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나이 든 어른이 되었다>
어릴 때 할아버지가 노인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렇게 오래 사셨으니까 얼굴도 노인의 얼굴이고, 노인들의 얼굴이 할아버지의 얼굴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때 본 할아버지의 얼굴은 젊은 사람들의 얼굴과는 완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오래 살면 그렇게 되는 것으로 알았는데, 지금 내가 그때 할아버지의 나이가 되었다. 내 얼굴도 그때 생각한 것처럼 그렇게 나이가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할아버지처럼 오래 살지 않았는 것 같은데, 벌써 그 나이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다. 시간은 공평하게 갔었지만, 내 마음에는 내 시간이 더 빨리 간 느낌이다.
어릴 때 그렇게도 많던 어른들이 지금은 다 돌아가시고 이제는 손에 꼽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오래 사실 것 같던 엄마도 돌아가시고 그 위에 어른들은 더 오래전에 돌아가셨다. 어린 것 같던 막내도 이제는 늙어가는 모습을 보인다.
이제 아버지 일가 중에서는 내가 가장 어른이 되었다. 나이순으로 일 번이 된 것이다. 늘 젊을 것 같았고, 위보다 아래가 더 많았는데 어느새 내 위로는 아무도 없다.
얼마 전까지 뛰어다니던 아저씨들이 이제는 허리 굽어서 느릿느릿 걷은 것을 볼 때도 머지않은 내 모습이 떠오르지만, 머리는 희지만 잘 걸어 다니던 분이 지팡이를 집고 겨우 걸어 다니는 것을 볼 때는 나도 유한하다는 것을 몸으로 느낀다. 이제는 건강보다는 걸어 다닐 수 있을 때가 얼마나 남았는지가 궁금할 정도이다.
그래도 집안의 일 번으로서 품위를 잃지 않고 마무리하는 모양새를 갖고 마음도 거기에 맞게 맞추어 가야 한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도 어떻게 살까 고민하면서 살아가는 것 같다.
나머지 시간도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인지 생각해보지만, 사는 것에는 정답도 없고 매뉴얼도 없는 것 같다.
맨 앞 순위가 되었음에도 아직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죽을 때까지 그런 생각을 하다가 정리도 못 한 채 떠나는 것이 인생인지도 모른다.
보통 사람은 나이가 들면 건강과 돈 그리고 친구가 있으면 잘 사는 거라고 하지만, 그 외에 본인이 살아가는 의미를 알아야 한다고 한다. 그 살아가는 의미를 수년 찾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정리되지 않았다.
오직 일만 열심히 하는 노인도 의미 있게 사는 것 같고, 열심히 봉사하면서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분을 보면 보람있게 사는 것 같고, 자신이 독자적인 영역을 만들어서 성공한 사람을 보면 존경스럽고, 본인이 하고 싶은 여행을 즐겁게 다니는 것을 보면 그렇게 따라 하고 싶은 것이 마음이다.
그 의미가 다른 사람이 사는 것을 보면 그 삶이 의미가 있는 것 같고, 또 다른 사람의 다른 의미를 들으면 그 의미도 마음에 드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아직도 무엇이 나에게 가장 적합한 의미가 될 수 있는 것인지 알 수도 없고 정해진 것도 없다.
그래도 어렴풋이 느낌은 온다. 앞으로는 남과 비교하는 삶과 남을 의식하는 삶 그리고 남이 바라는 삶을 살지 말자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물론 내가 원하는 삶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는 주지는 않아야 한다. 나머지 시간은 나만의 삶을 가장 나답게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