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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Mar 26. 2023

남파랑 길 40일차

남양면 소재지에서 우도로 가는 길에는 비가 내리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안개비가 내린다.

오늘은 일기 예보가 구름만 많은 날이라고 했으니까 곧 그칠 거라는 생각에 우의를 입지 않고 걸어갔다. 우도로 가는 길은 바다로 가는 길이다.

갯벌이 나오고 구름 자욱한 바닷길을 가다 보니 우도 마을 표지석이 나온다.

하루에 두 번씩 바닷길이 열린다는 우도는 초입의 가는 길은 보이지만, 바다는 안개에 가려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물이 빠진 갯벌에 빈 배들만 흩어져 있다.


비는 안개비가 굵어지더니 이슬비가 되어 내린다.

꾸준히 내리는 이슬비를 맞고 걸으니까 옷이 젖는 것 같아 우의를 꺼내 입었다. 도로는 어제 내린 비와 지금 내리는 가랑비로 젖어 있다.

일기 예보를 다시 확인해 보니까 비가 9시까지 내리는 것으로 나온다. 예보가 비가 내리니까 정정된 것이다. 일기 예보가 맞지 않는다고 탓할 수는 없고 쉼 없이 내리는 가랑비를 맞으면서 걷는 것이 힘든다. 주위의 경관이나 볼만한 것은 모두가 비에 젖어 있다.

지나는 저수지도 젖어 있다. 비는 계속되고 다시 일기 예보를 확인해 보니까 오후까지 비가 오는 것으로 나온다. 예보가 오는 비를 따라서 예보는 듯하다.


비 오는 시골길을 걸어가면서 젖어오는 신발이 무거워지는 것이 느껴진다.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서 길에 빗물이 고인 곳을 피해서 조심스럽게 걷는다.

비는 오지만 꽃들이 만발한 곳이 있다. 신촌마을을 지날 때, 벚꽃이 활짝 핀 곳에 개나리도 함께 펴있다. 화창한 봄날이었으면 좋은 구경이 될 것 같은 곳이다.

지나는 간척지 옆에 있는 갈대 호수에는 흰 두루미가 모여 있고,

주변에는 철새들이 부지런히 먹이 활동을 하고 있다. 내리는 비에도 조용한 호수 같은 갈대숲에서 철새들은 노는 것이 평화롭다는 생각이 든다.


거북이 마을 가기 전에 작은 산길에 잘 꾸며진 동산이 있다. 그 동산에 있는 잘 조성된 나무들과 진달래가 비에 젖어 무겁게 서 있는 것 같다.

거북이 마을을 지나면 다시 새로운 코스가 시작되는 곳이다.

오늘은 긴 코스를 걸어왔지만, 비가 와서 보이는 것은 비 내리는 바다와 갯벌 그리고 도로가 전부였던 것 같다. 비는 모든 것을 단순화시켜 걷는 내 눈에는 비 맞는 것과 비 맞지 않는 것만 보이는 것 같았다.


다시 시작하는 76코스는 고흥길도 있고, 보성 길도 있다.

고흥길 시작하는 곳에 비 오는 날에도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찍으려는 것은 바다와 섬인 것 같은데, 구름이 덮여서 보이지 않지만 열심들이다. 가까이 가서 무엇을 찍느냐고 물어보니까 앞에 있는 바다와 그물을 찍는다고 했다. 아마도 그물보다는 이곳에서 멀리 보이는 해안선과 아름다운 섬일 것이다. 구름에 가려서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떠나지 않는 것은 같은 동우회에서 나온 것 같다. 원래 오늘 일기 예보는 비가 그치는 것으로 예보되어서 비 그친 뒤에 이곳은 남다른 매력이 있는 곳인 것 같은데, 비가 계속 오니까 그냥 기다리는 것 같다.


배 내리는 항구를 뒤로하고 도로를 따라서 걷는다.

바닷가 도로라서 바닷바람이 불어온다. 앞도 보이지 않고 바람만 맞고 가는 길은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서 힘든 날에 속한다.


고흥의 장선 해변은 건너 보이는 보성의 득량만으로 넘어가는 해넘이로 유명한 곳이지만, 건너 바다와 만은 보이지 않고, 앞에 있는 작은 섬만 보인다.

장선 마을 지나 안개 끼고 비 오는 길을 걸어가면 긴 방조제가 나왔다. 이 긴 방조제 중간이 보성군과 고흥이 경계인 것 같다.

고흥에서 마지막으로 보이는 것이 방조제를 막아서 호수가 된 곳에 끝이 보이지 않는 태양광발전소이다. 물 위에 떠 있는 태양광판은 고정을 충분히 했는지 바람이 부는 데도 움직임이 없다.

고흥을 지나간다는 이정표를 보면서 고흥을 생각해 본다.

고흥반도를 해안선을 가까이에 길을 만들려고 한 것 같다. 고흥길은 바다를 보면서 걷는 길이 많았지만, 날씨가 좋지 않아서 바다를 본 것은 많지 않았다. 그 길도 임산도로가 많았고 시골이 대부분이었다. 하루 걷고 숙박할 만한 곳이 없어서 잘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힘들었다. 과역이나 도화에서는 열악한 숙박 시설이지만 비싼 값을 주고 쉬었던 기억이 난다.


보성 방파제의 길이는 고흥보다 더 길었다.

그곳을 걸을 때도 비는 여전히 오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예보를 확인해 보니까 밤까지 비가 오는 것으로 나온다. 어제 예보와는 완전히 다른 내용이다.

남파랑 길을 걸으면서 이렇게 힘들게 걸은 적은 없었다. 비를 맞고 온종일 걷는 것이 너무 힘이 들었다.

순천 방조제 밑에 횟집이 한 곳 영업을 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이 휴무날이다.

그래서 잠시 처마 밑으로 들어가 신발을 벗었다. 발이 물에 젖어서 불어 있었다. 수건으로 닦고 다시 새 양말을 내어서 갈아 신었다. 조금 나아졌지만, 다시 걸으면 신발이 젖어서 양말이 젖을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쉬는데, 주인이 나오더니, 비 맞은 꼴이 처량했는지 따뜻한 커피를 한 잔 준다. 비 오는 날 추운 기운도 있는데 따뜻한 커피의 맛은 그만이다. 감사해야 할 사람들이 많고 감사할 일도 많은 것 같다.


보성의 방조제는 득량만 생태공원으로 하여 방조제 밑에 장미를 심어 놓았다. 이 장미가 피는 계절에는 몇 킬로가 벋어 있는 이곳은 명소가 될 것 같다.


방조제가 끝나면 나오는 항구가 금능항이다. 작은 항구가 비를 맞고 있다. 다니는 사람도 오가는 배도 보이지 않는데, 외로운 길손은 혼자서 걸어갔다.

해안선을 따라 걸어가면 조용한 도로에 잊을만하면 차들이 지나간다. 다음에 나타난 항구는 해평 항구이다. 이 항구도 더 작아서 배들도 몇 척밖에 보이지 않는다. 멀리 구름 낀 바다에 외로이 배 한 척이 비를 맞고 홀로 떠 있다.

청암항으로 넘어가는 산 고개에 비에 맞은 진달래가 더 붉게 보인다.

그 고개 밑에는 비닐을 덮어서 심어 놓은 작물이 많아서 가까이 가서 보니까 감자였다. 이곳에는 이른 봄에 감자를 대량으로 재배하는 곳인 것 같다. 비를 맞은 감자들이 잘 자랄 것 같다.

오늘 걸으면서 틀린 일기 예보로 짜증은 났지만, 농사하는 농민들에게는 단비였다. 틀린 일기 예보가 농민에게는 더 좋은 것이다.


정암항이 보이는 곳 해안에 싸우는 듯한 공룡 모형이 보인다.

해안 테크 길로 잘 만들어진 해변이다. 해안가에 공룡이 갑자기 보이는 것이 이상한 광경이지만, 이 주변에서 공룡 알이 발견된 곳이 있다고 한다.

두 마리의 공룡이 멀리서 보면 싸우는 형상이지만, 가까이 가서 보니까 테크 위에 있는 공룡알을 보면서 하트 모양을 만들고 있는 것이었다. 공룡 알을 두고 사랑한다는 표시를 하는 아름다운 부모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멀리 청암항이 보인다. 여기서 76코스도 끝난 것이다. 온종일 비를 맞으면서 걸어온 길이다. 아직도 비가 내린다. 그래도 숙소를 찾아서 보성읍으로 들어가야 한다.

사람이 다니지 않아서 물어볼 때도 없고 길가에 비를 맞고 서 있을 수도 없어 지나오면서 본 청암 마을버스 정류장을 찾아서 다시 돌아갔다. 힘들게 빗속을 걸어서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정류장은 비를 막아주는 지붕도 있고 양쪽과 뒤쪽에 유리벽도 있지만, 비가 바람에 날려서 들어오고 있었다. 그래도 가장 덜 들어오는 곳에 배낭을 놓고 일단은 신발을 벗과 양말을 벗고 다시 마지막 남은 새 양말로 갈아 신었다. 신발이 물에 젖어서 신발을 벗은 상태에서 읍내로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이 정류장에서 기다리면 버스가 오는지, 오면 언제 오는지 알 수 없지만, 힘이 들어서 그냥 기다렸다.


정암 마을이 보이는 버스 정류장에는 지나가는 사람이 없다. 비는 계속 내리니까 다른 곳으로 갈 곳도 없다.

하염없이 쉬고 있으니까 멀리 아주머니 한 분이 우산을 쓰고 이쪽으로 오고 있다. 반가워서 버스를 물어보니까 서울에서 이곳에 놀러 와서 모른다고 한다. 또 한참을 지나서 이번에는 아저씨 한 분이 지나간다. 다시 물어보니까 역시 서울에서 어제 와서 모른다고 한다. 오늘은 이 시골에 서울 사람만 보이는 것이다.

그래도 기다리니까 멀리 버스가 다가온다. 어디로 가든 탈 생각이다. 다행히 읍내로 가는 버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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