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출생신고를 태어나면 바로 해야 한다.
반세기보다 십여 년 더 전에는 출생신고가 정확하게 된 경우보다 늦게 된 경우도 많았다. 간혹 빨리 된 경우도 있었지만 대다수가 늦게 되어서 부친을 원망하기도 했다.
나이는 더 많은데 출생신고가 늦어서 또래들 사이에서 동생 취급당하는 농담 속에서 자라면서 남자는 군에 갈 때가 가장 곤욕스러웠다. 제 나이보다 늦어서 늦게 영장이 나오는 경우이다.
이때도 부친을 원망했지만, 정년이 있는 회사나 공무원에 들어간 사람은 지금에 와서는 부친의 실수나 게으름이 고맙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도 지금은 대부분 친구들이 정년을 하거나 몇 년 남지 않았다. 아직도 남은 친구는 부친의 은혜를 입은 것이다.
오래 친구는 아마도 초등학교 친구들이다. 초등학교가 가장 긴 시간 같이 학교를 다녔으니까 다툼도 많고 어울리는 시간이 길어서 여러 감정을 같이 했던 친구들이다. 같이 다닐 때는 몰랐지만 세월이 지나서 보니까 그리워지는 친구들이다. 가끔은 무엇을 하는지 궁금한 친구들이 초등학교 친구들이다.
그런 친구들은 거의 같은 지역에서 비슷한 처지였고, 서로 순수한 마음으로 매일 같이 놀면서 우정이 싹트던 시절이었다. 단지 어려서 서로의 속내는 잘 몰랐지만 성격은 그대로 표현하면서 지냈던 친구들이다. 그렇게 많지 않았던 친구들이라서 지금도 이름과 그때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보고 싶고 만나고 싶은 친구들이다.
멀지 않은 곳에 부친의 은덕으로 아직 학교에서 월급 받고 지내는 친구가 전화가 왔다. 평소에 바쁘게 살다가 이제 나이가 들어서 친구 생각이 난 것이다. 보고 싶은 친구들이 모여서 얼마나 변했는지 보자고 했지만, 서로 시간이 맞지 않아서 모일 날짜 잡기가 힘들었다. 여러 번 말은 오갔지만 성사되지 않으니까 이번에는 번개팅으로 가능한 사람만 만나자는 것이다. 그렇게 모인 사람이 다섯 명 정도였다.
장소는 옛 교정이었던 곳으로 정했는데, 그곳은 이 지역 권역 사업으로 쉴 수 있는 공간과 숙박시설이 갖추어진 시설로 변해 있었다.
초등학교는 수십 년 전에 폐교가 되고, 교적비에 적힌 학생은 지금까지 1512명이 졸업했고 교적비만 남기고 역사 속으로 들어갔다.
옛 학교 교정에서 오랜만에 친구들이 모였다. 얼굴은 옛날 모습이 남아 있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열심히 산 표시가 얼굴에 보였다. 주름이 약간 많고 적은 차이는 있지만, 모두가 늙어가고 있었다. 머리는 희끗한 것이 더 많고 그렇게 많던 숫도 이제 많이 빠져 있었다.
친구들이 오랜만에 만나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살아온 인생 이야기하는 것 모두가 즐거운 일이었다. 이제는 친구들이 본인이 잘한 것이나 자랑보다는 겸손한 마음으로 상대를 생각하고 있었다.
고향을 떠나 있는 친구들은 모두 고향에 돌아오고 싶은 마음을 보이는 것을 보면 어릴 때 살던 고향이 여전히 좋은 것이다. 고향에 오면 많이 변해서 예전과 같지 않지만 그래도 멀리 보이는 산들을 보면서 향수에 빠져드는 것이다.
그렇게 맑던 개울이 청태로 덮여 있고 손만 넣으면 잡히던 물고기도 없지만 좋은 것이다. 요즈음은 개울에 가도 물고기 잡기가 무척 어려운 일이 되었다. 그 예전에는 모이면 물고기를 잡아서 매운탕을 끓여 먹었던 추억 때문에 물고기를 잡으려고 했지만 힘들 것 같아, 마트에 가서 삼겹살을 사서 대신 먹었다.
선생 하는 친구가 사 온 삼겹살을 구워서 동네 밭에서 얻은 상추와 여름 배추를 마트에서 산 쌈장에 찍어 먹었지만, 그 맛은 추억과 동심이 어우러져서 맛이 있었다. 친구들은 친구가 보고 싶어 와서, 보는 것만으로도 좋은지 삼겹살은 별로 먹지 않았다. 술도 약간씩만 먹으면서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음식에 관심이 적은 것은 아마도 건강을 생각할 나이가 되어서 그런 것 같았다. 친구들 중에는 오고 싶지만 몸이 아파서 오지 못한 친구들도 있었다. 이렇게 모인 사람은 그래도 건강이 좋은 편이다.
어린 시절의 본 얼굴이 지금 보고 있는 친구들 얼굴 속에서 조금은 흔적이 있지만 많이들 변했다. 세월이 만든 것이지만 그래도 그 세월을 돌려서 어린 시절로 돌아갈 생각이 없을 나이들이다. 살아보니까 다시 살아도 크게 다르게 살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알 나이가 되었다는 말이다.
그 시절로 돌아가서 다시 하고 싶은 것도 하고, 잘해 주지 못한 친구들에게 잘해 보고도 싶기는 하겠지만, 친구들은 다시 살아보고 싶은 만큼 허술하게 살지 않았는 것 같다. 이제 돌아보니까 우리는 한번 살아가는 것이 일생인 것이다.
보고 싶은 오래된 친구를 만나서 얼굴 보고, 웃고, 이야기 듣고, 다음에 다시 만나길 약속하는 것으로 감사하면 되는 것이 오랜 친구와의 모임이었다.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우리가 모인 사진을 단톡 방에 올린 것이다. 오지 못한 친구들이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서로 전화기를 돌려가면서 안부를 전하는 시간도 좋았다. 오랫동안 보지 못해서 그런지 단톡 방에 올린 사진 중에서 처음 보는 얼굴이 있다는 말도 있었다. 반세기의 시간이 사람의 얼굴도 변하게 한 것이다.
그래도 이름은 생소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우리 초등학교 동창들은 몇 명 되지 않기 때문에 이름은 거의 기억하는 것이다.
오래된 친구들은 특별한 이야깃거리가 없어도 만나는 것이 즐거운 모임이다. 서로가 얼마나 늙어가는지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제는 누구보다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살아온 이야기가 즐겁고 만남 자체가 의미 있다. 마음이 동심으로 돌아갈 정도는 아니더라도 그래도 옛날같이 놀던 이야기가 현재 살고 있는 이야기보다 더 재미있는 친구들이 초등학교 친구들이다.
살아오면서 특별하게 잘 사는 친구도 없고 이름난 친구도 없지만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한 친구는 없었다. 벌써 고인 된 친구를 생각해 보면 우리가 언제 다시 보지 못할 경우가 생길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만날 때 반가워하고 한 번이라도 더 얼굴 보면서 즐거워하면 되는 것이다.
다음에는 몇 마리 못 잡을망정 같이 물고기를 잡아서 그늘진 개울가에서 끓여 먹기로 약속을 했다. 그런 장소는 있겠지만 그때도 친구들이 얼마나 올지 모른다. 모이기만 하면 오래된 친구는 무슨 말을 해도 좋은 말이고 얼굴 보는 것만으로도 추억을 보는 것이다.
오늘 본 친구들은 다시 보아도 즐거운 얼굴이고 아직 못 본 친구들을 만나면 더 즐거운 얼굴일 것이다. 치열하게 살아왔지만 오래된 친구들은 마음의 휴식과 열심히 산 지난날을 미소 짓게 하는 친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