등어를 토막 내어서 넣고 자작하게 조림한 고등어 조림은 된장을 넣어서 비린내를 잡고, 매콤한 청양고추만 넣으면 이보다 더 맛있는 반찬은 별로 없었다.


군 생활을 할 때는 어느 시점에는 고등어가 계속 식판에 올라오는 경우가 있다.

고등어가 너무 많이 잡혀서 군대에 납품을 많이 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값이 싸니까 부대 인사계가 시장 가서 매일 저렴한 고등어만 사 오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때는 고등어를 기름에 튀겨서 나온다. 맛있는 고등어이지만 이때는 지겹기도 했다.


고등어가 많이 잡히면 시장 어물전에 가도 고등어가 가득하고, 생선을 이동하면서 파는 트럭에도 고등어만 가득 싣고 와서 팔 때가 있다. 이때는 만 원이면 20마리 이상을 주기도 했다. 그러다가 고등어가 안 잡히면 엄청 값이 비싸져서, 제사상에는 꼭 올려야 하는데 어머니들을 곤란하게 만드는 경우도 많았다.


우리는 내륙에서 자랐기 때문에 바다가 멀어서 생선 중에는 고등어를 가장 많이 먹었다. 어느 때는 고등어가 보이지 않으면 꽁치가 많이 보이기도 했다. 아무튼, 두 생선이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생선이었다. 고등어도 싱싱한 것을 볼 때도 있지만, 소금 간을 한 것을 주로 보았다. 어릴 때는 냉장고가 없어서, 우리가 사는 내륙까지 오려면 소금을 칠 수밖에 없었다. 소금도 살짝 된 것은 맛이 있었지만, 오래되어서 계속 소금을 친 것은 너무 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생선은 자주 못 보기 때문에 맛이 있었다. 주로 생일날이나 제삿날과 명절 때에 많이 먹었다. 명절 때는 보통 고등어 값도 어김없이 올랐다. 명절 대목이라고 해서 당연시 여겼다.


간고등어는 안동지방에서 발달한 생선이다. 안동도 내륙 가운데에 있었기에 냉장시설이 없던 때는 생선을 먹기가 어려웠다. 내륙까지 들어오면 상하지 않는 생선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소금을 칠 수밖에 없었다. 영덕에서 출발한 고등어를 소달구지나 지게로 운반하면서 소금을 뿌려가면서 오는 것이다. 안동에 도착하려면 이틀은 족히 걸렸다. 상하지 않기 위해서는 소금을 몇 번 뿌려야 했다. 그러면 안동에 도착할 즈음에 적당히 숙성되는 것이다. 그 고등어를 간고등어라고 하면서 조상님 제사상이나 잔칫상에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간고등어는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안동에서 고등어를 먹기 위해서 생긴 것이지만, 냉장 기술이 발달 된 지금도 그때의 그 맛이 브랜드가 되어서 전국적인 상품이 되었다.


고등어 구워서 금방 먹어야 비린 맛이 적고 맛이 있지만, 구워서 식으면 비린 맛이 많이 나는 생선이다. 중학교 때의 일이다. 학교를 십오 리 길을 걸어서 다녔다. 아침 일찍 학교 가면 책가방 속에는 늘 엄마가 싸준 도시락이 있었다. 어느 날 아침에 늦잠을 자서 학교에 늦을 것 같아서 밥을 대강 먹고는 가방만 들고 학교로 뛰다시피 갔다.

도시락은 가지고 가지 않았다. 아마 도시락도 미처 준비가 안 된 것이다. 엄마도 그날은 무슨 일 바빠서 그냥 일 보러 간 모양이었다. 할머니가 도시락 없이 그냥 갔다는 소리를 듣고 도시락을 싸서 나보다 늦은 학생에게 도시락을 보냈다.


도시락이 첫 시간이 끝나고 옆 반 동네 친구가 건너 주었다. 점심시간이 되어서 도시락을 열었다. 비린내가 확 났다. 옆에 앉은 친구도 냄새를 맡은 것인지 내 도시락이 쳐다보았다.

도시락에는 반찬통이 없고 밥 한 모퉁이 위에 구운 고등어가 한 토막이 얹혀 있는 것이다. 식은 고등어구이는 비린내가 엄청났다. 밥에도 비린내가 배어 있었다. 할머니는 그 한 토막으로 반찬을 해서 먹으라는 뜻으로 싸 준 것이다. 그때는 귀한 생선이니까 손자를 생각해서 넣어준 것이다. 그 뜻도 헤아릴 줄 모르고 짜증을 냈던 철부지였다.


고등어는 환갑이나 생일잔치에 꼭 나오는 생선이었다. 보통은 고등어 조림 한 토막, 갈치 조림 한 토막, 꽁치나 가자미 조림 한 토막이 한 접시에 담겨 나왔다. 생선을 종류별로 다 맛보라는 것이다. 그래도 그중에서는 고등어가 주장격이었다.


고등어는 보통 제사상에 올릴 때는 솥에 졌어 올린다. 솥에 찐 것도 먹어 보면 상상외로 맛이 있다. 지금도 안동 하회 마을에 가면 제사 때만 고등어를 찌는 것이 아니라, 보통 반찬을 할 때도 쪄서 먹는 것이 보통이다. 그 집안의 전통인 것 같았다.


그런 고등어가 한창 술을 먹었던 젊은 날에는 고갈비가 되어서 만났다. 고등어에 양념해서 불에 구워낸 것이다. 매콤하고 부드러워서 그것을 뜯어 먹는 맛이 일품이었다. 그 고갈비를 안주해서 먹으면 술도 맛이 있었다. 아마도 젊어서 그 맛이 더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에는 고갈비 뼈에 붙어 있는 살을 발라 먹는 맛도 잊지 못한다.


아침저녁으로 찬 바람이 불어오니까 고갈비도 생각이 나고 매콤한 고등어 조림도 먹고 싶다.

할머니도 보고 싶고 엄마도 생각이 난다.

고등어는 국민 생선이라는 이름보다는 추억의 생선으로 부르고 싶다. 고등어로서는 국민 생선으로 불리길 더 좋아할 것 같다. 고등어를 볼 때마다 옛 생각들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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